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가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 되려면
마르코스 파세기
성경의 모든 비유 중에 ‘돌 같은 마음’만큼 내 눈길을 사로잡는 생생한 비유는 아마 없을 것이다. ‘돌 같은 마음’이란 이치에 닿지 않는 모순 어법이다.
돌 가슴은 위대한 조각품이나 혹은 특이한 기념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몸에 이식되어서는 안 된다. 돌 가슴은 광물계의 암석과 똑같이 무겁고 차갑다. 돌을 심장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전기 충격을 가하는 사람은 없다. 돌 심장은 수축하지도, 박동하고 펌프질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실제로 돌이 되어 버린 심장이다. 생명을 주는 기관이 아니라 석화된 비석이다.
실제로 ‘돌 심장’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있다고 내과 의사 친구들은 말한다. 의학 용어로 ‘심장 저항성 칼슘 형성’이라고 하는데 심각한 신장 결함이 계속된 결과,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상태가 되면 혈관계는 말 그대로 ‘무너지기’ 시작하며 통상적으로 혈전증, 피부 괴사, 패혈증으로 이어진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그 영향이 심장에 미칠 경우다(그래서 그런 명칭이 주어졌다.). 그렇게 되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돌 심장이란 말은 만수무강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사형 선고다.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행위들
성경은 영적 심장에 ‘저항성 칼슘 형성’을 초래하는 행동을 최소한 두 가지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는 불순종으로 인한 막힘 현상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기 위해(히 3:13) 매일 서로를 권고하라고 말한다. 또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너희 마음을 강퍅게 하지 말라”(15절).
두 번째는 행동의 결핍과 관련이 깊다. 슬프게 엠마오 길을 걷는 두 제자를 만나시는 이야기(눅 24:13~35 참조)에서 우리의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신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절). 특히 성경 예언에 대해 예수께서는 무성의한 성경 연구 습관과 열의가 없는 믿음은 생기 넘치고 건강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가로막는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태만과 부족 때문에, 기록된 말씀과 육신으로 오신 말씀을 따르는 데 실패하면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는 위험에 처하게 되며 회복은 더 어려워진다. 저항성 칼슘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의사에게 물어보라
생명을 위협하는 석회 침착 과정이 진행된 가슴에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 해결책은 앞서 언급한 시편 95편 8절에 나온다.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문제를 언급하기도 전에 대책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말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6, 7절).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7절)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께 경배하고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주로 인정할 때, 우리는 마음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계속 반응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방법을 찾게 된다.
두 번째 처방은 다름 아닌 엠마오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상심한 제자들은 여태껏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서로에게 말한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미지근한 마음에 불이 붙는다. 열정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마시고 그분의 임재를 누리고 나면 더디고 어리석은 마음이 불태워지면서 세상에 빛과 온기를 선사하게 된다.
궁극적인 해결책
죄는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해서 자신의 마음이 다시 부드러워지기에는 딱딱한 길을 따라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엘렌 G. 화잇은 이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준다. “그대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같이 보인다 하여 낙심하지 말라. 모든 장애와 마음속의 모든 적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대들의 필요성을 더 크게 할 뿐이다.”* 우리 주인이신 참된 의사께서는 우리가 영적 저항성 칼슘 형성에 대해 그분께서 제시하신 가장 과감한 처방을 도입하기 원하신다. 그분의 치료는 두 단계다.
첫째, 주님은 마음의 “포피에 할례를 행하라.”고 요청하신다. 또 하나의 위대한 은유이다! 이것은 마음을 진부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라는 초청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구별된 마음을 지니라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돌처럼 굳은 마음에 대해 궁극적인 해결책을 제공하신다. 하나님께 굴복하면 그분은 우리 안에 ‘한마음’과 ‘새 영’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자기의 자녀를 생각하시면서 주님은 선포하신다.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새로운 마음! 그야말로 온전하고 이해심 많은 마음을 이식하는 것이다.
손질받은 마음
의학적 치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시행하시는 마음의 수술에도 목적이 있다. 주님은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20절)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살 같은 마음은 순종적이고 지혜롭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번영하는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시 1:2 참조). 그것은 박동하는 기관이며 석회화의 발병으로부터 보호받는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동치는 가슴은, 영적 저항성 칼슘 형성으로 고생하는 위험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을 것이다. 그 가슴은 참으로 부드럽고 유연하며 항상 수용적이고 제자리를 찾으며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한 중재자’이신 성령도 주신다(겔 36:27 참조). 우리 모두의 돌 가슴을 단번에 고치시기 위해 자기의 전부를 주신 분과 똑같은 가슴이 우리에게 생기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주를 관장하시는 주님의 뜻과 길에 리듬을 맞추어 영원히 고동치는 기관을 주시겠다고 그분은 약속하신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엘렌 G. 화잇,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112쪽
마르코스 파세기
번역가, 성경 연구가이자 작가이며 캐나다 온타리오 주 오타와에 살고 있다.
발문
영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고동치는 가슴은 영적 저항성 칼슘 형성으로 고생하는 위험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