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주님과 같은 분 없네
브루스 매너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있거나 사랑을 보여 주거나 사랑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시다. 사랑은 그분 존재의 핵심이다. 사랑은 그분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자신을 규명하는 방식이다.
그분이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우리에게 표현하도록 했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은 전지하신(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전능하신(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무소부재 하신(어디에나 계신) 분으로 존재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없다면 그분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인지될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부분을 예로 들어 보자. 그것은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마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그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다음 사건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번의 입맞춤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사랑은 아브라함을 먼 땅으로 보냈다. 사랑은 모세를 이집트로 돌아오게 했다. 손으로 기록된 십계명과 성령의 호흡으로 쓰여진 십계명과 성경 말씀은 사랑의 편지들이다.
율법에 관한 두 번째 책인 신명기는 모두 3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랑에 대해 29번 언급되어 있다(NIV).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능력이나 업적, 규모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신 7:7~9).
시편에는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 73번,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에 대해 36번(시편 136장에만 26번) 기록되어 있다. 말라기에서는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말라기는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말 1:2)로 시작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점에 대해 예수님은 궁극적인 모범이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해 오셨지만 신약에서는 아들 예수를 통해 말씀하셨다. 말로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말씀 자체를 보내신 것이다.
복음서에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바울의 편지서들은 그 이야기에 신학과 의미를 부여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그분의 마음을 드러낸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다 이루었다!”라는 외침은 원수가 패했다는 신호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내가 다시 오리라.”라는 예수님의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예수님이 그의 백성을 데리러 오실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반면에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로 인해 마음이 찢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1세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학식 있는 이방인이라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이 단순한 구절에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신들이 신경 쓴다는 개념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묵살되었을 것이다.”*
이교도들은 그들의 신전을 향해 “신들은 사랑이다.”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신들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발견이 세상을 바꾸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에서 별 의미를 못 찾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종교가 비난받는 시대, 무신론자에게 종교가 궤변으로 간주되는 시대이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을 규칙으로 얽어매는 종교가 많은 시대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내면의 신을 찾으려고 한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발견해야 그들의 세상이 바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것은 재림교회의 훌륭한 가르침이다. 엘렌 화잇은 대쟁투 총서 첫 책인 <부조와 선지자>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마지막 책인 <각 시대의 대쟁투>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로 끝맺는다. 우주 전쟁에서 하나님의 무기, 그분의 추진력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정로의 계단>은 다음 글귀로 시작한다. “천연계와 계시는 둘 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사실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십자가 근처에 있던 병사들과 군중을 증오로 들끓게 만든 성직자들, 그들의 메시아를 죽이기 위해 법을 곡해한 산헤드린 회원들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울부짖음이었다. 이 외침은 아돌프 히틀러, 이디 아민, 오사마 빈 라덴이 악의 화신으로 등장할 때마다 매 시대를 통해 울려 퍼진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다. 사람이 아무리 멀리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탕자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당신을 사랑하신다. 누구든지 사랑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브루스 매너스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버른에 있는 릴리데일 재림교회의 담임목사이다.
*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San Francisco: HarperCollins, 1997), p. 211
발문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손으로 기록된 십계명과 성령의 호흡으로 쓰여진 십계명과 성경 말씀은 사랑의 편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