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 한 사명
마누엘 A. 고메스
축구 시합에서 최악의 경기는 자책골로 지는 것이다. 자책골이 무엇인가? 선수가 자기 편 골문에 공을 차 넣는 것이다. 대부분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우연한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언제나 당혹스럽다.
선수들은 어느 쪽에 골을 넣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팀끼리 손발이 안 맞는 극히 혼란스러운 순간이 있다.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특히 결승전일 경우,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팀의 전부를 앗아 갈 수 있다.
교회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지닌 팀과 같다. 각 사람은 이 사명을 성취하는 일에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 공격수, 수비수, 골키퍼 모두가 똑같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도 여기에 동의하는 듯하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 5).
축구처럼 각 선수가 중요하다. 그런데 목표에서 시선을 돌려 덜 중요한 일에 집중할 때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뛰고 있는지를 쉽게 잊어버린다. 대적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거나 심지어 자책골을 넣기도 한다.
한 사명
이기려면 반드시 득점해야 한다는 것을 선수들은 알고 있다. 득점은 중요하다! 그것은 팀의 사명이다. 득점은 교회에서 무엇에 적용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사명은 무엇인가?
교회의 사명을 기술한 책이 많지만 엘렌 화잇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한다.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행적, 9).
하나님께서 세상에 자신의 성품을 보여 주기 위해 선택한 통로가 교회, 곧 우리이다. 우리의 목표는 위기에 빠진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어 사람들이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어떤 인간이나 기관이 지닌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명이다. 실로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그토록 중요한 과업을 그토록 무능력한 인간에게 맡기신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겸허해진다. 지구가 초토화될 위기의 순간에 영웅이 나타난 세상을 구하는 책이나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영웅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세상은 완전히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구주께서는 우리를 희망의 도구로 임명하셨다. 희망을 잃은 이들을 섬기도록, 주님이 베푸신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보여 주도록 하셨다.
한 팀
축구 팀마다 보통 선수들이 14~18명 정도 된다. 그중 11명만이 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 재림 신자는 전 세계에 1천 7백만 명이 넘는데 놀랍게도 축구 팀과는 달리 목표 성취를 위한 활동에 인원 제한이 없다. 사실 우리 각자는 우리(와 하나님)의 사명 성취에 한 팀으로 공헌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세계적인 교회이다. 오늘날 이런 특징을 지닌 교파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적인 조직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규명한 목적 아래 세계 교회로 연합하는 일의 중요성을 종종 잊어버린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한다. “복음 선포는 그 범위에 있어서 세계적이어야 하였으므로 십자가의 사신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결속으로 연합하여, 세상 앞에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지 않고서는 그들의 중대한 사명을 성취시킬 것을 바랄 수 없었다”(행적, 90).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한 과업을 마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동일한 연합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세계적인 운동으로 결속되어 있어야만 한다.
각기 다른 선수들
축구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 구성원도 다양하다. 선수들의 피부색, 언어, 머리 모양, 기술도 제각각이다. 서로 공통점이 정말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경기력이 더 뛰어날 때가 많다.
하나님 백성 간의 연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연합을 획일성으로 오해하지 않는 태도이다. 연합은 획일성보다 더욱 강력하다. 연합은 어떻게 듣고, 보고, 행동하고, 말하는가에 대한 표면적인 차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 준다. 반면, 획일성은 문화적 이질감, 사회 경제적 배경의 차이 등 표면적인 것을 문제 삼는다. 종종 우리는 연합을 획일성과 혼돈하여 연합을 유지하는 일보다 세계 교회를 획일화하는 데 더 많은 힘과 자원을 소모한다.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마 28:19)을 제자로 삼으라는 내용이 포함된 분명한 사명을 주셨다. 이 사명에는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계 14:6)에서 나온 각 개인이 해당된다. 세상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다양한지 생각할 때마다 눈앞이 까마득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남은 자손은 복음을 지구 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위탁한 이 놀라운 도전을 마치기 위해서 다양성은 연합만큼이나 중요하다. 모든 나라와 종족과 방언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원칙 안에서 연합해 있으면서도 접근 방법은 다양해야 한다. 우리는 획일화가 아니라 연합하라는 호소를 듣고 있다.
종료 직전
무승부이거나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축구 결승 전•후반이 끝나면 연장전에 돌입한다.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힘들다. 선수들은 승리하기 위해 두려움 없이 돌파해야 한다. 하나로 연합하여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면서 득점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도 지금 연장전에 들어간 듯하다. 이 세상은 곧 끝날 것이다. 세상이 영원한 멸망으로 내리닫는 이때에는 서로 쫓고 쫓길 여유가 없다. 각기 상이한 선수들이 모였지만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한 사명과 한 목표로 연합한 한 팀임을 기억해야 할 시간이다.
마누엘 A. 고메스
쿠바 출신으로 최근 서던 애드벤티스트 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미국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리더십 전공 신학석사 과정을 수학 중이다.
사이드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연합
교회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가운데서 불러냄을 받은 자들로 구성된, 많은 지체를 가진 한 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이에서 민족, 문화, 학문, 국적 등의 구별이나 높은 자와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간의 차별이 분열의 요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상호간을 하나의 친교에로 결속시키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 우리는 편견 없이 솔직하게 서로 섬기고 또 섬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같은 신앙과 소망을 나누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별을 가지고 나아간다. 이러한 연합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이 일체가 되신 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롬 12:4, 5; 고전 12:12~14; 마 28:19, 20; 시 133:1, 2; 고후 5:16, 17; 행 17:26, 27; 갈 3:27, 29; 골 3:10~15; 엡 4:14~16; 4:1~6; 요 17: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