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IDA :
삶이란 이런 것
마리오와 줄리에타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찾아온 삶
라엘 시저
마리오와 줄리에타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아들 호세가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14년 동안 자라면서 이렇게 서로 떨어지기는 처음이었다. 호세는 미국으로 떠난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었다.
선교사 훈련
마리오와 줄리에타는 아들을 정성껏 키웠다. 수년 동안 호세와 그의 형 마리오 주니어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내리기 전 차 안에서 기도를 드렸다. 줄리에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사람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세의 열정은 학교와 교회에서 동년배들 사이에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빛났다. 다른 사람의 필요에도 예민했다. 줄리에타가 말한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아이임을 쉽사리 알 수 있었어요.”
호세는 교회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시골 농장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사람들 모두와 삶의 모든 것, 가령 과학, 우주, 건축, 운동 경기(특히 축구), 승마, 수영을 좋아했다. 마음이 풍요로웠던 이 어린아이는 그림, 디자인, 동물,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았다.
줄리에타는 아들이 하나님을 위해 좋은 증인이 되어 줄 것임을 항상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들은 10대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이 끝나는 걸 원하지 않았죠.”라고 줄리에타가 말했다. 그녀에게 이것은 소중하고 긍정적인 영적 징표였다.
허리케인이 바꾼 운명
호세의 이모 엘바와 이모부 이그나시오 바우티스타는 열정적인 복음 전도 선교사로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캠프 베텔’이라는 초교파 캠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 캠프장에서는 사역자 학교를 운영하며 수많은 목회자가 여기서 훈련을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특이한 선교사 그룹이 캠프장을 찾아왔다. 허리케인 미치가 이 나라를 초토화시킨 바로 뒤였다. 미치는 1780년 허리케인 산 칼릭스토 이후 가장 무서운 태풍이었다.1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플로레스 파쿠세는 온두라스에서만 사망자 5,600명, 실종자 8,000명에 경제 손실은 약 38억 달러이며 50년간의 발전이 물거품이 되었다고 밝혔다.2
그 선교사들은 미국 테네시 주 데이튼에 있는 로렐브룩 고등학교 학생들로 허리케인 이재민을 돕기 위해 왔다. 달리 머물 곳이 없던 그들을 엘바가 캠프장에 받아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호감이 갔다. 그녀는 이렇게 근면하고 영적인 젊은이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엘바를 도와 부엌에서 일하면서 자신들이 다니는 로렐브룩 학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엘바의 딸 엘리자베스가 그 당시를 설명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젊은이들을 엄마가 만나게 된 거죠.”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엘바는 엘리자베스에게 로렐브룩에 가고 싶은지 물었다. “내가 집을 떠나 독립하는 것을 엄마가 허락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놀라웠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2001년, 엘리자베스는 로렐브룩 고등학교 신입생이 되었다.
더 많은 변화
엘바는 계속해서 로렐브룩 고등학교 신입생을 모집했다. 호세의 부모에게도 이 학교가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그 학교를 입이 마르게 칭찬하더군요.”라고 줄리에타가 말했다. “학교 운영 철학이 적힌 안내 책자도 주었어요. 로렐브룩의 최우선순위가 영적인 것이더군요.” 그녀는 호세를 보내기로 했다.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이 2년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이 학교는 호세와 그의 친구들이 5살 때부터 줄곧 다니던 학교였다. 그렇지만 줄리에타와 마리오는 이것이 호세의 인생을 위한 최고의 선택임을 알았다.
아들과 헤어지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마리오는 잘 알고 있었다. “호세가 집을 떠날 때 울지 말자고 아내와 약속했죠.”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막상 호세가 집을 떠나는 날 우리 둘 다 펑펑 울었습니다.” 새 학교로 떠나기 전 어머니의 조언을 호세는 기억하고 있다. “재림교 광신자들과 논쟁을 벌이지 마. 그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은 아니야. 그들은 안식일을 믿고 있지만 너는 진리를 잘 알고 있어. 기회를 잘 활용해.”
호세와 마리오는 얼마간 부자간의 여행을 떠났다. 호세는 아버지를 따라 시골 농장에 내려가 추억의 시간을 보냈다. 마리오는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이었지만 로렐브룩을 방문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호세가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온두라스로) 돌아왔습니다.”
