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2013년 10월, 제럴드 A. 클링바일 부편집인은 재림교회의 뿌리를 되짚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대총회 산하 화잇 유산 관리위원회의 소장인 제임스 닉스 목사가 인솔한 재림교회 유적지 탐방대와 함께했다. 9일간 미국 북동부에서 움직인 거리는 장장 3,540킬로미터에 달한다. 8세부터 80세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35명은 모두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여행을 마치고 헤어질 때는 친구가, 아니 가족이 되었다. 다음은 제럴드 클링바일의 블로그1에 실린 여행기를 짧게 요약한 것이다.
뿌리를 찾는 길은 많다. 뿌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결정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크고 강하게 자라는 반면 뿌리가 얕은 나무는 겉보기만 그럴싸하다. 이 뿌리 비유법으로 우리는 재림교회 유산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 우라이아 스미스, J. N. 앤드루스는 재림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재림 운동의 영웅이었으나 이들만큼 유명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세 천사의 외침을 들어야 할 세상에 재림교회 고유의 기별을 전하기 위해 신자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지도 아래 한데 뭉쳐 심지를 다듬었던 초기 운동의 핵심 사항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좋았던 옛 시절’은 그저 평안하고 복잡한 일이 하나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19세기 초기는 우리가 현재 당연시하는 편의 사항들이 없던 시절이었다. 빵 한 덩이를 위해 하루 종일 일해야 했다. 19세기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인쇄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애드벤티스트 리뷰>의 전신인 <현대 진리>는 8장 분량의 소책자였지만 타자기로 입력한 내용을 정리하고 교정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런 다음 실제로 인쇄하여 소책자 1,000권을 만들려면 하루나 이틀이 더 걸렸고, 인쇄 후 용지가 말라야 규격대로 잘라서 접을 수 있었다. 계절이나 기온에 따라 인쇄된 종이를 건조시키는 데 여러 날이 걸리기도 했다. 따라서 인쇄비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레이저 프린트를 사용하고 주문형 책자를 제작하는 현 시점에서 보면,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결실을 최우선으로 삼아 시간과 공을 들인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엘렌 하몬에게 첫 계시를 보여 주시기 전에, 그분의 뜻을 전하기 위해 먼저 두 사람을 선택하셨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윌리엄 포이와 헤이즌 포스가 그분의 계시를 받았다. 윌리엄 포이는 그가 받은 계시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으나, 용기가 없었고 신실한 침례교인으로 남기로 했다. 또한 비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웠던 포스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1893년 불가지론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세운 핵심 인물인 조셉 베이츠, 제임스 화잇, 엘렌 하몬은 임박한 예수의 재림과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순종했다.
무슨 차이였을까? 연륜이 경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1844년 베이츠의 나이는 52세였고, 엘렌은 17세, 제임스는 23세에 불과했다. 그때 당시 그들은 모두 생소한 빛, 정서적 거부감, 기타 문제들로 고군분투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그런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여행에서 화잇의 쌍둥이 자매 엘리자베스가 묻혀 있는 고램 노스 스트리트 묘지를 방문했을 때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알기로 엘리자베스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구주를 받아들이라고 간청하기 위해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엘렌의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켰다. 예수를 떠났거나 애당초 받아들이지 않은 가족과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엘렌 화잇의 호소력 있는 편지글을 듣자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팔로 안아 주신다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시인이자 뉴욕 로체스터에서 초기 재림교회 회보의 편집인으로 활동했던 애니 스미스가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그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열정과 열의, 미래에 대한 낙관, 확고한 신념, 무한할 정도로 강렬한 젊은이의 에너지가 아닐까. 십 대인 딸아이가 열중하는 무언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오늘날도 그 열정을 느끼는 듯하다. 그 열정이야말로 초기 재림교회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필수 요소였다. 그들은 비록 한정된 자원을 지닌 소수의 무리였으나 전진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진리로 확증을 얻었고 그분의 약속을 믿었다. 내게도 그와 같은 동기 유발이 다시 필요했다.
