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한 현안을 넘어
남아시아의 재림 신도들
존 파울러
제야셀비는 남인도의 소도시 칸나쿠루치에 최근 지은 소박한 집에 혼자 산다. 이 여인은 지역 주산물인 땅콩 도매업으로 돈을 버는 성공적인 사업가이다. 땅콩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마다 자기 집에서 성인 30여 명이 모이는 가정 교회를 이끌고 있다. 이 교회는 그녀의 숱한 시련들과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에 의해 탄생한 재림교회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나
이야기의 시작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희망도 없고 집도 없이 굶주린 제야셀비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꼈다. 싱글맘이 된 그녀에게 인생은 공정하지 않았다. 공평과 불공평의 차이가 뭔지 모르는 어린 아들은 빵 한 조각만 원할 뿐이었다. 9년 전 여름의 어느 날, 제야셀비가 칸나쿠루치의 좁은 골목길을 헤매고 다닌 이유는 동정 많은 누군가를 만나 빵 한 덩어리 살 수 있는 1, 2루피 푼돈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사나운 개를 만나 종아리 근육이 날카로운 이빨에 깊이 찢기고 큰 상처를 입었다.
제야셀비는 통증으로 비틀비틀 걷다가 시멘트 길가에 그대로 쓰러졌다. 집도 없이 굶주림 속에서 절망적으로 헤매다가 이제 피까지 흘리며 울부짖는 그녀의 고통스런 외침에 그리고 옆에서 엄마와 함께 울어 대는 어린 아들의 아우성에 행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참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딱하다거나 안됐다는 동정의 말과 개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일러 줄 뿐 어느 한 사람도 이 가련한 여인에게 먹을 것을 주거나 피가 멈추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다.
잠시 뒤 수많은 동정의 음성도 사그라지고 부상당한 여인만이 길 위에 혼자 남았다. 그녀는 상처 입은 몸을 억지로 끌고 도시 고가 철도 밑 한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눕혔다. 남은 일은 ‘운명’에 맡겼다. 그런데 그녀의 울음소리에 지나가는 남자 두 명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그녀를 살펴보았다. 상처와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여자에게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는 과학적 검토 없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일단 천으로 상처를 감아 주었다. 굶주린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다. 그들은 그날 안식일 오후 건너편 블록에서 필요한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작은 만남의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제야셀비가 그토록 듣고 싶은 ‘복음’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안식일 예배 후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는 ‘호프채널 성경연구센터’로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제야셀비는 일생 동안 익숙했던 사실, 즉 행운의 신이 자기 편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했다. 현장에 음식이 다 떨어진 것이다. 실망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안타까운 상황을 보다 못해 호프채널의 봉사자 한 사람이 20루피 지폐를 그녀의 손에 쥐어 주며 근처의 길거리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사 먹으라고 권했다. 절망적이었던 그녀는 행운이 찾아오는 방식도 여러 가지라고 생각하면서 어린 아들과 함께 서둘러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집을 여러 채 지났을 무렵 중년 여성 한 명이 바나나 잎으로 감싼 음식을 들고 계단 앞에 서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은 매주 토요일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서약을 지키려고 그날도 음식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굶주림으로 가득한 세상에 관심을 나타내는 그녀만의 방법이었다. 제야셀비와 아들은 오랜만에 질 좋은 식사를 하게 되었다.
굶주림을 해결하고 나서
배고픔을 해결한 제야셀비는 호프채널에서 받은 20루피 지폐를 놓고 고민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양심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희미하고 흐릿할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창조 시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이 이런 식으로 반영되는 것일까? 그러한 신학적 통찰은 없었지만, 제야셀비는 나름대로 윤리 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배고픔을 해결했으니 그 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호프채널 성경연구센터로 돌아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자원봉사자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하나님께서 제게 오늘 필요한 것들을 충족해 주셨습니다. 이 돈으로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성경 교사인 존 프라카삼(John pracasam)은 이 여자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집도 없고, 희망도 없지만 더 이상 배고프지는 않았다. 보이는 겉모습이 전부였을지 모르지만 존은 그녀의 내면에서 음식 이상을 갈구하는 영혼을 발견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들이켰다. 몇 주 뒤 호프채널 팀이 침례식을 거행할 때 그녀는 침례를 받겠다고 자원했다. 남아시아 재림교회 TV 사업의 선구자이며 현재 연합회 전도 목사 겸 희망채널 진행자인 S.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진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아무 의심 없이 망설이지 않고 침례를 주었습니다.”
침례식이 끝나고 존슨과 동료들은 제야셀비를 경제적으로 후원하기로 계획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일단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동정과 현실적 판단에 의해 그들은 더 열성적으로 계획을 추진했다. 마침내 존슨의 팀은 제야셀비에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땅콩 장사를 해 보라고 권했다. 그 지역은 땅콩 재배로 유명했다. 어느 정도의 힘든 노동과 약간의 계획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에 대한 믿음의 결과로 어느새 그녀는 길거리 땅콩 팔이에서 지역 주요 도매상인으로 자리매김했다. 9년이 지난 현재 그녀는 집도, 희망도 없이 배고픔에 시달리는 삶과 이별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녀는 넓은 방이 딸린 집을 짓고 그 도시 재림교인의 집회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작은 연민과 지속적인 복음의 나눔 그리고 삶의 방식을 제안해 주려는 마음이 집도 희망도 없이 굶주림에 시달리던 한 여자에게 집중되었다. 땅의 티끌은 창조주이자 세상의 구속자이신 분의 성전을 짓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제야셀비는 곧 그녀의 집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30명을 얻게 되었다.
기적의 연속
남아시아 교회의 역사와 사명은 이러한 기적들, 곧 옛날에 일어난 기적들과 새롭게 일어난 기적들로 점철되어 있다. 첫 번째 재림교인 선교사는 1896년 인도에 찾아온 조지아 버루스(Georgia Burrus)라는 여인이었고, 그녀의 첫 번째 회심자 또한 여자였다. 조지아에서 제야셀비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남녀, 노동자, 비전문직 종사자,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희망을 부여잡고 살면서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수확을 거두는 수천 명을 만났다. 1899년에 신도 23명으로 시작한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차기 대총회가 개최될 때는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이 지역 곳곳에서 재림교회 신앙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성장은 신도의 수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한때는 사용할 수 없었던 방송 전파를 이제는 복음 선포의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호프채널과 TV 사역은 여섯 개 언어로 전국의 대중에게 방송되고 있다.
전도는 더 이상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회의 성장에 참여하는 여자와 젊은 청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학 7곳, 유치원, 초•중등학교 35곳을 통해 학생 17만 5천 명이 재림교회 교육을 받고 있다.
네팔과 부탄은 사상 최초로 제약 없이 복음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이렇게 적은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일을 이룬 적이 남아시아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성취한 일을 평원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실현해야 할 일들은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할 수 있다. 남아시아지회의 지도자와 신자들은 앞으로 이루어야 할 과업을 생각할 때 올라야 할 산봉우리 수천 개가 솟아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 봉우리란 신자의 수효, 십일조, 목사들과 교사들의 임금 향상 그리고 아직도 재림교회가 닿지 않는 수천 개 마을과 도시에 하나님을 위해 길을 닦는 일이다.
해결해야 할 현안들은 믿기 힘들 정도로 크고 방대하다. 하지만 능력이 거기 있다. 성령은 제야셀비처럼 맡겨진 일을 완수하기 위해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쓰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존 파울러
대총회에서 근무한 21년을 포함하여 53년 동안 교회를 위해 봉사한 뒤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