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초월한 한가족
나오미와 나탈리 분스트라 자매, 진 분스트라
올해 6월, 11살인 나오미와 13살 나탈리는 엄마와 함께 남인도의 안드라프라데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자매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자매의 가족이 ‘아시안 에이드(Asian Aid)’를 통해 후원하고 있는 한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탈리의 부모님은 아시안 에이드의 명예 대사로 봉사해 왔으며 이를 계기로 아시안 에이드가 진행하는 활동에 직접 체험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 나오미와 나탈리 두 자매의 여행 이야기를 들어 보자.
나오미 : 첫 만남
에어컨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태연한 척 독서에 집중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잔뜩 긴장한 탓이다. ‘그녀가 과연 날 좋아할까? 무슨 이야기를 하지?’
나무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엄마! 언니! 드디어 왔나 봐!” 엄마는 한 남자와 여자를 다정하게 방으로 맞이해 들였다. 그들 뒤로는 나탈리 언니 나이쯤으로 보이는 세 명의 소녀가 보였다. 세 소녀는 반짝거리는 금색 테가 둘린 화려한 원피스를 입었다.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머리는 다소 긴장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지나 등 뒤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를 곧바로 알아챘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어 왔던, 수많은 사진으로만 봐 왔던 그 소녀가 내 눈앞에 있다니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안녕, 쉴라. 나는 나오미라고 해.”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드디어 내가 후원하는 ‘자매’를 만나고 있다!
우리는 작은 방에 함께 있었다. 처음에는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들도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수개월 동안 이날을 그토록 기다려 왔는데 막상 만나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엄마가 가져다준 주스를 홀짝이며 쉴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쉴라는 입술을 빨면서 애꿎은 발만 보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긴장한 모양이다. 쉴라의 친구들만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여러 질문을 던지는 나탈리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의 여행을 떠올려 보았다.
나탈리 : 구출받은 소녀들
인도의 방갈로르 공항에서 나오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일종의 놀라움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메릴랜드보다 이곳이 훨씬 후덥지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기가 무척 시원하고 상쾌했다. 방갈로르에서 차를 타고 있는 내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라 문을 닫은 조용한 상점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가게 간판에 적힌 글자를 감탄하며 바라보기도 하고 이 한밤중에 거리를 달리고 있는 수많은 오토바이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나는 쉴라를 생각했다. 그녀는 나와 같은 9학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와 미국의 학년 체계는 다르단다. 어쨌든 우리는 나이가 같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녀의 생활과 내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그러나 나중에 전해 들은 인도의 일부 소녀들의 생활사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후에 우리는 아시안 에이드에 근무하는 아니타 카나이야를 만나 소녀들을 구출하는 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니타는 소녀들이 생계를 위해 어떻게 매춘부로 내몰리게 되는지 설명해 주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매춘부가 되거나 노동으로 내몰리는 소녀들의 나이가 16세에서 18세 전후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 평균 나이가 12세에서 15세 전후라고 한다. 바로 나와 쉴라의 나이이다! 아니타는 이 소녀들을 성매매 고리에서 구출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열정과 헌신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오미 : 맹아 학교
모두 주스 잔을 비웠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아직도 어색했다. 미국에서 아시안 에이드를 책임지고 있는 짐 레니 선생님과 ‘해 뜨는 집(Sunrise Home)’을 운영하고 있는 랄리타와 라즈 바르마 부부는 나탈리와 나에게 소녀들과 산책하고 올 것을 제안했다.
쉴라는 우리가 머물었던 보빌리의 아시안 에이드 맹아 학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고아원 ‘해 뜨는 집’에서 살고 있다. 나탈리와 나는 쉴라와 다른 소녀들과 함께 캠퍼스 주위를 걸었다. 학생들은 아직 수업 중이었다.
맹아 학교에는 어린이 150여 명이 살고 있다. 처음 우리가 도착하자 학생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 저도 잘 지내요. 이름이 무엇입니까?” 학생들이 문장을 외우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약간의 시력이 남아 있는 학생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 내가 다가갔을 때 팔꿈치로 내가 옆에 있다는 표시를 해 주고 나와 악수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는 모습을 보았다. 가장 나이가 어린 학생들은 나탈리와 엄마와 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캠퍼스를 거닐며 비로소 쉴라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 마치면 뭐하고 싶니?” 내가 물었다. 그러자 쉴라가 대답했다. “공부, 나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우리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쉴라의 친구들은 미국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학교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는지 질문을 쏟아 냈다.
