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재림 청년이 우승을 차지하다
2013년 11월 3일은 29세의 프리스카 젭투에게 너무도 행복한 하루였다. 케냐의 재림교인이자 마라톤 선수인 젭투는 처음으로 출전한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25분 07초로 여자부 1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2위로 들어온 선수보다 49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젭투는 세계 주요 마라톤 대회 여자부 우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화 50만 달러를 상금으로 받았다.
젭투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인 노아 킵퀘스 추모 목사는 모든 교인이 젭투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프리스카에게 참으로 감사합니다. 프리스카와 남편은 교회를 위해 매우 헌신하는 부부입니다.” 추모 목사는 젭투의 남편이 내년에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프리스카가 뉴욕에서 돌아오면 특별한 축하 파티를 할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젭투가 처음부터 재림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그녀가 처음 주요 대회에서 경기를 시작할 당시 이튼에 있는 훈련 캠프에서 재림교인 마라톤 선수인 아벨 키루이를 만났다. (키루이는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마라톤 은메달리스트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는 2013년 3월 호 <애드벤티스트 월드>에 소개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bit.ly/IeqvaX를 참고할 것) 키루이는 젭투를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로 초청했다. 젭투는 이내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젭투는 침례를 받은 후 곧 결혼했고 이때 마라톤은 잠시 쉬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젭투는 2011 대구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뒤이어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마라톤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3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추모 목사는 교회 내의 달리기 선수들이 재림교인 육상협회를 창설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운동선수들이 주요 경기에 출전할 때면 교회에서는 특별한 헌신 예배를 드린다. 운동선수들은 이 예배를 통해 그들이 달리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기억한다.
-킴벌리 러스테 마란(클라우드 리츨리 보도)
몬테네그로 컨퍼런스, 포스트모던 사회의 선교를 논하다
2013년 11월 12일부터 3일간 몬테네그로에서는 ‘평범을 뛰어넘어, 유럽에 하나님을 알리자’라는 주제로 트랜스-유럽지회가 주최한 세속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대총회 세계선교부 산하 포스트모던 선교 연구소 소장이자 이 세미나를 조직한 미로슬라브 푸이치 박사는, 종교 기관에 환멸을 느끼지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세대에게 선교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님께서 주셨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분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또 진정한 관계나 현대 기술을 통해 전파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사람들이다.
이 세미나에서는 ‘문화, 본질, 실천 방법’이라는 세 가지 주요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문화’에서는 절대적인 진리의 거절과, 강압(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에 대해 고찰했다. ‘본질’에서는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조직된 종교나 이념 등 근대주의 체제의 실패를 바탕으로) 살폈다.
‘실천 방법’ 면에서는 참석자들이 포스트모던 문화에서 어떤 방법으로 상호 작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토론했다. 참석자 140여 명은 발표 후에 이어진 토론에 참여했다.
존 서리지 웰시 미션(Welsh Mission) 회장은 “많은 신자와 함께 가야 할 남은 길이 멀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당장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덜 형식적인 예배, 아웃사이더나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 교회를 선교의 지역 사회 중심으로 삼기보다 밖으로 나가 사역하기 등입니다. 카페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덴마크의 재림교회 목회자인 안네-마위 뮐러 목사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법이 변하고 그 방법대로 교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의 삶이 도전 그 자체입니다. 저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여러 방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교회가 처한 문화와 연관되어야 합니다. 현재 문화는 매우 세속적이며 포스트모더니즘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처한 문화 속에서 교회가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발표자가 아닌 참가자로 참석한 대총회장 테드 N. C. 윌슨 목사는 “세상에는 사람들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모두 이곳에서 들은 것을 각자의 환경에 접목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포스트모던 사회나 누구에게든 선교하는 것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밖에 나가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관계 중심적이고 사전 준비된 적극적인 접근입니다.”라고 말했다.