윌리엄 밀러와 그를 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들의 희생정신과 불굴의 용기에 또 한번 감동받았다. 그들은 비웃음이나 조롱이나 경멸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들의 믿음을 고수했다.
처음에 윌리엄 밀러도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확실히 들어오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그분에 대한 충실함이 발휘된 것이었다. 회심한 뒤 그는 2년간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판단력도 주신 분임을 깨달았다. 그는 집중적으로 성경 연구를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은 내 기쁨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한 친구를 찾았다.” 예수와 맺은 우정은 그가 12년 이상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설교하도록 이끈 원동력이었다. 밀러주의 운동에 가담한 사람이 북미에서만 최대 50만 명 정도였을 거라고 학자들은 추산한다. 이는 산간벽지에서 조용하게 발생했다 끝난 해프닝이 아니었다. 떠들썩하게 큰 소리로 두려움 없이 전개한 열정적인 운동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믿음을 고수한 것이 초기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것 같다. 초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육가였던 퍼시 메이건은 교육에 대한 총체적 접근 방식 때문에 반대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그는 W. K. 켈로그에게서 콘플레이크를 만드는 새로운 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를 두고 그는 기도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이 되자 그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깨달았다. 수년 뒤 그는 한 친구에게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기별을 지켜야 해.” 갈 길과 소명을 찾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지도하고 다듬는 일은 콘플레이크를 팔아 돈을 버는 일 따위와 비교할 수 없었다.
1844년에 예수께서 오시지 않자 초기 재림 신자들이 당황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예언 해석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 일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 포트 기브슨의 하이럼 에드슨을 포함한 적은 무리의 사람들은 울며 기도했다. 그들의 눈물과 질문에도 대답은 없었다. 대실망 이후 어느 날 아침, 에드슨은 들판을 가로질러 가다가 마치 하늘이 열리고 하늘 성소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발견은 대실망 후 흩어졌던 재림 교회 신도들이 성경 연구의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근간을 우리 모두가 분명히 이해했으면 좋겠다. 성소는 재림교회의 신학적 요소를 한데 묶어 주는 접착제와도 같다. 예수께서는 성소의 보좌 우편에 계신다!
이번 여행 중에 얻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 가족은 함께 뭉친다는 것이다. 가족은 함께 운다. 때로는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나는 초기 재림교회 선구자들에 관한 역사를 보며 굳은 신념과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세상으로 전진하여 진리를 전파해야 하는 더 큰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초기 재림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계시가 나타났다. 초기 재림 운동가에게 그 세상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의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 선교를 이해함에 따라 그들의 세계관은 더 넓어졌다. 그들은 10/40창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지만, 1874년에 유럽으로 떠난 J. N. 앤드루스를 시작으로 선교와 봉사가 재림 운동의 구호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길에 얻은 교훈이 또 하나 있다. 선구자들은 실제 세상에 살고 있었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때 시절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던 세계의 변화를 아우르며, 새롭게 발견된 진리가 앞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있는 예언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짐승 모양을 종이 반죽으로 만들어 사용했다.3 또한 다음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서 검증되지 않은 교통수단에 흔쾌히 몸을 맡기기도 했다. 그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힘들 길이었지만 계속 나아갔다.
나는 시카고 오헤어국제공항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악수를 하면서 중요한 뿌리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사용하는 언어, 내가 속한 문화와는 관계없이, 그 무엇보다도 축복의 소망이 달콤한 현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는 하나님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복음을 나눌 것이다.
1 http://adventistreview.org/route-to-roots에서 이 여행기의 전체 내용과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다
2 Gerald A. Klingbeil, ‘Big Picture Thinking : The Sanctuary and the Heart of Adventist Theology’, Adventist Review, Oct. 20. 2011, pp. 18~21
3 글루더 퀴스페, ‘윌리엄 워드 심슨, 재림교회의 첫 번째 대도시 복음 전도자’, <애드벤티스트 월드>, 2013년 3월, p. 40, 41
제럴드 A. 클링바일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 역사와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 아내 샨탈, 세 딸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