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비싼 구원
마크 A. 핀리
우리는 종종 가격으로 물건의 가치를 정한다. 물건이 비싸면 값싼 물건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물건은 참 마음에 드는데 가격표를 보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한 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좋긴 하지만 형편이 안 되어 못 사는 물건이 많다. 가격은 차이를 보여 준다.
우리 삶이 죄에서 돌아서는 일도 어떻게 보면 이와 똑같다. 죗값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죄에서 돌아서고 싶어 한다. 구원이 지닌 영원한 값을 발견한다면 삶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죗값을 마음에 새기도록 어떤 일을 하셨는가? 창세기 3장 20~24절을 읽으라.
이 가죽옷은 어디서 왔는가? 아담이 죄의 결과로 인해 하나님의 명에 따라 첫 희생 제물을 죽였을 때 칼로 찌르는 듯했던 그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아담은 곧바로 죄의 끔직한 값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첫 조상이 잊을 수 없는 희생 제물의 기억을 지니고 에덴의 집을 떠났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죗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2. 출애굽기 25장 8절을 읽으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죄의 대가를 가장 분명히 각인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두 기본적인 이유로 성소 제도를 설계하셨다. 첫째, 성소에서 희생 제물의 죽음은 죄의 끔찍한 대가를 보여 준다. 둘째, 동물의 희생과 제사장의 봉사를 통해서 구원의 길이 드러난다.
3. 특별히 어떤 성소 봉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죄의 대가를 깨달았는가? 레위기 1장 2~6, 10~13절을 읽으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는 값싼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데는 재정적, 정서적, 영적 대가가 지불되었다. 죄의 대가는 동물의 희생이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죗값을 각인시키는 것이 하늘의 계획이었다. 하늘 하나님의 계획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이란 하늘이 영원한 대가를 치를 만큼 비싼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거저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값이 싸지 않다. 구원은 선물이지만 하늘은 이를 위해 상상할 수 없이 큰 값을 치렀다.
4. 사도 요한은 어떻게 이 상징을 예수께 적용하였는가? 요한복음 1장 29절을 읽으라.
5.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을 읽으라. 베드로는 구원의 비용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가?
구원의 대가는 인간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이 공짜라고 해서 하늘이 치른 비용이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고 판단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죄의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6.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깨달으면 변화되는가? 스가랴 12장 10절을 읽으라.
예수를 십자가로 가게 한 것이 우리의 죄 때문임을 이해할 때, 우리가 찌른 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께서 지불하신 값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때, 우리는 그분의 가슴에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점에 대해 가슴 아파할 것이다.
7. 히브리서 6장 4~6절을 읽으라. 우리의 고집스러운 반역 때문에 예수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 죄가 그리스도를 상하게 하고 그분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뜻에 반하는 것을 다 내려놓을 것이다.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의 가슴을 더 이상 찢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 희생에서 드러난 그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마음을 찢고 그분께 완전히 헌신할 것이다.
8.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일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시는가?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에베소서 2장 8~10절을 읽으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구원받는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변화된다.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를 구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우리를 그분과 같게 하신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불된 비싼 대가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그분이 거저 주신 구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믿기 힘들 만큼 ‘기쁜 소식’이란 바로 이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