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지자의 사역
엘렌 화잇과 예레미야의 공통점
윌리엄 파갈
죄가 만들어 놓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연결하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가 선지자들이다. 예레미야의 경험에서 선지자의 사역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또 우리 시대에 더 가까운 선지자, 엘렌 G. 화잇과 비슷한 점 몇 가지를 찾아낼 수 있다.
선지자의 등장
하나님은 선지자를 부르신다. 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셨다.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했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예레미야는 자신이 부적합하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셨고 확신을 주셨다. “너는…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8절).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고 확신을 주시는 때에만 봉사하겠다고 동의했다.
마찬가지로 몸이 아프고 소심하고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17세의 소녀 엘렌 하몬(결혼 후 화잇)은 부르심을 받을 때 수반되는 모든 어려움을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다. 심지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애원하기도 했다. 교만하게 되는 죄에 굴복하여 “자신이 제대로 있어야 할 처지 이상으로 높임을 받고”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또 이어진 환상에서 천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만일 네가 염려하는 그 죄악이 너를 위협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뻗쳐 너를 구원하실 것이며 사랑으로 너를 그분께로 이끄셔서 네가 겸손하도록 보존하실 것이다. 기별을 신실히 전하라. 끝까지 견디라. 그리하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수를 마시게 될 것이다.” 그 이상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주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즐겨 이행하기로 자신을 완전히 주님께 헌신했다”(자서, 69~72).
하나님의 방법
예레미야는 이상을 통해 첫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 민수기 12장 6절에 언급된 “이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예레미야 1장 11절의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엘렌 하몬(화잇)은 첫 번째 메시지를 어떻게 받았는가? 그리고 이후 다른 많은 이상들은? 그녀는 “1844년의 때가 오래 지나지 않아 나에게 그 첫 이상이 주어졌다.”(자서, 64)라고 진술한다.
선지자가 기별을 받는 성경의 패턴은 분명하다. 메시지는 이상을 통해 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인상적인 생각 등 다른 방식으로 기별을 주셨다고 주장하는 이도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패턴과 다르다. 그것은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를 받아쓰는 형태로 메시지를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과거에 사용하신 방법과 다르다. 왜냐하면 성경의 기자들과 엘렌 화잇은 영감을 통해 받은 메시지를 자신들이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상과 더불어 민수기 12장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교통하기 위해 꿈을 사용하신다고 설명한다. 모든 꿈을 무조건 하나님의 지시로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예레미야는 경고한다(렘 23:25~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교통하기 위해 꿈도 사용하셨다. 엘렌 화잇은 초기 경험에서 많은 이상을 받았고 말년에는 메시지들이 주로 예언적인 꿈으로 주어졌다. 주요한 차이는 그것들이 주어진 시간이다. 즉 낮에는 이상, 밤에는 꿈이 주어진 듯하다.
선지자의 중요한 증표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싸우면서 예언의 성취가 시금석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렘 28:9). 이것은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참선지자의 시금석 중 하나이다(신 18:22). 예레미야 28장 15~17절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성취되었고 하나냐의 예언(1~4절)은 그러지 못했다.
선지자로 보낸 70년 동안 엘렌 화잇은 반복해서 예언의 성취라는 조건을 충족시켰다.
1848년, 신자들이 조직이나 돈이 전혀 없을 때, 그녀는 제임스 화잇이 출판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그것은 세상에 두루 퍼지는 “빛줄기”가 될 것임을 보았다(자서, 125). 본교회의 출판 사업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이다.
1850년, 그녀는 뉴욕의 폭스 자매와 함께 시작된 이상한 “두드림”에서 강신술이 성장할 것을 예언했다.1 강신술은 오늘날 널리 퍼졌다. 심지어 서구 문화권에서도 그러하다.
1861년, 그녀는 미국에 남북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해 후반기 전쟁이 발발했다.2
1890년, 사람들이 인간의 진보를 믿을 때, 그녀는 참혹한 전쟁이 세상에 일어나 수천 척의 배가 침몰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사건, 24). 양차 세계 대전은 그 예언을 무섭게 성취시켰다.
이런저런 많은 예언들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몇 예언이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 18:8). 참예언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조건적일 수도 있다.
선지자에 대한 중상모략
예레미야의 생애에서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겪는 불행한 현실도 나타난다. 선지자는 고소와 반대를 겪기도 하는 것이다. 관원들은 예레미야의 기별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통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려 함이라”(렘 43:2, 3). 바룩은 예레미야의 서기관이었다(렘 36:4).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 시대의 사람들(또 그 이후의 사람들)도 그녀의 기별이 하나님이 아닌 인간들에게서 왔다고 주장했다. 그 기별은 다른 사람의 것을 베낀 것이거나 우연의 결과이고, 엘렌 화잇은 제임스 화잇, W. C. 화잇과 그 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참선지자가 반대를 당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선지자의 사명
예레미야 시대에 유다는 하나님께서 있기를 바라셨던 위치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들은 이웃 나라의 신들을 추종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있는 유혹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이었고 유다보다 100년 전에 그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지금 유다는 같은 일을 행하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개혁을 반대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짓 선지자들과 만나야 했다. 그는 그들을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굳게 하”고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렘 23:14, 17)는 자들로 언급한다.
참선지자는 사역을 통해 언제나 하나님 백성들이 도덕적, 영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그들에게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호소한다. 사람들을 죄에서 떠나게 하는 일이 유쾌한 사역은 아니다. 사람들은 화를 낸다. 그러나 이것은 선지자의 필수 사역이다. 진정한 선지자는 죄를 꾸짖고 사람들을 악행에서 돌아서게 해야만 한다.
엘렌 화잇 이런 활동을 많이 했다. 그녀는 죄를 꾸짖고 희망을 주고 사람들로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간절히 호소했다. 그녀는 그 일이 기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한때 그녀는 책망의 기별을 전하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3기별, 36, 37).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녀를 도왔고 교회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우리가 신실하도록 하는 그녀의 사명으로 인해 보호받고 복을 얻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하나님께 진실하라! 그분을 신뢰하라. 힘들 때라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견고하게 되리라.”라고 말하는 것이 참선지자의 사명이다.
인간의 표준에 따르면, 예레미야의 사역은 진정 성공하지 못한 듯했다. 왕은 그의 호소를 거절했다. 백성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포로로 끌려갔다. 그리고 땅에 남아 있던 소수의 사람들도 계속 반역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기별은 진실했다. 그리고 그 기별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작용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분의 선지자를 믿도록 결심하자. 심지어 그들이 우리의 죄나 생각을 꾸짖을 때에도 그렇게 하자. 그러면 우리가 번영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저술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빛을 줄 것이고, 그분의 품성과 사랑에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분과 영원히 교제하려는 깊은 갈망을 제공할 것이다.
윌리엄 파갈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부소장
1 Ellen G. White, Supplement to the Experience and Views of Ellen G. White(Rochester, N.Y.: James White, 1854), pp. 5, 6
2 <대총회 회보>, 1893년 1월 31일,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