선교사 호세
호세에게 로렐브룩은 자신만의 특별한 복음 전도를 시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질문을 많이 했어요. 남학생 주임 빌 카르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성경 공부를 같이하자고 제의했어요. 저는 성경으로 그 사람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죠.” 호세는 공부에 참여했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배웠고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삶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그가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바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정신이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그를 위해 준비해 온 삶이었다. “믿는다면 침례를 받으렴.”이라고 스티븐 콘웨이 학장이 말했다. 호세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촌 엘리자베스는 그가 처음으로 개종시킨 사람이었다. “호세는 진리를 배우자마자 받아들였어요.”라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 점이 존경스러워요. 호세가 많은 조언을 해 주면서 잘못된 길을 가면 야단쳐 주었기 때문에 내가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침례를 받기 전까지는 부모님에게 말하기 싫었어요.”라며 호세가 그 당시를 회상했다. “말씀드리자 엄마가 우시더군요. 그러더니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너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나 보구나. 돌아와서 우리를 가르쳐 주렴.’” 진심이 담긴 그녀의 말은 상상보다 더 큰 예언으로 성취되었다. 가족 모두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유럽으로
로렐브룩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낼 때 노르웨이에 위치한 ‘유럽 성경 학교(EBS)’ 입학 담당자인 에디 라미레즈가 로렐브룩을 찾아왔다. 그로 인해 호세의 시야는 엄청나게 넓어졌다. “하나님의 인도로 노르웨이에서 학생 겸 교직원으로 2년을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호세가 그 당시 경험을 설명했다. 훈련을 받고 일하면서 고향 생각을 했다. “시골 마을 엘 수야탈에 있는 아버지 땅이 생각나기 시작했어요. 도시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아주 동떨어진 곳은 아니지요. 노르웨이의 성경 학교를 온두라스에 그대로 짓는 꿈을 꾸기 시작했죠.”라고 호세가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온두라스에 또 다른 사역자 학교를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리오는 집으로 걸려온 호세의 전화를 기억하고 있다. 호세는 노르웨이의 학교가 좋아서 고향에도 비슷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노르웨이에 가자마자 엘 수야탈에서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물심양면 돕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기를 원하셨지만 나는 유럽 성경 학교와 비슷하게 ‘중남미 성경 학교’를 짓고 싶었어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 ‘호세야, 하나님께서 네가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하셨고 내 소유도 다 그분께서 주신 것이니 시작해 보도록 해라. 내가 받은 선물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2006년, 19살의 호세는 온두라스로 돌아와 기술 공학을 공부하면서 아버지가 제공한 24,000제곱미터 구아바 농장에 하나님을 위해 VIDA를 설립했다. 줄리에타도 합류했다. “하나님께서 왜 15년 전 호세의 아버지가 수야탈에 땅을 구입하도록 이끄셨는지를 깨달았어요. 호세가 생각하기도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계획 중이셨던 거죠.”
엘 수야탈에서의 새로운 삶
VIDA가 들어서기 전 인구 5천 정도의 엘 수야탈에는 재림교인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라면 불가능이란 없다는 걸 호세는 알았다. 복음 사업이 뿌리내리고 성장해 가는 가운데 EBS와 로렐브룩의 도움을 받아 그는 전도회를 개최했다. 사람들이 설교를 듣고 즐거워했다. 일부는 기존의 신앙 지도자를 고발했다. “당신들은 지금까지 거짓을 가르쳐 주었어.”라며 한 사람은 울부짖었다. 나이가 지긋한 트리니토가 엘 수야탈을 가로지르는 조그마한 개울에서 최초로 침례를 받았다. 목사가 그에게 교리에 모두 동의하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물론이죠, 목사님. 다 믿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침례 받으러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물속에서 나온 뒤 그는 소감을 밝혔다.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편안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땅을 제공한 아버지가 주님께 마음을 드렸을 때 호세는 정말 기뻤다. 이들 부자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명령을 수행하며 모든 일을 함께하고 있다.
줄리에타도 옆에서 돕고 있다. 그녀는 건강 기별을 소중히 여기고 엘렌 화잇을 선지자로 믿는다. “남편이 사실상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어요. 나는 기도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통해 지원 사격을 하고 있죠.”
