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리포트
마크 A. 켈너, 애드벤티스트 월드 뉴스 편집자
엘리자베스 레흐레이트너, 애드벤티스트 뉴스 네트워크, 미국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서 기사를 전함
재림교회 지도자들,
새로운 시각으로
재림교회 역사를 살피다
배틀크릭의 ‘재림교회 역사 마을’에서 재림 운동의 교훈 되새겨
재림 운동 공식 조직 150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이틀간의 발표는 결국 대총회 역사문서보관소 소장 데이비드 트림의 한마디로 적절하게 요약되었다고 하겠다.
“이것은 역사가들의 꿈이지요.” 2013년 4월 13일 안식일 오후, 조끼를 걸친 트림이 대총회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였다. “이틀 동안 역사를 경청하며 앉아 있던 교회 지도자 여러분, 이런 모임이 더욱 많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이틀간의 프로그램이 학문적인 활동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프레젠테이션은 연 2회 개최되는 연례 회의 중 하나인 춘계 회의 참석자들이 오늘날 재림 운동의 뿌리를 이해하고 선구자들과 초기 신자들 및 심지어는 배도한 사람들의 삶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초기 재림 신자들의 열정은 때때로 희미해지기도 했다. 모세 헐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명칭을 제안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후에 그는 배도하여 심령주의자가 되었다. 존 하비 켈로그는 교회의 초기 건강 및 교육 부문 지도자로 명성 있는 배틀크릭 병원을 건립하였지만 후에 교회의 통제에서 이탈했고 1907년에 범신론 사상을 옹호하며 교회를 떠났다. <애드벤티스트 리뷰>와 <애드벤티스트 월드> 편집인 겸 발행인인 빌 노트에 따르면 말년에 켈로그는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했지만 논쟁을 촉발할까 우려하여 재침례를 거절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노트가 말한 것처럼 “켈로그의 이야기는 그가 사망하기 훨씬 전에 이미 끝났다.” 재림 운동의 대열에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노트는 또한 6년 동안만 재림 신자였던 헐의 생애와 신앙 연수가 수십 년에 이르고 교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A. T. 존스의 생애를 거론했다. 열정과 실력이 있었지만 “회색 영역을 도무지 이해하지 않으려던 그 마음은 화잇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누구의 조언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빌 노트는 교회의 공동 창시자 엘렌 화잇이 존스에게 보낸 많은 권면을 언급하면서 설명했다.
G. I. 버틀러는 총 10년 동안 두 회기에 걸쳐 대총회장으로 봉직한 초기 교회 지도자였다. 연임 기간 동안 건강이 악화된 그는 은퇴하여 플로리다에서 오렌지를 재배하였다. 버틀러는 1888년에 발표되어 엘렌 화잇에게 지지받았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에 논박했었다. 몇 년 후 남연합회장(미국 남부)으로 복귀했을 때 그는 자신이 한때 반대했던 성경의 가르침을 숙고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플로리다에 체류하는 동안 가졌다고 고백했다.
미시간 주 베리엔 스프링스에 있는 앤드루스 대학교 재림교회 연구 센터 역사가 멀린 버트는 버틀러의 분명한 시인이 종종 간과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버틀러는 자신보다 젊은 지도자들에게 가치 있는 멘토링을 지속적으로 제공하였다.
버틀러의 생애가 주는 핵심 교훈은 한 지도자의 생애에서도 구속의 능력은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라고 버트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생애를 변화시킬 때조차도 우리의 한계는 여전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주님을 의존할 때 우리의 생각은 더욱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더욱 관대하고 덜 비판적이며 그들을 이해하고 돌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자각할 때 우리는 더욱 자비롭고 더 능력 있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한낮의 휴식 시간에 대표자들은 배틀크릭에 있던 최초의 출판소와 건강 개혁원을 복원하여 ‘재림교회 역사 마을’ 캠퍼스에 건립할 신축 건물 두 동의 기공식에 참관했다.
대총회장 테드 N. C. 윌슨 목사는 지회장 13명과 함께 나란히 섰고 지도자들은 마을을 덮은 우중충한 이슬비와 대조되는 밝은 연청색 삽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말과 글로 진리를 전하는 일의 중요성이 이것으로 다시 한번 되새겨지게 하소서.”라고 대총회장은 앞으로 재건립할 출판소를 가리키며 기원했다.
금요일 오후의 발표에서 델버트 베이커 대총회 부회장은 초기 교회 선교 방법이 어떻게 평등을 옹호하는 일에도 선봉이 되었는지를 탐구했다.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한결같이 노예 폐지론자였다는 점을 그는 주시하였다.
참으로 초기 재림교인들은 성별, 나이, 인종의 다양성을 잘 대변하는 열린 단체였다고 베이커는 말했다. 이전에 노예였던 찰스 키니는 재림교회 최초의 흑인 목회자였다. 선교사 안나 나이트는 인도에서 모든 종파 중 최초의 흑인 여성 선교사였다.
그렇지만 발전은 “우연히 일어나지도, 쉽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베이커는 대표자들에게 상기시켰다. 발전 과정에서 ‘교인들의 큰 소리’와 ‘엘렌 화잇의 대립’ 양상이 종종 벌어졌다.
재림교회 교육의 베테랑이고 지금 두 회기에 걸쳐 대총회 부회장을 지내고 있는 엘라 스미스는 배틀크릭에 중심을 두었던 기관들, 즉 화재로 소실되었다 재건축되고 결국 켈로그에게 빼앗겨 버린 병원, 역시 화재로 타 버린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결국 와해된 배틀크릭 대학교 같은 기관들의 붕괴를 말하며 실패와 문제들로 인해 많은 것이 재로 변했지만 거기서 로마린다 대학교와 앤드루스 대학교 같은 주요 기관들이 성장하였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안식일 오후 발표에서 트림은 교회가 북미에서만 기별을 전하는 데서, 많은 교회의 간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 세계로 나가는 데 초점을 두는 쪽으로 움직이는 재림 신자들의 태도 변화를 주시하였다. 트림은 “포도원은 전 세계와 세계의 각 부분을 포함한다.”는 엘렌 화잇의 언급을 인용했다.*
주말을 마무리하면서 윌슨은 G. I. 버틀러의 생애에서 이런 교훈을 이끌어 냈다. “여러분은 매일 십자가 아래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도자일 수가 없습니다. 일들을 모두 안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교회가 “재림의 열정을 다시 불태워야 합니다. 결코 쉬려는 시험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본향에 가야 합니다! 저는 이번 주말이 우리의 선교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교회증언> 6권, 24쪽
사진 설명
위 : 삽을 높이 들고 : 2013년 4월 12일, ‘재림교회 역사 마을’을 찾은 교계 지도자들이 미시간 주 배틀크릭에 최초로 개설되었던 건강 개혁원을 복원하는 기공식에서 삽을 들고 있다.
왼쪽 : 선교 발전사 : 2013년 4월 13일, 대총회 자료 통계 연구소 소장인 역사학자 데이비드 트림이 초기 재림교회의 선교 인식 발전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떠나간 지도자들에게 배울 교훈 : <애드벤티스트 리뷰>와 <애드벤티스트 월드> 발행인 빌 노트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잇달아 떠나간 초기 개척자 세 명에게서 얻을 교훈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세 사람은 모세 헐, 존 하비 켈로그, A. T. 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