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라?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00주년을 회고하며
2014년은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이 발발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차 대전은 전쟁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전례 없이 엄청난 희생자를 기록한 전쟁이었고 새로운 대량 살상 방법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되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이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처참했던 결과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5년 동안 많은 나라에서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고, 협의회를 구성하고, 강연회를 개최하며, TV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등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전쟁에 매우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확실한 방증이다.
흥미롭게도 모든 나라가 같은 방법으로 세계 대전을 기념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전쟁 당시 중립국이었던 덴마크는 이 전쟁을 현대적인 유럽으로 다가가는 큰 발걸음으로 기억한다. 영국은 독일을 이겼다는 추억에 젖어 있으며, 1917년에 참전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겪은 부정적, 긍정적 경험을 살펴보면서 이 땅의 나라와 하늘 왕국에서 더 바람직한 시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잔인하고 무모한 전쟁
제1차 세계 대전은 수많은 독실한 기독교인마저 비이상적인 상황으로 끌어들여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물론, 전쟁에 참여한 나라들도 이것이 세계 대전으로 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1900년대 초반 유럽 선진국들이 갖가지 정치•군사적 동맹을 맺고 군비 경쟁을 벌인 것은 보다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자, 각 나라들이 연쇄적으로 전쟁을 선언했다. 전쟁 국가들은 탱크, 장거리 미사일, 항공 폭탄, 부비트랩, 소이탄, 독가스 등 최신 기술을 전쟁에 도입했다. 독일과 프랑스 간의 참호전(塹壕戰)에서는 정규군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휘관들이 의도적으로 병사들을 무의미한 살육의 현장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1 교전, 영양 실조, 질병, 기아, 각종 사고 등으로 군인과 민간인 1,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종된 병사만 800만 명이고 부상자는 2,100만 명에 달했다.
음악, 문학, 과학, 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국가들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이다. 어떻게 이런 나라의 정치 지도자와 군 당국이 그토록 극악한 전쟁을 벌이고 만행을 일삼을 수 있었을까? 기독교인들은 대량 살상을 계획하거나 관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수의 정치가와 군 지도자, 병사들은 실제로 헌신적인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기독교가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에 와서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다. 그 순간 그들은 살인자 아니면 희생자, 둘 중 하나였다. 심지어 수많은 희생자 역시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득불 상대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2 종교, 상식, 외교로는 전쟁의 광기에 휘말리지 않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 무모한 전쟁을 통해 드러났다.
방어는 되지만 공격은 안 된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와 폭력의 사용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곤란에 처했다. 전쟁 국가에서는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림 신자들은 직접적인 참전을 피하려 노력한 결과 미국 남북 전쟁(1861~1865) 이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럽의 상황이 북미와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지되었다.
따라서 1885년 유럽의 교회 지도자들은 병역의 의무와 안식일 복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끝내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병역 문제를 각자의 양심에 맡겼다.
엘렌 화잇 역시 나라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일괄적인 답변을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림교인의 병역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법을 따른 것임을 그녀는 밝혔다. 그녀는 그들을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진정한 군사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모든 유혹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시도록”3 기도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상황에서 성경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지 배우는 것이었다.
재림 신자들은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현저히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가령 영국에는 징병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징병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등지에서는 전적으로 징병에 의존했고,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들은 징역이나 사형에 처해졌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 징집된 재림 신자들은 기본적인 병역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평화 시’ 안식일에는 복무를 거절했다. 안식일 엄수 문제로 군사 재판에 회부되어 수년 동안 수감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적군의 공격을 받을 때는 안식일에라도 싸울 것이라고 그들은 군사 재판 이전부터 종종 진술했다. 그러나 침략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4
전쟁은 더욱 복잡하다
1914년 여름, 전쟁이 발발하자, 중앙 유럽의 재림 신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가 선제공격을 시작했고 단지 방어하기만 하는 나라는 어디였는가? 삽시간에 각 나라가 줄줄이 선전 포고를 했기 때문에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저마다 외세의 공격에 대응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군대가 동원되고 재림 청년들이 전쟁에 투입되었다. 독일에서 본 교단 지도자 중에는 지레 겁을 먹고서, 징병된 재림 군인들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무기를 들고 고국을 지킬 것이라고 장담한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전쟁 준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며 교인들을 납득시키려고 애를 썼다.5
물론 중앙 유럽의 재림교인들은 이런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향을 종교 지도자들이 교인들에게 직접 표현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당연히 불만과 반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이후 ‘문제의 지도자들’을 제명하는 것으로 혼란과 논쟁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교회에는 반감, 적대감, 악감정만 남게 되었다. 이렇게 내부에서 일어난 ‘전쟁’은 결국 재림교회 개혁 운동으로 이어졌다.6
영국에서는 1916년 영국 정부가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하지만 전투에서 면제해 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영국 재림군인 대부분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나 비전투 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혹 행위, 압력, 수감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상관은 물론 대중이 그들을 ‘국가의 대의에 배신하는 무리’로 간주하고 안식일 준수자에게 호의를 베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7
독일, 프랑스, 영국 어느 곳에서든 재림 군인으로 충실하게 신념을 고수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특정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할까?
제자들의 특징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마 5~7장)에서 하나님 나라 율법을 개괄하셨고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관해 광범위한 뼈대를 보여 주셨다. 메노나이트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는 산상 수훈에서 다음의 일곱 가지 윤리 원칙을 정리했다. 변화하는 상황과 조건하에서 성경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8
1. 회개의 윤리학. 예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였다. 예수께서 요구하신 것은 회개(metanonia), 곧 마음의 변화였고, 엘린 화잇은 이를 가리켜 “죄를 슬퍼하여 죄에서 벗어나는 것”9이라고 표현했다.
