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교리
기본교리 22
창조주를 반사하다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발견하다
다니엘라 겔브리흐
우리는 자기 이론과 실제가 모순되는 사람들 때문에 외면받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벌리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이용해 먹는 이들 때문에 욕을 먹는다. 완벽한 모본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해도 망가진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그 나라의 참된 가치를 실생활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아로부터의 자유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편리성의 여부와 인간 철학에 따라 가치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사람들을 영존하시는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을 맡고 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기 바라시며,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생생한 예증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과 분리된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망가진 형편에 따라 행동한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존재하는 악에서 야기된 허무를 느끼며 의미 있는 삶을 찾아 헤맨다. 종종, 우리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나’이다. 그리고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익을 지킬 태세를 갖춘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다.
에덴 너머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구속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악이 우리에게 입힌 상처를 치료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상처의 한계 너머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깨진 인간성을 참된 고귀함으로 회복시킬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은 우리를 악에서 해방시키시고, 언약을 수행하시고, 당신 자신을 유일하신 참하나님으로 찬양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실존 문제를 위한 처방을 제공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면서 하늘의 가치와 조화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되도록 부름 받은 이유이다. 참으로 구속과 그리스도인 행동은 나란히 같이 간다. 구속의 실제는 심원한 품성 변화와 이기심의 속박에서의 자유를 함축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인간은 존재의 각 단계에서 거룩해져야 한다(레 11:44; 19:2; 20:26; 벧전 1:6 참조).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신 그분의 아들을 보내심으로 인간 존엄의 의미와 내용을 보여 주셨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자기 의와 자기 속임의 덫에 걸린 인간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는가? 어떻게 그분께서는 인류가 더 위대하고 더 가치 있는 목적에 눈을 돌리게 하셨는가? 답변은 단순하다. 그분의 삶을 통해서다. 그분께서는 매일의 삶에서 하늘 아버지를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하셨고 그분만을 의지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사람에게 의탁하지 않으셨다. 망가진 인간의 실상을 아셨기 때문이다(요 2:24, 25 참조). 그렇게 하기보다는 그분께서는 인류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들의 비통과 시련에 익숙해지셨다. 그분께서는 하늘 아버지만을 신뢰하셨다. 그분께서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비추어 자신을 정의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하늘 아버지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시면서 생애 속에서 하나님 정부의 가치를 보여 주셨다. 참된 믿음이란 인간 존재의 각 국면에서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을 그분은 삶으로 보여 준다. 예수께서는 편애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를 동등하고 가치 있게 여기셨다.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막 6:34). 그분은 세밀히 돌보시고 함께하시며 당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내쫓지 않으셨다(요 6:37 참조). 그분께서는 거저 주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며, 버림받고 부인당하고 거절당하셨음에도 참된 친구로 남아 계셨다. 그분께서는 악을 결코 용서하지 않고 일말의 불의도 행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존재를 사랑하셨다. 그분의 사랑은 맹목적이지 않은 실재였다.
그분은 인류의 겸손한 종이셨다. 결코 인류의 노예나 광대가 아니셨지만 자발적으로 섬김의 길을 선택하셨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그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개인적 삶의 영위가 아니었다. 그분은 하나님만을 위해 사셨다. 아버지의 가치에 따라 살며,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그분께 더 중요했다. 예수께서는 말씀과 행동이 일치했다. 참사랑과 정의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하늘의 대사로서, 그분은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셨고 참된 것을 밝히셨다(마 5:21~27 참조).
우리의 운명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므로 하나님께 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에 걸맞게 디자인된 삶을 살도록 속죄를 얻었다. 하나님의 품성은 참된 사랑과 성숙을 위한 우리의 준거 점이다. 우리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 가고 죄의 매혹적인 쾌락을 버리는 일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망가진 인간 실상을 보면서, 우리는 구속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절망적일 정도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 수 있으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에 대해, 또 그분이 실제로 어떤 분이신지 명상하는 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점검하면서 하나님 뜻에 조화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예리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리고 땅에 떨어지지 않는 그분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중심을 둔 생애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하나님 안에서 형성된 품성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간 생애의 모든 측면을 명확히 조명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부서진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다니엘라 겔브리흐
독일 프리덴사우 재림교회 대학교의 구약학 교수이다.
발문
하늘의 대사로서, 그분은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셨고 참된 것을 밝히셨다.
사이드 바
그리스도인의 품행
우리는 하늘의 원칙들과 조화되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경건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우리 주님의 품성을 재창조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에 그리스도와 같은 순결과 건강과 기쁨을 낳게 될 일들에만 관계한다. 이것은 우리의 오락과 여흥이 그리스도인의 취향과 아름다움의 최고 표준에 맞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문화적인 차이점들은 인정할지라도, 우리의 의복은 단순하고 정숙하고 산뜻해야 하며, 그들의 참된 미가 외양을 꾸미는 데 있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부드럽고 유순한 정신을 가꾸는 데 있는 자들에게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육체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그것을 현명하게 돌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적절한 운동 및 휴식과 더불어 가능한 한 건강에 가장 유익한 음식을 취해야 하며 성경에 명시된 부정한 식품들을 삼가야 한다. 술, 담배 및 마약과 마취제의 무책임한 사용은 신체에 해가 되므로, 우리는 그것들도 삼가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육체가 우리의 건강과 기쁨과 선량함을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훈육에 부합되게 하는 일에는 무슨 일에나 참여해야 한다(롬 12:1, 2; 요일 2:6; 엡 5:1~21; 빌 4:8; 고후 10:5; 6:14~7:1; 벧전 3:1~4; 고전 6:19, 20; 10:31; 레 11:1~47; 요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