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더 밝은 날을 고대하며
윌리 에드워드 헉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 C. 링컨 기념관의 계단에서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를 전했다. 원래 짧은 연설이었던 이것이 신속하게 강력한 설교로 변모한 이유는 내용 마지막까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가 반복적으로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그 꿈을 통해 그는 후손과 사회를 위한 자신의 희망을 말하였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꿈
나는 마틴 루터 킹이 했던 것처럼 은혜롭게 설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꿈, 다시 말해 천년기와 죄의 종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둔 나의 꿈을 나누고자 한다. 물론 그 꿈은 내게만 있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꿈이다.
아내와 나는 많은 것을 함께한다. 그것들 중 하나가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기대이다. 다른 수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재림이란 그분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을 뜻하며 아무런 방해 없는 영원한 기쁨의 시작이다. 우리는 더 이상 유혹에 직면하지 않을 한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리고 천년기가 그 영원한 안식의 시작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열렬하게 고대하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천년기에는 또 다른 국면이 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20:4). 천년기 동안 나는 심판의 과정에 참여한다. ‘이 생에 속한 것들’(고전 6:3)의 실제 모습을 알게 하는 책들을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지금은 근시안적인 존재로 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질문이 많다. 그리고 때때로 근본적인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천년기라는 시간의 틀이 필요하다. 내가 알기에 하나님께서는 본인이 지지하지 않는 것을 종종 허용하신다. 왜 그런 것을 허용하시는지 나는 알고 싶다. 나는 질문거리가 많다. 왜 그분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곳곳에 횡행하게 놔두시는 것일까? 왜 여기저기서 이중적인 잣대로 사람을 대하도록 놔두시는 것일까? 왜 고용인이 피고용인에게 두 배의 일을 요구하면서 절반의 임금만 주게 놔두실까? 왜 어린이가 고통 당하는 동안 정부가 사소한 문제로 시시비비를 다투게 놔두실까? 빈곤한 사람이 모인 곳에 왜 굶주림과 기근을 허용하시는 것일까? 왜 권위의 오남용을 허용하시고 행정자들은 처벌도 받지 않고 칭송과 상을 받게 놔두실까? 왜 성실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이 혹사당하게 하시고 반면에 종종 그들의 동료와 상관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설렁설렁 해치우게 놔두실까? 왜 힘들여 겨우 마련해 놓은 얼마 안 되는 재산이 폭풍이나 홍수에 쓸려 가게 놔두실까? 왜 무죄한 자들이 고통 당하다가 죽게 놔두실까?
천년기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시간이다. 나아가 내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심지어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조차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시간이다.
할머니의 꿈
나의 외할머니 룰라 메이 존슨 힐은 내가 커가면서 알게 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들보다도 나은 분이다. 외할머니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게 만드셨고 나에게 가치 있는 인생 교훈을 많이 가르치셨다. 그리고 내가 교회를 위해 일하게 될 날을 꿈꾸셨다.
외할머니의 또 다른 꿈 때문에 나는 재림과 천년기와 죄의 마지막을 참을성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결혼한 후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 불행히도 그 아들은 병을 앓다가 몇 달 만에 사망했다.
외할머니와 내가 그 무덤을 방문했던 어느 날, 그 아들이 앓았던 병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늘 감명 깊게 회상하는 대목은 그다음의 이야기였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만이 알 수 있는 슬픔 속에서 외할머니는 부활의 아침에 아기의 수호천사가 어린 아들을 데려와 그녀의 팔에 되돌려 주며 천년기의 시작에 아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생각으로 즐거워하셨다.
나의 꿈
외할머니는 50년 동안 그 꿈을 지니셨고 1987년에 돌아가셨다. 더 이상 인생에 낙이 없게 된 외할아버지는 9개월 뒤 마음의 상처로 쓰러지셨다. 조지아 주 아우구스타 시에 있는 공동묘지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죽은 후손들보다 더 오래 살았던) 외증조할머니, 외증조할머니가 가장 사랑했던 삼촌(어린 시절에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의 아기 삼촌을 포함하여 여러 친척이 누워 있다. 그 공동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사 25:8)라는 성경 말씀을 생각한다. 그들과 또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천년기를 보낼 것을 꿈꾼다. 천년기로 말미암아 죄가 그리고 영혼을 망치는 죄의 결과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생각에 기쁘다.
나의 궁극적인 꿈
<애드벤티스 월드>의 지난 기사에서 프랭크 M. 하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망을 정복하시고 생명을,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다.”*라고 웅변적인 표현으로 재림에 대해 진술했다. ‘아들을 가진 자는 생명을 가졌다’(요일 5:12) 해도 그 충만한 생명은 죄의 저주가 존재하는 동안 현실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성취될 것을 우리는 희망 속에서 기다린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 22:20). 그의 오심은 천년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죄와 그 죄가 가져온 모든 아픈 결과들은 끝난다.
그분의 말씀에 대해 나는 요한과 같이 답변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윌리 에드워드 헉스
대총회 목회부 부부장이며 목회자들을 위한 세계적인 잡지 <미니스트리>의 부편집인이다.
* Frank M. Hasel, “Resurrection Morn: Scripture’s Take on Death and Resurrection,” Adventist World : NAD Edition, May 2014, p. 32
사이드 바
천년기와 죄악의 종말
천년기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도들이 첫째와 둘째 부활 사이에 하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죽은 악인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지구는 완전히 황폐되어 산 거민들이 없고, 사탄과 그의 사자들이 거처할 뿐이다. 그 기간의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도들과 거룩한 성과 함께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때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사탄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그 성을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태우고 지구를 정결케 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주는 죄와 죄인들에게서 영원히 해방될 것이다(계 20장; 고전 6:2, 3; 렘 4:23~26; 계 21:1~5; 말 4:1; 겔 28:19, 20).
발문
왜 무죄한 자들이 고통 당하다가 죽게 놔두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