예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18~22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는 먼저 마음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분의 주안점은 마음이 변화된 사람의 특징을 묘사하는 데 있었지, 이상적인 세속 사회를 묘사하거나 행복과 성공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제자도의 윤리학. 팔복에서는 제자들(마 5:1)을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긍휼히 여기는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언급한다(3~10절). 주로 사회적 약자층에 속하는 추종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일시적 보상(부, 명예, 성공 등)이 아니라 영원한 보상(천국, 위로, 땅, 배부름, 긍휼, 하나님과의 대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을 약속하셨다. 제자들의 삶에서 두드러진 것은, 그들이 갈망하는 보상과 성공의 모습보다는 그들이 따르고 드러내고자 하는 주님의 모습이었다.
3. 증언의 윤리학.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곧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다(13~16절).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곳곳의 재림 군인이었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냈을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적군’은 특정한 나라에서 태어나기로 그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그 나라의 통치자의 실수를 책임질 필요도 없다. 심지어 그는 징병을 원치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저 구원이 필요한 인간이요 형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
4. 성취의 윤리학. 예수의 지적에 의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표준을 낮추고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제거하여 율법 준수를 손쉬운 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살인과 행음을 삼간 것은 외적 표준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예수께서 논박하셨다. 속으로 그들은 분명 증오심과 음욕을 품고 있었다. 생각과 태도가 악해도 표면적으로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17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율법의 진정한 목적을 분명히 제시하고 확고하게 적용하시면서 영적 감각을 불러일으키셨다(19~48절).
5. 완전한 사랑의 윤리학. “이것이 군사적 갈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깊은 관계가 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장 21~26, 38~42, 43~48절에서 “너희가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적개심, 폭력, 보복을 다루고 있음을 기억하라.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랑스럽지 못한 존재와 불의한 자를 사랑하라고 제자들에게 요구하셨다(43~48절).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나쁜 생각에도 공모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론 반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심지어 원수가 되었을 때 예수를 보내 주신 것이 과연 잘못일까?(롬 5:8, 10)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고 원수의 구원을 위해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를 원하신다.
6. 능가의 윤리학. 47절에서 예수께서는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라고 반문하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촉구하신다. 우리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가장 덜 나쁜 선택은 무엇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다. 생각지도 않은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보여 주기 위한 전시성 행동이 아니다. 규율에 얽매이거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품성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그분의 반문을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보다 신선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증명할 수 있겠느냐!”10
7. 화해의 윤리학. 마태복음 5장 21~26절에서 예수께서는 분노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겉으로 나타난 행동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태도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지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려면 먼저 화해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화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던 것처럼, 그분의 자녀인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며 그분의 품성을 나타내야 한다.
일견 폭력이나 살인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증오심을 품거나 전혀 화해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분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이다. 친구와 원수 모두에게 그분의 화해시키는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세계 선교란 하나님의 품성을 반사하는 것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재림 군인들은 하루아침에 비이상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대다수는 남을 해치는 일 대신 남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보직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위생병, 들것병, 통역병, 취사병, 철도병 등으로 복무할 수 있었다. 또 수많은 재림 군인이 전우와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 책자를 전했고, 안식일에 동료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는 이와 비슷한 처지의 재림 교우들이 있다. 동시에 우리 역시 겉으로는 한없이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나 마음속으로는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호전적 기질을 품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품성을 닮고자 애써야 한다. 완전하고 충만한 화해의 사랑으로 친구와 원수를 대해야 한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계 14:6)에게 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함으로 그들을 예수께로 이끌어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것, 이것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의 궁극적 사명이다.
1 Hartmut Lehmann, Das Christentum im 20. Jahrhundert : Fragen, Probleme, Perspektiven, Kirchengeschichte in Einzeldarstellungen(Leipzig : Evangelische Verlagsanstalt, 2012), vol. VI/9, pp. 141, 142
2 Ibid., p. 142
3 Ellen G. White, Selected Messages(Washington, D.C. :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8), book 2, p. 235
4 Ulysse Augsburger, “Un soldat adventiste devant le conseil de guerre,” Le Messager, May 1914, pp. 51~54; Gerhard Padderatz, Conradi und Hamburg : Die Anfange der deutschen Adventgemeinde(1889~1914) unter besonderer Berucksichtigung der organisatorischen, finanziellen und sozialen Aspekte
(Hamburg: author, 1978), pp. 243~253
5 See, for example, Guy Dail, “An unsere lieben Geschwister!”(broadside, Hamburg : Aug. 2, 1914); G. Freund, “Krieg und Gewissen,”Zions~Wachter, Dec. 6. 1915, p. 365
6 Helmut H. Kramer, The Seventh~day Adventist Reform Movement(German Reform) (Washington, D.C. : Biblical Research Institute, 1988), pp. 9~17
7 Francis M. Wilcox, Seventh~day Adventists in Time of War(Washington, D.C. :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36), pp. 253~296
8 John Howard Yoder, The Original Revolution : Essays on Christian Pacifism (Scottdale, Pa. : Herald Press, 2003), pp. 36~51
9 Ellen G. White, Steps to Christ(Washington, D.C. :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77), p. 23; cf. pp. 23~36
10 Yoder, p. 49
데니스 카이저
독일인으로 현재 미국 미시간 주 앤드루스 대학에서 재림교회사 및 역사 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