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톡
아이폰으로 고해성사를?
실비아 렌츠
2011년 2월 초, ‘아이폰으로 고해성사 하기!’라는 제목이 한 언론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 가톨릭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고해성사 앱을 인정한 것이다. 2달러(정확히는 1.99 미국 달러)만 내면 신자들은 ‘고해성사’라는 앱이 지시하는 순서에 따라 죄를 고백할 수 있다. 나이, 성별, 결혼 상태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된다. 사용자는 우선 자신이 십계명 중 어느 계명을 어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구체적인 고백은 제조사의 웹사이트에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문자로도 표시될 수 있다. 그러면 이 프로그램은 회복을 위해 어떠한 기도문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 준다. 성경 구절을 잘 모르는 죄인들은 해당 기도와 함께 성경 구절을 내려받을 수도 있다.
개발사 웹페이지(www.littleiapps.com)에 따르면 이 앱은 어느 카톨릭 성직자가 고안한 것이고 포트웨인-사우스벤드 교구의 케빈 C. 로데스 주교로부터 ‘임프리마투르(카톨릭 교회의 공식 인증)’을 받은 첫 아이폰 앱이다. 이로 인해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리틀 아이앱스(Little iApps)’의 공동창업자 패트릭 리넨이 말했다. 하지만 성직자가 더 이상 죄를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이 앱은 고해성사 준비에 도움을 주는 것이지 고해성사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라고 패트릭은 덧붙였다.
고해성사에 드는 시간
말하자면 지하철이나 병원 로비에서 ‘간단하게 해치우는’ 고해성사는 없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예전처럼 교회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해 그동안 저지른 죄를 기억해 내는 수고를 계속해야 한다. 시간, 고통, 자제력을 감안한다면 신부에게 용서받기 위해서는 2달러만 드는 게 아니다.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Ego te absolve).”라는 선언을 듣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투자되는 것이다.*
재림 신자들은 더 쉬운 방법을 알고 있다. 고해성사 앱이 필요 없고 20가지 특별 기도 처방을 내린 다음 죄를 사면해 주는 성직자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이 고백은 언제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첨단 기술, 고해실이나 성직자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에 바로 전달된다(히 6:19). 어쩌면 이것은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는 믿음으로 용서를 받아들이기보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많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용서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를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죄의 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벽돌 더미에 깔린 것처럼 숨을 쉬지도,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은 진실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를 용서하셨다. 용서를 선언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돈을 지불하거나 순례를 떠나거나 딱딱한 바닥 위에 몇 시간 동안 무릎 꿇고 있지 않아도, 용서 받았다는 영수증을 받지 않아도, 용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의심을 극복하는 법
무자비한 사탄은 속삭인다. “넌 또 죄를 지었어!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넌 결코 극복할 수 없어. 넌 실패자야.” 그러나 자책과 근거 없는 주장은 이제 떨쳐 버려야 한다.
로마서에 기록한 바울의 말을 인정하는 한 우리는 사탄의 불화살을 피할 수 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1~34).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베드로와 나눈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자.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질문을 꺼내면서 베드로는 일곱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마 18:21). 하지만 예수께서는 일곱 번에 칠십을 곱하셨다. 491번째부터 용서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항상 다른 이들을 기꺼이 용서하라는 뜻이다. 만약 예수께서 죄 많은 인간에게 이 정도의 용서를 요구하신다면 사랑의 화신이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더 많이 용서해 주실까?
죄와 수치심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스러운 순간이면,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가장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보다 자신을 더 모질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친구를 용서할 것인가? 물론이다! 그녀가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고 또 후회하더라도 용서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냉정해야 한단 말인가? 원하는 만큼 ‘선하지’ 않다고 해서 스스로를 고문해서야 되겠는가!
은혜의 위력
하나님의 자비는 끝이 없고, 용서를 구할 때마 그분은 언제나 용서해 주시니까 마음 편하게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원하는 상품이 튀어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다. 죄는 손해와 고통, 근심, 슬픔을 일으킨다. 죄는 동료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준다. 심할 경우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에게 수치를 안겨 주어 그분의 이름이 짓밟힌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꺼이 용서하려고 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빚을 갚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이지만 결코 값싸지 않다.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분은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셨고 위대한 희생을 치르셨다(롬 5:8~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시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분은 전 인류만이 아니라 각 개인을 가치 있게 보신다.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에는 당신과 내가 포함된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마음을 건드리고 있는가?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머리를 들고 숨을 깊이 들이쉴 수 있다.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자유다!”
실비아 렌츠
독일 알스바흐-핸라인에서 있는 독일 예언의 소리에서 일하고 있다. 뛰어난 작가이며 아동과 성인을 위해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Ego te absolvo는 ‘내가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라는 뜻으로 카톨릭 신부가 고해성사 후 선언하는 말이다.
<발문>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이지만 결코 값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