트랜스-유럽지회 지역 총무이자 컨퍼런스 운영자인 라아파트 카말 목사는 5년이나 6년에 한 번이 아니라 2년마다 이런 모임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새로운 요소를 토론에 포함하기 위해서 말이죠.”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발행인 클라우드 리츨리, 몬테네그로 베치치
삼육대학교에서 사립대총장협의회를 개최
2013년 10월 11일, 대한민국 교육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이 서울의 삼육대학교에서 열린 11회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KPUPC)에 참석했다. 본 대학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재단 소속 학교이다.
협의회에는 서남수 교육부장관, 차관 그리고 사립대 총장 100여 명이 참석했다. KPUPC는 158개 사립 대학 간 상호 협력을 통해 사립 대학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교육 기관 협의회이다.
김상래 삼육대학교 총장은 환영사를 통해 삼육대학교의 운영 철학과 설립 배경을 소개했다. 서강대 총장이자 KPUPC 회장인 김준영 박사는 김상래 총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회의에서는 특히 대학 구조의 개편과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사립 대학의 총체적 현안이 논의되었다. 또한 사립 대학 현안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교육부와의 질의응답 시간도 진행되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삼육대학교 역사가 107년이라는 사실에 참 놀랐습니다. 40여 년 전 대학 재학 시절 삼육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학교가 굉장히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앞으로도 삼육대학교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삼육대학교는 참석자들에게 채식 식단으로 오찬을 제공했다. 참석자들은 학교를 위해 축배를 들며 재림교회 채식 요리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아름다운 캠퍼스에 감탄하며 따뜻하게 환영한 삼육대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석희, 북아태지회, 서울
글라골 문자 신약 성서 출판 450주년 기념
어느 상쾌한 가을날 안식일 오후, 자그레브에는 450년 전 이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글라골 문자로 된 신약 성경을 출판하여 보급한 지 450주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와 미국의 재림교인 및 학자들과 출판 전문가들이 모였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당시 그 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중세 초기에도 성경 구절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지만 신약 성서 전체를 문자로 출판한 것은 글라골 문자판이 최초이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이보 요시보비치 대통령은 비록 기념식에는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성명서를 통해 “이 일은 종교 개혁 이후 있었던 훌륭한 시도이며 노력입니다.”라고 말하며, “출판된 신약 성경의 원본은 크로아티아의 문화적, 지적 유산으로 보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본 교단 소속 아드리아틱 유니언 대학과 자그레브 대학의 철학과 교수들이 개최한 세미나에는 학생, 교수 그리고 글라골 신약 성서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수십 명이 참석했다. 이 사업은 종교 개혁의 여파로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며 편집과 인쇄 작업은 독일의 튀빙겐 근처 바트 우라흐에서 진행했다.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는 성서 인쇄 및 보급에 재정을 지원했고, 가톨릭 주교 출신으로 종교 개혁에 참여했던 사람도 최소한 한 명 이상 이 일을 도왔다.
이 신약 성경은 글라골 문자로 인쇄되었다. 글라골 문자는 수백 년 전까지 크로아티아인들이 사용했던 크로아티아의 독특한 문자이다. 또 다른 판본은 키릴 문자로 인쇄된 것이다. 1600년대에는 키릴 문자를 사용했던 일부 크로아티아 사람들(달마티아와 일부 보스니아)도 있었기 때문에 키릴 문자로도 출판되었던 것이다. 또 세르비아인과 불가리아인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등이 이 문자를 사용했다. 발칸 반도의 남쪽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두 문자를 사용하여 성경을 인쇄했다.
아드리아틱 유니언 대학의 드라구틴 마탁 부학과장은 모든 사람이 성경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 글라골 신약 성서가 출판된 목적이라고 언급하며, “그 당시 글라골 문자와 키릴 문자로 인쇄되었기 때문에 이제 이 신약 성경은 크로아티아 문화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그레브에서 뉴스 편집인 마크 A 켈너, 아드리아틱 유니언 대학의 다르코 코바체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