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묵상
그분이 계시는 마을로
절망 속에 희망을 가져다주시는 예수님
헤더 반덴호븐
이 이야기는 그녀가 예수님을 찾았다거나 예수께서 그녀를 찾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는 나인의 과부에 대해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고 하셨다고 간단히 언급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어떻게 이 여인의 삶을 영원히 바꾸셨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눅 7:13~15).
희망 없는 삶
이미 과부가 된 여인이 또 다른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그날, 예수께서 그 마을에 계셨다. 그녀의 남편은 이전에 죽었고 지금은 아들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있다. 그녀의 상실감은 커다란 감정의 변화뿐 아니라 그녀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부양하고 보호해 줄 아들이 없어지자 그녀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정신적 버팀목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는 이제 수년간 고독한 신세가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남은 세월을 집도 없이 홀로 배고프게 살아야 했다. 장례식에서 그녀와 함께 슬픔을 나눈 마을 사람들은 본래의 생업을 위해 모두 떠날 것이다. 그녀는 무기력하고 그녀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던져진 이 험난한 삶을 헤쳐 나가야만 했다.
혼자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예수께서 그녀의 마을로 가셔서 그녀의 삶에 개입하셨다. 그분은 치유와 긍휼을 베푸셔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절망의 감정을 쫓아 버리고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준비가 되셨다. 예수가 자신과 같은 사람을 돕는 일을 하신다는 것, 그날 오후 자신이 그 은혜를 받을 차례라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이것으로 이야기가 마친다고 해도 여기서 우리를 위한 어마어마한 진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구절들만 보아도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에서 치유 그 이상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는 사실 우리의 고통을 함께 느끼셨다. 궁지에 빠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의 마음이 우리에게로 뻗쳐 우리를 불쌍히 여긴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를 보살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을을 그냥 지나가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 구주가 되기 위해 들르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긍휼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계속된다. 그분은 나인에 사는 당신의 딸에게 이 선물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그 울고 있는 여자를 보고 다가가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녀에게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모여 있던 사람들을 당황케 하면서 슬피 우는 여인의 아들이 잠들어 있는 관으로 다가가셨다. 그때 그분은 놀라운 일을 하셨다. 관을 만지면서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이 비통해하던 여인은 기적을 경험했다. 자신의 아들이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모든 행동의 주체가 되셨고 그녀는 그 모든 은혜를 받았다. 그분은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하셨다. 그녀의 필요에 주목하셨다. 그것에 마음을 쓰셨다. 예수는 구주이시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상처 입은 불쌍한 딸에게 “아빠 여기 있단다. 모든 게 잘 해결될 거야.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 나도 마음이 아프단다. 특별히 너를 위해 너의 아들을 돌려보내 주마.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날 오후 예수께서는 한 어머니에게 아들의 부활을 통해 희망을 주셨다.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서는 희망뿐 아니라 그녀를 또다시, 그것도 영원히 구원하신다는 희망을 주셨을 것이다.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께서는 수백만 명에게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셨다.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 얼마나 큰 동정과 열정을 품고 계시는지를 모본으로 보여 주셨다.
예수님의 방문
예수께서 당신의 마을에 오셔서 당신의 삶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나의 필요를, 해결해야 할 문제를 그분께서 알고 계셨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는가? 당신은 단지 사랑받고 주목받으며 보호받기를 원할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인생은 계속해서 혼란과 마음의 상처로 휩싸인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돈, 직업을 잃었을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아침에 기도드리고 하루를 간신히 잘 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 모레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다.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언제쯤이면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주는 우리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가 가장 약할 때조차도 혼자가 아니라고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약속을 하셨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런 말씀도 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6). 마태복음 10장 31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또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나인의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것과 똑같은 긍휼과 보살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예수께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보증하신다. 그분께서 과부의 마을에 나타나셨던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우리는 그녀의 삶에 역사하신 예수님의 자비로운 행동들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에 이제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의 마을에도 계셔서 우리의 삶에서 그런 은혜를 베푸실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멈추고 예수께서 당신 안에 잠들고 있는 수백 만의 사람에게 말씀하실 거다. “일어나라!” 그때 우리는 그분께서 계신 곳으로 갈 것이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헤더 반덴호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앙윈에서 글을 보냈다. 현재 남편과 12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발문
한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께서는…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 얼마나 큰 동정과 열정을 품고 계시는지를 모본으로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