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하나님의 품성에 비추어 본 마지막 심판
폴 라이트
요한계시록 세미나에서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말했다. 나는 요한계시록 20장과 불신자의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바로 앞서 요한계시록 20장 10, 15절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해 읽었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성경 전체에서 이보다 더 엄숙한 구절은 분명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영원은 언제나 영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 행동의 결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사탄과 그의 천사들 그리고 불신자들이 영원히 불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라고 린다가 질문했다.
“맞습니다. 영원이라는 말이 유다서 7절에서 사용된 방식을 살펴보십시오. 유다는 소돔 사람들이 영원한 불의 형벌로 고통을 당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렇지만 소돔의 불은 여전히 타고 있지도 않고 그 주민들을 태우고 있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영원은 꼭 영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덧붙여서 왜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영원히 벌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공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린다가 대답했다. 그녀는 하나님 말씀에 신실하기를 갈망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십니다. 공의로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영원히 벌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지옥에 대한 해석
그날 저녁, 린다와 토론을 벌였다. 세미나에 이어 영원에 대한 심화 성경 연구가 벌어졌다. 그녀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 사용된 영원과 같은 표현을 베드로가 하나님의 영원한 품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였다1고 말했다.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벧전 4:11). “베드로가 문자적으로 사용한 구절을 요한이 상징적으로 사용했다는 이해는 일관성이 없습니다.”라고 린다가 말했다. 그녀는 요점을 집었다.
우리는 다시 성경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온(aion)’, ‘에테르나(eterna)’ 그리고 이 단어를 사용한 표현들을 예수님과 사도들이 비문자적으로 종종 사용했음을 주목했다.2
그러나 린다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심판을 기술하면서 요한이 영원히라는 말을 단순하게 사용하지 않고 “세세토록”이라고 강조하여 사용하였음을 상기시켰다. 그가 그것을 문자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면 영원의 사상을 그는 왜 강조하였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우리는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수많은 구약의 표현을 사용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심판을 말하면서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가 에돔의 멸망을 예언했던 이사야 34장 10절을 언급하는 듯하다. 이사야는 에돔의 불타오르는 형벌의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갈 것이라’고 적었다. 이런 표현을 문자적으로 적용할 때 문제가 분명히 발생한다. 에돔 땅은 여전히 불타고 연기가 나고 있는가? 그렇지만 이사야의 말은 에돔의 완벽하고도 철저한 멸망을 히브리인들에게 강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히브리 성경을 읽고 자랐던 요한은 에돔의 멸망을 마지막 심판의 예증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그는 이사야의 사상을 토대로 해서 마지막 심판은 에돔의 멸망처럼 철저하고 완벽하리라는 개념을 전하기 위해 그리스어 번역을 하였다.3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요한은 심판이 포괄하는 문자적 시간량을 묘사하기보다는 영속성을 전달하기 위해 영원의 사상을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혼란
린다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요점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영원이라는 말은 끝없이 지속되기보다는 심판의 철저함을 의미한단 말이지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것이 결론입니다.”라고 대답한 뒤 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점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던졌다. “죄인을 영원히 괴롭히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실까요?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내리는 대신에 영원히 죄인을 괴롭히라고 결정한다면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그런 형벌을 제안하는 사람들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4
그때 그녀가 말했다. “목사님 말씀이 옳다면, 둘째 사망도 그리 나쁜 건 아니네요. 영원히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편을 택하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비존재가 된다는 것은 제가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문젯거리 없이 편히 쉬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세미나실에 중요하고도 진지한 침묵이 흘렀다. 참석자들은 린다의 말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린다는 분명히 영원한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했었다.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하늘에 가기 원하는 자신의 동기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했다.
그 토론이 세미나 시간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나는 린다에게 <각 시대의 대쟁투>5를 선물로 주면서 그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라고 권하고 모임을 마쳤다. 이 장에서 엘렌 화잇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경이로운 모습을 제시하며, 인간들에게 고통스러운 최대의 형벌은 영원한 불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할 기회를 상실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분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은 확실하게 어떤 다른 것보다도 훨씬 더 좋다.
폴 라이트
영국 출신으로 스위스 취리히의 볼프스빈켈 교회 담임목사이다.
1 ‘에이트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세세토록”
2 빌레몬서 15절, 누가복음 1장 70절, 사도행전 3장 21절을 보라. 거기서 ‘아이온’ 이라는 말은 각각 문자적이지 않은 의미로 바르게 번역되었다.
3 <재림교회 성경주석> 7권, 832쪽을 참조하라. 복음주의적 주석의 관점으로 쓰인 아주 유사한 설명을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A. Pohl,
4 마태복음 10장 28절의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보라.
5 엘렌 G. 화잇, <각 시대의 대쟁투>(캘리포니아 마운틴 뷰 : 퍼시픽 출판사,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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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기와 죄악의 종말
천년기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도들이 첫째와 둘째 부활 사이에 하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죽은 악인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지구는 완전히 황폐되어 산 거민들이 없고,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거처할 뿐이다. 그 기간의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도들과 거룩한 성과 함께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때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사탄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그 성을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태우고 지구를 정결케 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주는 죄와 죄인들에게서 영원히 해방될 것이다(계 20장; 고전 6:2, 3; 렘 4:23~26; 계 21:1~5; 말 4:1; 겔 28: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