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기타 결함들
부지중에 지은 죄(레 4:2 참조)란 무엇인가?
구약 성경에서 부지중에 지은 죄에 해당하는 성경 용어로는 명사 ‘샤가가(실수, 잘못)’와 동사 ‘샤가그/샤가(실수하다, 어긋나다, 잘못하다)’가 있다. 이 용어들의 의미는 어느 정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명사와 동사 모두의 용례를 살펴보고 ‘고의로 짓는 죄’를 논평하기로 하겠다. 이것은 부지중에 지은 죄의 의미를 명료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명사 ‘샤가가’ : 이 명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번역되었다. ‘무지’(KJV), ‘부주의하게’(NAB), ‘무심코’(NIV, NASB), ‘무의식 중에’(RSV), ‘무심코 벗어난’(NET). 이 말은 생각의 무지 혹은 의도의 배제를 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견해는 그 말과 함께 사용된 몇몇 평행 구절의 지지를 받는다. 몇 경우에 그 사람은 부지중에 있거나 “모르고” 있다(레 5:17, 현대인의 성경). 또 죄를 범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2절 참조) 후에 깨닫는다(3절 참조).
그러나 명사 ‘샤가가’는 자신이 죄를 지은 사실을 알고 있는 때처럼 의식적으로 범죄 한 상황에서도 사용된다(레 4:22, 23 참조). 의도라는 요소가 이 사례에 특별히 나타나지만 다른 경우들에는 그렇지 않다(민 35:11; 신 19: 4, 5 참조). 이것은 그 명사가 무의식적인 죄 혹은 부지중에 율법을 범한 죄, 즉 무의식적으로 지은 죄, 심지어는 부주의한 죄를 지칭한다고 제안한다.
2. 동사 ‘샤가그/샤가’ : 이 동사는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언급한다(욥 6:24; 19:4; 겔 45:20 참조). 그러나 그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은 잘못을 더 많이 지칭한다. 이사야는 그 낱말을, 술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을 묘사하는 ‘비틀거리다.’라는 동사와 평행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은 본의 아닌 행동이다. 왜냐하면 술을 먹었기에 그 사람은 똑바로 걸을 수가 없다. 다른 경우에, 목자나 지도자가 없음으로 양들이 길을 벗어나 방황한다(겔 34:5 참조). 그들 스스로에게는 내면의 자제력과 방향이 없다. 잠언은 훈계를 받지 않음으로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잠 5:23; 19:27 참조). 이런 일은 하나님께 무관심할 때도 일어난다(시 119:67, 21 참조). 이런 본문들은 자기 수양을 통해서만 개선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행동은 무의식적이다. 우리 스스로 길에서 어긋나고 실수를 하고 잘못된 일을 행하는 형태의 죄는 무지의 죄뿐 아니라 다른 것도 말한다. 다윗이 자기 목숨을 살려 준 것을 깨달은 후에 사울은 화평하려고 애쓰며 “내가 범죄 하였도다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대단히 잘못되었도다”(삼상 26:21)라고 말한다. 그는 비록 의도적으로 다윗의 목숨을 취하려고 했지만, 다윗을 죽이려는 자신의 시도들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사울이 다윗을 공격한 것은 자기 통제의 결핍 때문이었다.
3. 고의적인 죄 : ‘부지중에 지은’ 죄는 고의적인 죄와 대조를 이룬다(민 15:30, 31 참조).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외면하는, 하나님께 반하는 거만하고 반역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이런 형태의 죄에는 아무런 속죄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의도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지만 그 동사의 우선적인 관심은 그 사람이 잘못했고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있다.
‘부지중에 지은’ 죄는 연약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결과로 범한 죄를 지칭하는 듯하다. 인간이 연약해서 그런 것이기에 그는 주님과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부지중에, 알지 못하고, 하는 일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들은 범죄 하였다. 우리는 그것들을 부지중에 지은 죄로 말할 수 있다. 자기 통제의 결핍, 본의가 아닌 것, 심지어 무지가 죄의 핑계는 될 수 없지만 용서는 언제나 가능하다(요일 2:1, 2 참조). 주님께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승리를 제공할 수 있으시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샤가) 말게 하소서”(시 1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