방으로 돌아올 때는 서로 더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아마 내일은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나탈리 : 인도에서 보낸 안식일
우리는 쉴라보다 먼저 교회에 도착했다. 쉴라의 학교이기도 한 재림교회 학교는 보빌리의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안식일마다 맨 위층에 있는 강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강당 문 앞에 놓여 있는 많은 신발을 보았다. 엄마가 이 교회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오미는 재빨리 신발을 벗고 웃으며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 신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오미가 신이 났다!
큰 경적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해 뜨는 집’이라고 적혀 있는 노란색의 큰 버스가 주차하고 있었다. 내가 몸을 숙이고 손을 흔들자 80여 명 되는 학생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곧 쉴라가 우리에게로 와서 작은 강당에 함께 앉았다. 강당 안은 너무 더웠다. 천장에 선풍기가 돌고 있었지만 그리 시원하지는 않았다. 쉴라도 안식일 학교 순서를 맡았다.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학생들이 노래를 한 후 남학생들이 재미있는 촌극을 공연했다. 똑같은 드레스를 맞춰 입은 쉴라와 여러 여학생이 노래를 두 곡 더 불렀다. 예배 시간 내내 쉴라는 나와 나오미 사이에 앉아 앞에서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값진 경험의 시간이었다. 정말이지 꿈만 같았다!
나오미 : ‘해 뜨는 집’ 방문기
일요일 아침, 심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아무것도 먹을 수도 먹고 싶지도 않았다. 어제 그 강당의 열기가 꽤 심했나 보다. 마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을 놓칠 수는 없었다. 쉴라와 ‘해 뜨는 집’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나는 밖의 풍경을 보며 두통을 잊어 보려고 애썼다. 도로 위로 한 무리의 염소 떼와 머리에 바구니를 인 여자가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는 남자 아이들과 오토바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개 몇 마리가 보였다. 사람을 가득 태운 오토릭샤(인도의 3륜 대중교통 수단)와 같은 작은 차량들도 우리 옆을 지나고 있었다.
쉴라가 살고 있는 집은 보빌리 외곽 아주 조용한 지역에 있었다. 그곳은 초록색 벼가 가득한 논과 평화로운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자 아이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건물들은 새것이었고 작년에 이 ‘해 뜨는 집’이 봉헌되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아이들은 보빌리 중심가의 마당도 없는 작은 집에서 살았다. 쉴라는 우리를 보도로 이끌고 와서 운동장을 지나 자기 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쉴라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있어서 더 행복했나 보다.
랄리타와 라즈 부부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쉴라에게 그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쉴라는 평상시의 부끄러운 기색 없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랄리타는 진짜 엄마 같아. 내게 이야기도 해 주고 내 말도 잘 들어주셔.” 가족과 함께 있는 쉴라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드디어 쉴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학생 다섯 명과 함께 방을 쓰고 있었는데 오른쪽에 있는 이층 침대의 아래층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쉴라와 다른 여학생 두 명은 더 어린 소녀들을 도와준다. 학교 가기 전에 머리를 빗겨 주고 빨래를 도와주기도 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들이 내 머리를 빗겨 주기 시작했다.
쉴라의 장롱은 깨끗하게 정돈된 원피스와 사리(인도의 전통 의상)로 가득했다. 옷들은 모두 화려한 색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는 랄리타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면 랄리타 아주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가난하다고 여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다음으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 준다. 또한 예배를 드리게 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게 한다. 랄리타 아주머니는 쉴라나 다른 아이들의 진짜 엄마와도 같았다.