VIDA 사역
2006년 엘 수야탈에서 시작한 선교 사업인 VIDA는 스페인어 철자로 ‘생명’을 뜻하며 ‘유익한 발전을 위한 통합적 비전(Vision Integral para el Desarrollo Asistencial)’이라는 말의 머리글자이다. 그 무엇보다 VIDA는 전 세계 사람들을 통합하고 있다. 건강생활부장 하이케 올셰브스키는 비영리 부분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은 노련한 독일 태생 의사이다. 호세와 로렐브룩, EBS에서 함께 공부한 벨리즈 태생 엘리아자르 모로는 재정을 담당하고 있다. 복음전도부장은 코스타리카에서 온 에릭 몬테네그로이다. 뉴잉글랜드에서 온 조셉 낼리는 처음에 채식 주방장으로 VIDA에 합류했다가 지금은 중미 성경 학원을 책임지고 있다. 스위스에서 온 마누엘라 판카우저는 캄포스 블란코스 이중 언어 학교를 책임지고 있다. 이 학교는 처음에 학생 두 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 35명으로 늘었다. 나오미 잭슨 홍보부장은 VIDA에 합류한 두 번째 미국인이다. 그녀는 숙련된 음악가로서 해마다 몇 주간 미국에서 음악을 통해 VIDA를 홍보하고 있다. “방문객이나 자원봉사자들은 평균 두 달 정도 여기에 머뭅니다.”라고 호세는 VIDA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다. 체류 기간은 2주에서 4주까지 다양하다. 성경 학교와 다른 학생들은 10개월 훈련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때는 수업과 실습이 매일 4시간씩 진행된다. 개인의 성장과 팀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 VIDA 국제 팀은 이른 아침마다 산에 올라 개인 묵상 시간을 갖는다.
나오미 잭슨이 사업 초창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EBS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개월에 걸친 선교 여행을 세 번 떠났습니다. …당시 EBS 부장이던 나르타와 베르너 루치는 늘 VIDA를 후원해 왔고 지금도 연례 선교 여행에 참석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EBS 지역 교회인 스코첼브 재림교회와 하트굿 재단, 역시 노르웨이에 소재한 매트슨 선교 학교, 기타 캐나다와 프랑스를 포함하여 앞서 언급한 여러 나라에서 선교사 정신으로 참여한 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모든 것을 헌신하며 이 사업에 동참한 선교사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호세는 말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각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VIDA의 청년 지도부는 그들 자신뿐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분의 사역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 아버지가 가진 것 중에서 정말 아버지 것은 없어요. 모든 하나님 것이죠.’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당황스럽기도 해요.”라고 마리오가 속내를 비쳤다. 하지만 호세는 자신이 삶으로 경험하고 믿는 것만 설교한다. 정직하고 근면한 아버지와 진실된 선교사인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이모부에게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온전히 헌신하는 법을 배웠다. 이러한 모습은 구내에서 일할 때, 지역 사회에 건강 방문을 갈 때, 엘 수야탈 가정에 성경 공부와 복음 전도 사업을 할 때, 기도로 진행되는 행정 위원 회의 때 드러난다. VIDA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드렸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얻는다. 사람들은 이들의 건강 사역에 감탄하고 있다. 5천 달러짜리 벽돌 건물에서 시작한 VIDA의 시설 가치는 40만 달러에 이른다.3
VIDA는 열정적으로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재능이나 재원이 필요치 않습니다.”라고 호세가 주장했다. “그분께는 우리의 약함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그분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이곳 청년들을 쓰셔서 큰일을 하십니다. 평신도가 더 많이 모여 선교 활동을 할 때, 사역이 완수될 것입니다.”
마리오와 줄리에타는 영광스럽고 영원한 생명을 쟁취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아니, 이미 그들은 기쁨으로 결실을 거두고 있다.
라엘 시저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장이다. VIDA에서 교편을 잡는 동안 사역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각주)
1 www.gobierno.pr/NR/rdonlyres/49EA64D0-305B-4881-8B85-04B518004BD5/0/Ciclones_en_PR.pdf.
2 www.ncdc.noaa.gov/oa/reports/mitch/mitch.html.
3 Tax-deductible contributions to support VIDA International may be made through Outpost Centers International(OCI ), 5132 Layton Lane Apison, Tennessee 37302; info@outpostcenters.org
캡션
17쪽
위 : 시작은 여기서 : 테네시 주 로렐브룩 고등학교 학생들은 온두라스에서 허리케인 피해 지역 구호 봉사에 참여했다. 그들이 벌인 활동들이 VIDA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른쪽 : 선교사 훈련 : ‘중미 성경 연구원’에서는 10개월 과정으로 개인 전도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18쪽
위 : 인재 발굴 : 홍보부장 나오미 잭슨은 음악적 재능을 활용하여 미국에 VIDA를 선전하고 있다. 오른쪽 : 현장 실습 : ‘중미 성경 학교’ 학생들은 직접 사람을 만나면서 전도 경험을 쌓는다.
19쪽
이중 언어 교육 : 캄포스 블란코스 교육 센터에서는 수준 높은 스페인어, 영어 교육을 실시한다. 오른쪽 : 단순한 진리 : VIDA 복음전도부장 몬테네그로가 성경 교수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