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종교
수술의 달인이신 하나님께 맡기자
라울 키로가
목회자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에게는 특별한 기도 요청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사람을 치는 일이 없도록, 특히 아이를 치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둘째는 큰 수술을 받을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첫 번째 요청을 지금까지 들어주셨다. 하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았다. 2002년, 내가 46세 때 심장 담당 의사는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부정맥이 있는 것은 ‘심방 중격 결손증(ASD)’이라 불리는 선천성 심장 기형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을 고치기 위해 나는 2002년과 2011년에 수술을 받았다. 하나님 그리고 심장 담당 의사, 외과 의사 덕분에 ‘육신’의 심장은 건강을 되찾았다.
또 다른 심장 수술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1977년, 내가 20살이었을 때 하나님은 나의 ‘영적’ 심장에 수술을 행하셨다. 나는 재림교인 청년을 만났고 성경 말씀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죄의 용서를 확신했고, 구주와 계명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로만 하지 말고 ‘가슴’의 종교를 실천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사실 성경에서 ‘심장’은 “영과 혼과 몸”을 아우르는 전 존재를 뜻하는 것 같다(살전 5:23).
이러한 측면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다소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영적 측면뿐 아니라 삶의 육체적 측면을 중요하게 본다. 우리는 영과 혼뿐 아니라 몸을 적절히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 존재’라는 말에는 몸도 포함된다. 현대 의학이나 과학은 인체에 매우 관심이 많아서 종종 우리 존재에 대한 종교와 영적 필요성을 배제한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인간의 몸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와 정반대의 극단도 있다. 많은 종교에서 영과 혼은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이 있지만 육체는 그렇지 않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사야에 나오는 외침과 비슷하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 22:13).
성경에는 ‘가슴의 종교’를 전공한 신학자가 많다. 모세, 솔로몬, 예레미야, 바울이 그 선두에 있다.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이 새겨진 돌비를 매우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성소에서 가장 은밀한 곳인 지성소에 놓여 있다. 반면,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성소가 되어 마음의 서판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기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들은 경고한다. 성경적 심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하나님 성품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중심, 즉 마음에 표현되어야 한다. 이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입으로만 경배하는 사람이 된다. 그분의 계명을 가슴으로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전이 이동할 때마다 그분과 그의 말씀이 함께 이동하는 셈이다. 정말 멋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움직이는 축복이 되는 것이다.
형식과 본질
현시대를 포함하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본질과 내면의 가치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에 집중했다. 종교와 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는 그 양상이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은 종교와 문화의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오늘날 사람들 속에는 진실 탐지기가 내장되어 있는 것 같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원하는 것은 말과 행동의 일관성이다. 이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에서는 진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포스트모던 사회는 선과 악 모두에 대해 성실하고 진지하다. 그들은 위선을 용서하지 않는다. 특히 종교에 관해선 더욱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원칙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행동으로는 여전히 그분을 부인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참된 마음의 종교야말로 포스트모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정성과 진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교 도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사를 통틀어 참된 가슴의 종교를 주장하는 성서 신학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갈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강직한 모세, 지혜로운 솔로몬, 담대한 예레미야, 용감한 바울은 시대는 다르지만 저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호소하기를 수술의 달인에게 완전히 가슴을 열고 대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역사에 걸쳐 진실이었던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변화된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와 함께 소통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참된 마음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의 인생에 새로운 삶을 안겨 준 두 번의 심장 수술로 인해 감사드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영적 심장 수술을 시행하신 하나님께 나는 영원한 신세를 졌다. 그분은 돌 같은 마음을 바꾸셨고 임박한 재림을 고대하는 운동에 나를 참여시키셨다.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그 순간을 돌이켜 보니, 하나님의 능숙한 심장 수술이 아니었다면 나머지 모든 것은 의미가 없을 뻔했다. 그 변화란 주위 사람에게 ‘보여 줌으로써 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하늘 의사께서는 그런 변화를 많이 이루셨다. 그 변화는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수술이 아니라 매일 그분의 감화와 성령에 굴복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라울 키로가
아르헨티나 태생이며 현재 아르헨티나 리베르 플라테 대학에서 구약 성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욜리와 결혼하였고 손자, 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