쉴라의 방문 뒤에 걸려 있는 눈에 익은 그림이 보였다. 그것은 내 방에도, 나탈리 언니 방에도 걸려 있는데, 예수님이 검은 양을 안고 있는 그림으로 나단 그린의 작품이다. 소녀들이 내 머리를 빗겨 주고 있는 동안 나는 같은 그림 아래에서 잠든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그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우리는 게임도 하고 밖에서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 강에서 놀자고 제안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나탈리 : 쉴라의 이야기
‘해 뜨는 집’에는 소년 30명과 소녀 50명 총 80명이 함께 살고 있다. 모두 고아여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쉴라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랄리타 아주머니는 아이들마다 분홍색의 두꺼운 파일을 만들어 보관해 두고 있었다. 쉴라의 파일 맨 앞에는 그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쉴라는 9살쯤 돼 보였으며 비쩍 마른 몸에 배만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는 구릉 지대의 한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쉴라의 가족은 너무 가난했다. 열대 과일인 타마린드를 모아 물물 교환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날씨가 좋지 않아 일주일이나 타마린드를 모을 수가 없었는데 그때는 먹을 것조차 없었다고 한다. 쉴라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아빠는 곧 재혼했으나 새엄마는 쉴라를 원치 않았다. 쉴라를 구박하고 무시했다. 한 재림교회 목사가 이 상황을 보고 쉴라의 아빠에게 쉴라를 ‘해 뜨는 집’에 보낼 것을 권유했다. 쉴라를 제대로 돌볼 수가 없다고 느낀 아빠는 결국 쉴라를 보내기로 했다.
만약 쉴라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책을 읽을 수도, 대수학을 공부할 수도, 간호사를 꿈꿀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매춘부 생활에 갇혀 있다면 또 어떨까? 생각만 해도 슬프다. 그러나 지금 쉴라에게는 가족이 있어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쉴라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형제자매들이 있다. 쉴라에게도 가족이 있어 정말 기쁘다. 나오미와 나 역시 쉴라의 가족이 아닌가!
쉴라의 이야기와 인도에서의 특별한 경험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일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분명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설사 160만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라 해도 그분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낼 수 없다.
나오미 : 작별 인사
‘해 뜨는 집’에서의 마지막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 예배 내내 칠면조와 닭들이 꽥꽥 울어 댔다. 해가 지자 시원해졌다.
우리는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쉴라는 우리가 탈 차량까지 따라왔다. 우리는 10번이나 쉴라를 꼭 안아 주었다. 마침내 쉴라가 내 손을 꼭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미국에 계신 ‘아빠’께도 안부 전해 줘. 언젠가 ‘아빠’를 만날 수 있겠지!” 쉴라가 그렇게 말하자 나 역시 너무 슬펐다. 엄마 역시 눈물을 닦고 계셨다.
쉴라는 더 이상 사진 속의 소녀가 아니다. 또한 단순히 편지를 쓰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쇼핑을 해야 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나는 이제야 내 형편과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쉴라와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제 쉴라는 정말로 내 자매이다. 내가 왜 그 긴 시간 동안 인도에 가야 했었는지 알 것 같다. 지금 당장 다시 인도로 돌아가고 싶다!
나오미는 현재 중학교 1학년으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오미는 언젠가 인도로 돌아가 아이들과 유기견들을 돌보고 싶어 한다. 고등학교 신입생인 나탈리는 노래하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녀가 후원하고 있는 쉴라처럼 간호사가 되고 싶어 한다.
(사진 설명)
자매들 : 왼쪽부터 나탈리 분스트라, 쉴라, 나오미 분스트라.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자매가 되어 행복하다.
아이들을 만남 : 나탈리와 나오미 그리고 엄마인 진 분스트라가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지역의 보빌리 맹아 학교에서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해 뜨는 집 : 왼쪽 : 랄리타 바르마. 그 옆에 나탈리 분스트라. 오른쪽 : 진 분스트라. 그 옆에 ‘해 뜨는 집’에 살고 있는 소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오미 분스트라
친밀감 : 중앙의 파란 원피스를 입은 나오미와 오른쪽의 주황색 원피스를 입은 나탈리는 ‘해 뜨는 집’의 소녀들과 함께 노래하고 게임을 하면서 금세 친해졌다.
환영의 꽃다발 : 보빌리 맹아 학교 남학생들이 학교를 방문한 진 분스트라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해 뜨는 집’ : 아시안 에이드가 설립한 고아원에는 소년 30명, 소녀 50명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