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다
이야기는 마음의 언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재미난 이야기를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 스토리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 중요한 질문의 답을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이야기의 대다수는 선악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선과 악은 끊임없이 대립하는 강력한 두 세력으로 등장한다. 선이 악을 이길 때마다 얹힌 속이 풀리고 물어뜯던 손톱을 내려놓는다.
성경은 이러한 선악 간의 대쟁투의 시작으로 우리를 데려가 거기 관련된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성경은 우주적 실재라는 맥락에서 그 투쟁을 관철할 수 있는 창을 열어 준다. 그리고 대쟁투에 연루된 사안들을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악을 입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떻게 악이 시작되고 활동하고 끝날지를 말한다.
또 선은 시작과 끝이 없다. 이는 선이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약 1:16; 출 3:14 참조). 그분은 우주의 주권자이자 창조자이며 사랑 그 자체이시다(렘 32:17; 요일 4:5 참조).
성경에 따르면 악의 스토리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집인 하늘에서 시작된다. 악이 없는 곳,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상한 존재들이 거하는 곳이자 서로 사랑의 율법에 자발적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우주에서 그것은 시작된다. 이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우주에서 루시퍼는 천사장이었다. 그는 흠 없고 완전한 존재였다.
자유 의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해할 것 몇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각각의 지적 존재들에게 이성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들이 각 개인으로서 온전한 능력을 발전시키고 창조주 및 동료들과 독특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유 의지라는 아주 높은 가치의 선물이 커다란 위험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아셨다. 즉 자유 의지란 어느 날 누군가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우주를 불법의 혼돈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결과에 매여 행동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은 정직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신다. 그분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행동을 조종한다면 이런 행동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게 사건들을 조작하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꼴 지어질 것이다.
죄의 신비
루시퍼의 변절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탄식을 들어 보라. “어떻게! 어떻게 네가 그렇게 하였는가? 나의 아들 새벽별아, 이런 두려운 선택을 한 너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내가 너에게 기름 부었고, 내가 너를 내 보좌 옆에 서게 명하였고 내 바로 옆에서 일하게 하였는데,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였고 완전한 자였는데, 어떻게 네 마음에 악이 가득하게 되었는가? 네가 어떻게 그토록 비루해졌는가?”(사 14:12~15; 겔 28:14, 15 참조)
악의 시작은 합리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설명할 수도 없고 변명의 여지도 없다.
성경은 궁극적 원인에 대해 한 가지 암시를 던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7). 사탄은 자기 마음의 보좌에 하나님 대신 자아를 앉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시기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였다. 천사 삼분지 일을 속였고 이제 적대자 사탄이 되어 전 우주 앞에서 하나님을 거짓 고소하였다. 반역이 무르익어 전쟁이 일어났고 그와 그의 천사들은 하늘에서 쫓겨났다(계 12:7~9 참조).
그는 반역의 정신을 새로 창조된 지구에 가져왔다. 아담과 하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에 성공하였을 때 그는 지구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욥 1:6, 7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신을 “세상 임금”(요 14:30)이라고 부르게 허락하셨다. 이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푸른 별에서 악의 공포 통치가 시작되었고 지구는 사실상 온 우주에 방송되는 리얼리티 쇼의 현장이 되었다(고전 4:9 참조).
이 쟁투의 기원을 알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서 매일 그 쟁투를 느끼며 산다. 사실 인간 생활 전체가 이 전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19세기 중반,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대에게 한 창문을 열어 주셨다. 그 창은 바로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분명한 빛을 던져 주었고 마지막 때에 치열하게 벌어질 대쟁투의 이슈를 명확히 보여 주었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사람들”(계 14:6)에게 이 특별한 마지막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두 낱말로 된,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대쟁투의 주요 이슈를 분명히 보여 주는 이름을 채택하였다.
대쟁투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품성과 그의 율법과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의 주권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대쟁투에 관여되어 있다. 이 싸움은 선택의 자유를 부여받은 한 피조물이 자기를 높이려다 하나님의 원수, 곧 사탄이 되었을 때 하늘에서 시작되었고, 하늘 천사의 일부를 반역하도록 만들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가 죄에 빠지도록 함으로 이 세상에 반역의 정신을 들여왔다. 이러한 인류의 죄는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일그러지게 하고 창조된 세계의 질서를 파괴해서, 전 세계적인 홍수 때에 무서운 황폐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 세상은 모든 피조물이 지켜보는 우주적인 싸움의 전장(戰場)이 되었고, 이 투쟁에서 결국 사랑의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옹호받으실 것이다. 이 대쟁투에 가담한 그의 백성을 돕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충성스런 천사들을 보내사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구원의 길에 서 있는 그들을 지원하신다(계 12:4~9; 사 14:12~14; 겔 28:12~18; 창 3장; 롬 1:19~32; 5:12~21; 8:19~22; 창 6:8; 벧후 3:6; 고전 4:9; 히 1:14).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하나님께 대한 사탄의 고소는 하나님의 품성, 그분의 율법과 통치, 주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제칠일 안식일에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그분의 백성은 우주의 정당한 통치자, 창조자, 구속주께 자신들의 충성을 나타낸다.
창조 주간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거룩한 기념비인 제칠일 안식일을 세우심으로 창조의 완성과 완전함을 기념하였다(창 2:1, 2 참조).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그분만이 경배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각 시대의 모든 이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시간의 분수령인 금요일 오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우리는 십자가에 나란히 서 있는 강력한 적대 세력들, 즉 사랑과 이기심을 본다. 양자의 목적은 명백하다. 하나님의 생명은 모든 이를 위한 온전한 속전이다(딤전 2:6 참조). 다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속주만이 우리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안식일에 안식하셨다.
‘재림교회’(Adventist)는 운이 다한 세상에 희망을 울리는 낱말이다.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은 다시 오실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이 땅에서 원수에게 고통 당할 때 멀리 안전한 거리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때가 차매”(갈 4:4)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며(요 1:14)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참여하기 위해 지구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계 19:11~16)로 두 번째 오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무덤에서 그리고 유한하고 죄 된 존재에서 우리를 구해 내어 전쟁으로 받은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늘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재림은 죄의 흔적을 완전히 뿌리 뽑는 일, 새 창조(계 22:1 참조) 그리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전 우주의 주권자이신 분의 영원한 통치를 의미한다. 구속받은 자들은 평화와 조화 속에 영원히 그분과 살 것이다. 선악의 스토리는 완전으로 시작되어 완전으로 마친다. 그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절대적으로 가장 멋진 스토리이다.
알레타 바인브리지
호주 크레이터시드니합회 목회부 코디네이터로 남편인 목회부장 가스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이고 손주 여덟을 둔 할머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