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부로 런런쇼 병원이 설립되었다
– 낸시 위안과 제임스 폰더, 로마린다 대학
2014년 1월 7일, 런런쇼(샤오이푸) 경이 향년 106세의 나이로 잠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세계의 언론 매체는 동생과 함께 쿵후를 스크린에 올린 영화계의 선구자로서 그의 업적과 유산을 기렸지만, 로마린다 보건대학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그를 보건계의 박애주의자와 인도주의자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박애주의적인 생애로 인해 1994년 중국 저장(浙江) 성에 런런쇼 병원이 개원하였다. 이 병원은 당시 가난한 지역이었던 그 고장의 보건 서비스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다음은 로마리아 보건대학 총장 리처드 H. 하트의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받은 인상에 의하면 거의 100년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관한 로마린다와 런런쇼 경과의 관계는 전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에 서양식 병원 건립을 꿈꿨던 홍콩 영화 산업의 거물 런런쇼 경은 1990년대 초 저장 성 중심 도시 항저우에 병원을 건립하도록 정부에 예산의 일부를 기탁하며 단 하나의 조건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와 협력하여 병원을 운영하기를 희망했다.
전에 런런쇼 경의 어머니는 중국의 한 현대적인 병원에서 재림교인 의사 해리 밀러 박사에게 진료받은 적이 있다. 그는 정부 관료로부터 일용직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제공되는 자상하고 전인적인 치료에 감명을 받았고 언젠가 고향에도 그와 같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밀러 박사에게 받은 남다른 보살핌을 그는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라고 전 로마린다 대학 재림교회 보건학 센터 세계 선교 부회장 조앤 코긴은 회고하였다.
런런쇼 경은 병원 건립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로마린다 대학, 로마린다 대학 메디컬 센터에 병원 건립 참여를 요청하였다.
1994년 5월 9일, 마침내 런런쇼 병원이 개원하였다. 초기 400병상의 시설을 갖춘 런런쇼 병원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전문의로만 의료진을 구성하여 서양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2006년에 중국 최초로 JCIA(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Accreditation) 인증을 받았다. 런런쇼 병원은 최고 수준의 병원만 받을 수 있는 JCIA 인증을 2009년과 2013년에도 받고, 현재 1,200병상을 갖춘 3차 진료 기관으로서 매일 환자 6,000명을 치료하고 있다.
로마린다 대학 메디컬 센터의 세계 건강 연구소 부소장이자 국제사무국장 얀 줌발트는 런런쇼가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그곳에서 일했다. “그는 주목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병원이 지어질 당시 그곳은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는 항저우 주민이 최상의 의료 서비스뿐 아니라 최신식 시설과 자재 및 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런런쇼 병원 개원 10주년 기념식에서 줌발트의 한 동료가 밝힌 증언에 따르면 런런쇼 경은 시설뿐 아니라 그가 지원했던 수많은 자선 사업도 중요시 여겼다. 그러나 가장 큰 만족을 준 것은 역시 이 병원이었다.
런런쇼 경은 쇼브라더스 영화사에서 제작한 무술 영화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노년에는 박애주의자로 널리 존경받았다. 2002년 그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쇼 프라이즈’를 제정했다. 1977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적십자사를 지속적으로 지원한 공로로 그에게 작위를 수여하였다.
병원 건립 외에도 런런쇼 경은 아시아, 영국, 미국의 여러 자산 사업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였다. 남은 가족으로는 미망인 모나 퐁과 네 자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