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교리
강한가 약한가?
‘무적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허구
안젤리카 카이저
혹시 몸에 상처가 있는가? 사고나 수술, 혹은 9개월 동안 아기를 가진 뒤 흉터가 남아 있지 않는가? 상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통, 용기, 희망, 사랑을 말해 준다. 상처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표시이다. 성공적인 수술 뒤에 남은 흉터는 종종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성경은 중요한 수술 하나를 언급한다. “내가…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 20).
수술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셨다. 그들의 경험은 우리 각자에게 반복되고 있다. 노예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일은 신자 각자가 겪는 경험이다. 이스라엘에게 꼭 필요하다면서 그분께서 약속하신 ‘마음의 수술’이 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할까? 본문은 최소한 두 가지 이유를 말한다. 즉 그분의 ‘율례’를 좇고 그분의 ‘규례’를 지켜 행하기 위해서이다(20절).
구원을 받아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율례는 일반적으로 유월절, 성소에서의 매일의 제사, 속죄일, 초막절 등이다. 그러므로 ‘율례’는 분명히 성소 제도와 연관이 있다. 성소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계획을 드러내기 때문에 ‘율례’는 그분께서 죄 문제를 다루시는 방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렇지만 그분의 율례를 좇기에 앞서 우리는 새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경에 설명된 순서에 따르면 새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마음이 교만과 이기심에 지배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애쓰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돌같이 오만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셔서 갈보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쳐다보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분리되는 경험을 하셨다. 죄를 속하시는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코 맛볼 필요가 없는 경험이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교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신다(롬 2:4). 갈보리는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셔서 심장이 파열된 곳이다. 이 사랑을 보면서 자신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이것이 새 마음을 받을 때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면 심령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성장한다. “새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새 마음, 새 목적, 새 동기를 갖는 것이다. 새 마음을 가졌다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변화한 생애이다. 날마다, 시간마다 이기심과 교만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1라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우리의 외과의이시며 창조주이신 분이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다.
산 구원
“부드러운 마음”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 규례에는 서로 도우며 살게 하는 그분의 법이 포함된다(출 21장).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장기적인 유익과 타인의 축복을 위해 그분의 규례를 따르라고 하신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은(마 22:34~40) 우리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고전 13:7)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려고 한다. 대다수 사람은 그런 사랑을 받으면 기쁘다. 주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재현할 때 우리는 희망, 뿌듯함, 기쁨을 얻는다. 사실 이런 사랑만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학대(정서적, 영적, 신체적, 성적)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고 권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직관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 외과 의사인 하나님께 ‘마음 수술’을 받은 뒤에도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과 의문에 직면한다. 하나님께서 학대와 악행에 눈감으라고 하시는 걸까?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일까?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에게, 마음이 교활한 배우자에게, 성적 학대를 일삼는 친척에게 어떻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 줄 수 있을까?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과 죄를 권장하는 것을 혼동하지 말라. 그것은 서로 다른 뜻이다. 비정상적인 관계를 참는 것은 관계된 모든 이에게 이롭지 못하다. 지혜와 용기와 신뢰할 사람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라.
학대와 상관없는 관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곤란을 겪는다. 조건 없이 사랑하는 일이란 만만치가 않다. 상처를 감수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에 흉터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거리를 두는 전략을 취한다.”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깨어지지 않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주님은 직접 자기 심장이 부서지게 하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에게도 동정심 넘치는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싶어 하신다. 우리는 “모든 사랑에 수반하는 아픔을 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그분께로 가져가고 방어의 갑옷을 모두 벗어 버림으로써”3 하나님께 더 가까워진다. 기독교 심리학자 래리 크래브가 말하듯 우리는 이 땅에서 “품성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충분히 맛보면서 장차 열릴 연회를 기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더 풍성히 맛보게 하는 이런 내적 변화가 실현되려면 수술이 필요하다.”4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한다면 기쁜 경험을 통해서든 고통을 통해서든 우리는 그분께 더 가까이 이르게 된다. 둘 모두를 하나님께 가져가자. 현실을 피하지 않는 동시에 희망과 사랑을 버리지 말자.
돌 마음, 살 마음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유약해진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사랑하게 되면 당신의 마음은 짓눌리고 부서질 것이다. 만약 상처 하나 없이 마음을 보존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기심의 장식함 속에, 관이나 다름없는 상자 속에 그것을 안전하게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안전하고 어둡고 흔들림 없고 공기도 안 통하는 상자 안에서 그것은 변하고 말 것이다. 부서지지 않게, 부술 수도 없게, 뚫고 들어갈 수도, 되돌려 놓을 수도 없게 변하고 말 것이다.”5 사랑한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자 하신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부드러운 마음은 연약하고 쉽게 상하니까. 하지만 그 상처 역시 돌보다는 부드럽다.
안젤리카 카이저
독일 태생으로 언어, 웃음, 삶에 대해 깊이 대화 나누기를 좋아한다. 현재 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고 남편 데니스와 미시간 주 베리언 스프링스에 살고 있다.
1.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72
2 Larry Crabb, Inside Out(Colorado Springs : NavPress, 1988, 2007), 59
3 C. S. Lewis, The Four Loves(London : Geoffrey Bles, 1960), 139
4 Crabb, 24
5 Lewis, 138,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