기본교리 11
으르렁거리는 사자에 맞서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매일 성장할 것인가
스테판 회셀레
사자 사냥은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은 모험이다! 그러나 이전에 전사들이었던 동아프리카의 마사이 족 젊은이들은 짐승들의 왕을 사냥하는 것을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다. 절반쯤 유목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축들은 이 대적에게 언제나 위협을 당한다. 사자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마사이 친구에게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창을 든 청년 전사들이 사자를 에워싼다. 문제는 적절한 때에 사자를 공격하는 것이다. 맨 먼저 사자를 공격하면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축하받기 때문이다. 일단 창에 맞은 사자는 상처를 입었어도 복수하려고 달려든다. 만약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사자는 가장 겁먹은 청년을 찾아 공격한다.
그리스도인의 싸움
때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러한 사자들을 사냥하는 마사이 족의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분과 함께 얼마큼 여행한 후에 우리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라고 예수님이 선언하신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리 생애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을 다루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우리는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다. 우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악이 우리를 해할 수 없는 척할 수 있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의 대적이 존재하지 않는 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상을 인정하는 않은 그런 방식은 그 짐승에게서 우리를 구해 주지도, 두 번째 선택인 무서워 도망치지도 못하게 한다. 그대는 사자에게서 도망치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시속 5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오는 사자에게서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우리는 결국 잡히게 된다. 세 번째 선택은 싸우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로운 옛 속담인 “공격이 최선의 방어이다.”라는 말에 근거한다. 그리고 공격을 시작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모범
하나님의 공격은 어떠한가? 훌륭한 예증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벗어나는 일’에 나타난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나는 사로잡힌 사람들이 악한 영에게서 자유롭게 된 많은 경우를 경험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질병 이름을 갖다 붙임으로 그 현상을 취급하지 않거나 악한 세력의 대장 앞에서 무서워 떨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 주신다. 그분께서는 초자연적인 사악한 존재를 도외시하지 않으시고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떠나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패배당했기 때문에 떠나야만 했으며 예수님의 단순한 말에도 떨어야 했다. 그렇게 마귀를 내쫓는 일은 엄청나고 이상한 사건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원수를 다루시는지를 단순하지만 힘 있는 방식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은 대적을 무찌르는 데 필요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싸움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마 11:30 참조). 그러나 공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에서 심지어는 내부에서도 올 수 있다. 나는 시험을 회피하려는 사람을 여전히 만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그런 시험을 대면하신 분이라면 우리는 그런 고난에 넘어졌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가 없다. 정말 위험한 일은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고백한 시험은 반은 극복된 것이다. 형제나 자매에게 이런 일을 말하는 것은 생각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며 시험을 거의 이겨 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비밀 무기
다행히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투쟁이 영구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군사들조차도 자신들의 힘을 회복시키는 데 충분한 준비와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계속 싸울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건강을 돌봐야 하고, 서로 지지하기를 배워야 하고, 특별한 책무를 위해 훈련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움으로 자신들의 힘을 키워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충분한 성장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대결하려면 성숙해야 한다. 이런 성장 과정이 느리게 느껴지거나 성장의 어떠한 신호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제로 중요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제자도와 관련하여 성경이 친밀 관계를 표현하는 몇몇 이미지(하나님을 앎, 하나님을 닮아 감, 그분께 속함.)나 심지어 잉태를 연상케 하는 표현(그리스도 안에 있음,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음,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함.)을 사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보듯,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장은 어린아이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먹이는 존재를 의존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시고, 기도로 하나님의 성령을 호흡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여러 날 자기 어머니의 젖을 거절하는 아기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영양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
경건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기도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나는 그대들을 최선을 다해 도와줄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 영적으로 충만하지 않은 삶 때문에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작게 시작하고 그것을 지속하라.’는 이런 단순한 권면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은 높지만 실제적이지 않은 계획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다. 때가 되어 그리스도의 젊은 군사가 성장함에 따라 더 많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개발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경건의 시간을 갖는 약 10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명상과 기도에 더해서, 때때로 복음서를 의역하여 바꾸어 말해 보기도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일기 쓰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도, 독서, 찬양만이 영적인 것은 아니다. 영성은 우리의 전 생애와 연관이 있다. 우리의 기본교리 4분지 1이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11장과 17장, 19~23장까지를 살펴보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주 실제적인 일이다.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는 어떤 일들을 하고, 안 하고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도움을 받으며 시험들을 정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붙잡을 때 우리는 으르렁거리는 사자에게 맞설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남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악의 세력에 대해 승리하셨다. 지상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귀신의 영들을 진압하신 분께서는 그들의 능력을 깨뜨리시고 그들의 궁극적인 파멸을 확실하게 하셨다. 예수의 승리는 평화, 기쁨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대한 확신 가운데 그분과 동행하는 우리에게 아직도 우리를 통제하려고 하는 악한 세력에 대한 승리를 준다. 지금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우리의 구주이시며 주님이신 예수께 계속하여 우리를 위탁할 때, 우리는 과거의 행위의 짐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악의 세력을 두려워함, 무지 그리고 이전의 삶의 방식의 무의미함 속에서 살지 않는다. 예수 안에 있는 이 새로운 자유 안에서 우리는 매일 기도를 통해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을 먹으며, 그 말씀과 그분의 섭리를 명상하며, 그분을 찬양하며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이며,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며, 그분의 품성과 같아지는 데 이르도록 성장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분의 구원에 대해 증언하는 일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봉사를 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성령을 통해 계속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임재는 매 순간, 매일 그것을 영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시 1:1, 2; 23:4; 77:11, 12; 골 1:13, 14; 2:6, 14, 15; 눅 10:17~20; 엡 5:19, 20; 6:12~18; 살전 5:23; 벧후 2:9; 3:18; 고후 3:17, 18; 빌 3:7~14; 살전 5:16~18; 마 20:25~28; 요 20:21; 갈 5:22~25; 롬 8:38, 39; 요일 4:4; 히 10:25).
스테판 회셀레
알제리와 탄자니아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독일에 있는 프라이덴사우 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과 조직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