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청지기 직분의 대항문화
소유에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다
올리버 글란즈
현재 세상은 수년간 심각한 경제적 재정적 위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가정은 주택 담보 대출을 갚을 수가 없어서 집을 떠나고 자녀들은 대학 교육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이 인간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진다.
‘경제’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oikonomia)’에서 왔는데 우리는 그 말을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딤전 1:4 참조). 그것은 ‘오이코스(집)’와 ‘노모스(법)’로 구성된 합성어로 ‘가족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economist, 눅 12:42 참조) 혹은 청지기는 가족 법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족 법이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가 어떤 집에 대해 말하는가에 따라 바뀐다. 그곳이 병원인가, 혹은 학교, 은행인가? 이러한 각각의 집들은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핵심 가치를 보호하고 그들이 번창하도록 도울 특별한 법을 요구한다. 학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는 학생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학교를 관장하는 법은 교육적 가치에 있고 학습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수반한다. 병원은 환자들을 돌본다. 병원을 관장하는 법은 치료의 속성을 가지며 건강을 향상시키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은행은 재정을 절약하고 증가시키는 돈의 법을 따른다. 가치가 거기에 맞는 법을 만들게 한다.
성경의 대항문화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는 질문은 무엇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특징짓는 가치인가가 된다. 현대 문화는 특별한 방식으로 이 질문에 대답하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는 우리 주변의 물질적 이익에 있다. 이 핵심 가치에서 끌어낸 법은 경제적인 성격을 지니며 물질적 부를 증식시키는 길로 인도한다. 돈을 많이 벌 때, 큰 차를 살 수 있을 때, 좋은 집을 소유하고 최신 스마트폰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사회는 우리를 좋은 소비자가 되도록 압박한다. 인간은 소비하는 존재다.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서 발견하는 기본 가치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제공하신 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창조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구 전체를 망라한다(창 1:28 참조). 우리는 강, 식물, 동물로 구성된 집을 받았다. 그러나 이 집의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성경은 우리의 궁극적인 ‘자본’이 귀금속이나 곡식의 수확 같은 돈의 가치로 측정되지 않으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사이의 창조 언약 관계, 즉 (a) 남녀 사이, 더 일반화해서 사람 사이, (b)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 (c)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둔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주 좋았다.”라고 말씀하신 유일한 때는 그분께서 남녀 사이와 사람과 동물 사이의 관계를 세우신 날이었다(28~31절 참조). 인류에게는 선한 왕이 자기 백성을 돌보듯이 동물들을 돌보라는 요청이 주어졌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보호해야 하고 그들을 음식으로 낮추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실 때 그분은 진지하셨다. 사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서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같은 형태의 음식(즉 과일과 채소)을 공유하게 되어 있었다.
안식일과 청지기 직분
결혼과 안식일(창 2:1~3, 24, 25 참조)은 창조의 핵심 가치로서의 삼중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조한다. 경제 문제가 안식일을 지배하지 못한다. 일과 다른 의무들은 더 이상 친밀함을 방해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서로 분리시키지 못한다. 안식일은 시공간에서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들은 가족 구성원일 수도 있고, 혹은 이웃이나 외인,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우리 시대에 아주 급진적이다. 주 중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물질적 발전이라는 우상을 경배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산 존재들과 의미 깊은 관계에 성공하고 더 발전시키길 원한다. 인간은 동반하는 존재이다.
안식일은 일에서 얻은 피곤함을 회복하기 위해 쉬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일에서 생긴 피곤함을 회복할 필요가 없었다. 안식일 사상은 우선순위를 바르게 두게 하며, 주 중에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게 한다. 탈진, 좌절, 물질적인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집의 핵심 가치인 친밀, 돌봄, 이해, 인정을 손상시키지 못한다.
성경은 안식일이 한 주간의 절정일 뿐 아니라 우리 삶 각 국면의 초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다. 매 안식년에 사람들은 일에서 해방되었다(출 23:10~13 참조). 부모는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결혼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영적 동행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안식일은 매주의 절정 혹은 우리 삶의 초점일 뿐 아니라 각 세대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 아무도 궁극적으로 자기 부모의 경제적인 선택 때문에 고통 당하지 않도록 했다. 50년마다 각 사람은 충분한 물질적 소유를 가지며, 빚에서 풀려나고 관계의 초점을 둔 생애를 살도록 보장받았으며, 그들은 동물과 하나님의 피조물을 보호하였고 하나님을 생애의 중요 안내자로 삼았다(레 25:8~13 참조). 안식일은 ‘창조 언약’과 동의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안식일은 우리 ‘집’의 기본 가치이다.
인류는 안식일의 ‘이코노미스트(청지기)’가 되도록 요구받는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청지기 사상의 기본이다. 이 가치에 의존하는 법들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안식일을 지키는 삶이 무엇과 같은지, 관계는 어떻게 발전하고 유지되는지를 보여 주는 많은 법을 기록하도록 시키셨다.
불행히도 성경의 경제 사상은 인류 역사에서 도전을 받아 부패를 되풀이하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창 4:8, 23 참조). 그들은 동물 동반자들을 죽이기 시작했고(능한 사냥꾼이고 바벨의 건립자인 니므롯과 함께 이 일이 시작됐다(창 10:9 참조).) 궁극적인 동반자인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시도했다(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보라.). 그리고 물질적 진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생산물의 중심지로 도시를 건설하였다. 생애의 궁극적 가치로서의 안식일 사상은 무시되고 대체되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재림 운동을 시작하셨다.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마지막 날 기별을 선포하고 우리의 수많은 재정적 경제적 위기의 희생자이자 원인 제공자인 세상 거주민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자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되시는 창조주를 상기시키라는 요청을 받았다. 셋째 천사는 우리에게 용기를 내고 시간과 돈과 은사와 재능을, 바벨론 세상에서 우리의 사회적 신분을 격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물질과 재화의 획득보다는 우리 가족, 이웃 동료, 자연계, 교회에 더 많이 투자하라고 호소한다(계 13:15~7; 14:9~12 참조). “바벨론이 무너졌도다!”(계 14:8 참조)라는 둘째 천사의 외침은 우리에게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의 이코노미는 곧 회복될 것이다.
올리버 글란즈
독일 태생으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으며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와 네덜란드 개신교 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가족은 아내 카렌과 두 딸이 있다. 최근 앤드루스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교수로 부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