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중요한 것
영생을 얻으라고 도전받을 때
제럴드 A. 클링바일
그는 더 잘될 수 있었다.
모두가 ‘복 받았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은 복 받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룩은 가장 우수한 학교들을 다녔다. 궁중에 있는 가장 높은 부서 중 한 곳에서 교육받았다. 그의 형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시종장’이었다(렘 51:59).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가면 바룩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점토 인장이 문서에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가족은 예루살렘 건축을 도왔다. 하지만 바룩은 왕궁 서기관으로 살지 않았다. 그는 다른 길을 걸었다. 실망, 박해, 고통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길이었다.
일생의 선택
어느 날 바룩은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만났고 예레미야의 사역이 그의 사역이 되었다. 그는 예레미야가 듣고 본 것을 기록했다(36:4; 45:1). 심지어 예레미야가 꼼짝할 수 없었을 때 예레미야의 대변인처럼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다(36:5~10). 예레미야와 동행하면서, 살기 좋은 궁정 생활과는 점점 멀어졌다. 복 받은 바룩은 끝없는 비판과 수그러들지 않는 박해로 발을 들였다. 벼랑 끝을 계속 걸었다. 그는 이집트로 강제 이주되었고(43:1~7 참조) 결국 만리타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분명 흥미진진한 결말은 아니다.
하지만 바룩이 죽은 지 2,5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사역이 없었다면 예레미야의 사역은 지금처럼 널리 퍼지지 못했을 것이다. 말씀에 대한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예레미야의 말씀은 우리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바룩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도 잊지 않으신다.
잊히지 않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회의가 들기 쉽다. 바룩도 분명 그랬다. 틀림없이 그는 혼자 버려졌다고 느낄 때가 많았을 것이다. 핵심 인물에서 주변인으로 물러났다. 하나님의 선지자와 함께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바룩도 그렇게 생각했다. 유다 왕 여호야김 제4년인 기원전 605년경에 기록된 이 짧은 장(45장)은 바룩에 대해 집중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잠시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직접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내신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이름을 부르고 자기만 아는 구체적인 일을 전달받고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듣는다면 말이다. 분명 바룩은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기원전 605년은 바룩이 예레미야의 말씀을 처음 기록한 해이다(36장). 그때 예레미야와 바룩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강하고, 더 오래 가고, 더 많은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언지, 바룩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메시지에서 가치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종종 외톨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상처 받는다. 앞길을 가린 문제 너머를 보고 싶어 한다. 시야는 제한되어 있고 자기 문제만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신다. “네가 일찍 말하기를 슬프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치 못하다 하도다 하셨고”(45:3).
2. 하나님은 삶에 개입하신다 :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아시며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며 활기를 되찾으라고 하신다. 우리가 정신이 번쩍 들 때마다 깨닫는 것처럼, 그분은 우주적 차원의 전쟁이 우리 주위에서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신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종종 졸개에 불과한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하나님이 모든 것을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4절). 하나님은 이 세상과 자녀의 삶에 적극 개입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을 얻는다.
3. 하나님은 시험하신다 : 상황이 곤란해지고 믿음, 소망, 사랑을 지키기가 힘들어질 때 종종 자극이 필요하다. 교육의 달인이시며 최고의 상담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사실을 아신다.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내가 모든 육체에게 재앙을 내리리라…여호와의 말이니라”(5절). 하나님은 “영생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신다. “결국 사라질 것에 연연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 바룩의 특별한 기별은 하나의 도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구원의 약속으로 끝맺는다. 그렇다! 인생은 거칠고 그것으로 인해 멍들고 낙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사랑 많으신 아버지의 자녀이다. 우리 자신에게서, 고통과 상처로부터,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너의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5절).
영생을 위해 살다
바룩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대쟁투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잊히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관여하셨다. 그에게 시련을 주셨고 또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과정을 허락하신다. 바룩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도록 한다.
약 30년 전, 오스트리아 슐로스 보겐호펜 대학에서 수학할 당시, 나는 독일의 유명 대중 복음전도사 중 한 사람인 쿠르트 하젤 목사가 이끄는 기도 주일 기간에 큰 은혜를 얻었다. 짜임새 있는 내용에, 적절한 예화, 전달 방식도 은혜로웠다. 지금은 그 설교 내용과 예화와 전달 방식이 대부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질문은 거의 매일 기억하고 있다. 십 대 딸들이 성인으로 자라면서 불안하고 때로는 힘겨운 과정을 거칠 때 나는 그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오늘 네가 하는 일이 영생에 변화를 줄 것 같으니?”
바룩이 묵묵하게 걸어간 길은 예루살렘 최고의 부동산이나 왕궁의 높은 급료와 거리가 멀었다. 진격하는 바벨론 군대를 코앞에 두고 그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삶이 어수선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원전 7세기 후반의 어느 날, 바룩은 영생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렸다. 상처와 실망 그리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음에도 그는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을 보라고 다그친다. 크고 작은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도 변화가 올 수 있음을 바룩의 봉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가슴에서 뛰고 있는 영생의 리듬을 잘 들어 보라고 격려한다. 희미하지만 여전히 들리는 그 소리는 우리에게 상처와 질병, 낙담 그리고 고통이 없는 새로운 아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영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제랄드 A. 클링바일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 미국 메릴랜드 주 실버스프링에서 5년 넘게 거주하면서 인생의 잡동사니를 쌓고 있다.
발문
딱 한 가지 질문은 거의 매일 기억하고 있다.
*공문서용 인장 위의 도장에는 “서기관 네리야후의 아들, 베레갸후”라고 적혀 있다. 베레갸후와 네리야후는 바룩과 네리야의 이름을 길게 표현한 것이다. 다음을 참조할 것. Nahman Avigad and Benjamin Sass, Corpus of West Semitic Stamp Seals(Jerusalem: Israel Academy of Sciences and Humanities/Israel Exploration Society/Institute of Archaeology,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1997), pp. 175, 176, bulla no.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