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약속
돌아서고, 읊조리고, 소중히 여기라
아피아 돈코르
즐거움
그것은 법과 대학을 다니던 아주 힘들었던 시절에, 고향 교회로부터 노트와 맛난 것들이 가득한 생필품 꾸러미를 받았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다. 난생 처음 스위스의 산길을 걸을 때 온몸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즐거움’이라는 낱말을 생각할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기쁨? 커다란 환희? 분명히 그럴 것이다. 모험, 위험, 탐험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해 볼 필요가 있다. 즐거움은 종종 발견의 과정에서 체험한다. 진정 즐거움이란 자신을 밝게 해 주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고, 사람들을 사귈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경험한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분에 대해 많이 알거나 그리스도인 생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실재하고 친밀하고 소중한 하나님을 원한다. 주님 안에서 즐겁기를 바란다. 다행히도 성경은 우리가 구하고 찾는 것을 약속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돌이키고)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 14).
독자들의 반응을 알 것 같다. “안식일이라고?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 진실로 그렇다. 본문은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라는 권위로 보증된 분명한 약속을 포함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 본문에 포함된 하나님의 처방을 한번에 한 단계씩 그대로 따를 필요가 있다.
확인
본문은 “만일 안식일에”라는 확인 구절로 시작한다.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단 하나이다. 즐거움을 체험케 해 주는 입증된 도구는 바로 안식일이다. 그러면 안식일은 무엇인가? 일곱째 날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사건의 절정이고, 하나님께 너무 특별해서 그분이 거룩하게 한 날이다(창 2:2, 3). 그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전한 세상의 기념물(2절)이자 그 자녀들의 심령을 재창조하실 수 있다는 상징(출 31:13)으로 우리가 기억하여 지키도록 하신 날이다.
선물 보따리가 문 앞에 도착했는데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다른 상자만 뜯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도착한 상자는 용기를 북돋는 기별과 맛있는 것이 가득하다. 즐거움이 꽉 차 있다. 그러나 상자를 열기로 선택할 때까지 그 모든 것은 갇혀 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구별하시고, 거룩하다고 일컬은 날이다. ‘특정한 날이 정말로 중요한가?’라고 생각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더 근본적은 물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가?”이다. 그날이 중요하다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날은 복을 머금고 있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그분을 믿고 주신 선물을 풀 것인가? 그렇게 한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입”으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돌아서고, 읊조리고, 소중히 여기라
다음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라. 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체험하기 위해 스위스를 방문하기로 했다. 지도에서 찾아보고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날아가 호텔에 묵는다. 산과 풍경을 즐기는 기쁨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그럴까? 음, 아직은 아니다. 즐거움에 대해 또 다른 중요한 국면이 있다. 즐거움을 위해 할 것이 있다. 안내가 필요한 것이다. 산의 웅장함을 경험하기 원하는가? 정확한 안내 책자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신발을 신고 나갈 수 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신다. 그리고 우리는 경청하고 그런 다음 따라 하면 된다. 하나님의 교훈은 단순하다. 안식일의 즐거움을 경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돌아서고, 읊조리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돌아서라. : 그리스도인에게 안식일은 180도로 돌아서는 날이다. “너의 발을 금하라(돌이키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특별한 날을 위해 방향을 바꾸어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한 주 동안 우리의 발은 종종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멀리 뻗어 있었다. 일, 가족, 다른 의무가 우리 시간을 차지하고 관심을 요구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뒤로 밀어 두고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을 그분께 돌리라고 요청하신다. 안식일은 우리의 문제들을 잊어버리고 궁극적 해결자이신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날이다. 그분은 누구신가? 어떤 존재이신가? 다른 어떤 날보다도 이날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살펴볼 수 있고 그분의 품성에 대한 더 깊은 통찰과 더 많이 알려는 갈망을 드러낼 수 있다. 오랜 기간 헌신적인 연구 후에 새로운 발견으로 즐거워하는 과학자들처럼, 우리도 그분의 거룩한 날에 하나님을 발견할 시간을 갖고 즐거워할 것이다.
읊조리라. : 말에는 힘이 있다. 우리가 한 말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우리가 하는 말에 종종 나타난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고 일컬으라고 요청하신다. 그 진술은 조건적이지 않다. 우리는 즐겁다고 느낄 때 즐거운 날이라고 부르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다.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과는 별개로 안식일은 즐거운 날이다. 안식일을 제정하여 우리에게 주신 분은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약 1:17)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그렇게 읊조리는 사람은 그날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강하게 말하면 그것은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자신의 관심에서 발길을 돌려 하나님과 만날 기회로 이날을 붙잡을 때,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경험은 깊어지고 안식일의 순간들은 소중해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심령으로부터,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서,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 일컬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즐거운 날이기 때문이다.
존귀하게 여기라. : 존중하고 구별하여 정중하게 배려하는 것이 존귀하게 여기는 표현이다. 안식일의 성격을 이해한 사람은 존중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일컫는 날에 즐거움을 표현하며 그날을 아주 존귀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존귀하게 여기길 때 즐거움은 시작된다. 안식일은 발견의 날이다. 안식일을 받아들이고 존귀하게 여기는 자들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붙잡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기 시작할 것이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아피아 돈코르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거주하는 변호사이다.
발문
존귀하게 여길 때 즐거움은 시작된다.
사이드바
안식일
자애로우신 창조주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후 쉬셨으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창조의 기념일로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율법의 넷째 계명은 이 제칠일 안식일을 쉼과 예배와 안식일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교훈과 실천에 조화되게 봉사하는 날로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며 인간 상호 간에 교제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구속의 상징이며 우리의 성화의 표징이요 우리의 충성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맺은 영원한 언약에 대한 영구한 표징이다. 이 거룩한 시간을 저녁부터 저녁까지, 즉 해 질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즐겁게 준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행위를 경축하는 것이다(창 2:1~3; 출 20:8~11; 눅 4:16; 사 56:5, 6; 58:13, 14; 마 12:1~12; 출 31:13~17; 겔 20:12, 20; 신 5:12~15; 히 4:1~11; 레 23:32; 막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