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러시아
리뷰 앤드 헤럴드의 놀라운 이야기
저격수들과 폭발물 탐지견들이 매릴랜드의 해거스타운에 있는 ‘리뷰 앤드 헤럴드’ 사옥을 호위했다. 임원 수십 명은 로비로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소련의 종교국장 콘스탄틴 하르체프와 일행, 대총회장 닐 C. 윌슨이 동승한 전세 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잔디밭에 착륙했다.
얼마 후 하르체프는 임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리뷰 앤드 헤럴드사 자료실에 있던 비디오 영상에서처럼 그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1986년 10월, 소련 고위 관리의 방문이 있을 당시 리뷰 앤드 헤럴드의 사장이었던 해럴드 버드 오티스 2세는 큰 소리로 작동되는 인쇄기를 본 하르체프를 회상하자 감동이 북받쳐 올랐다.
2013년에 녹화된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는 그 당시 시간당 3만 부의 <애드벤티스트 리뷰>를 인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러시아에도 이런 출판사를 꼭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 일을 해냈다.
이런 역사들 속에서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의 유산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이끄는 힘으로 자리 잡아 왔다. 1850년 이후 처음으로 인쇄 시설이 없는 출판사라는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어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리뷰 앤드 헤럴드의 소유주인 대총회는 6월 본사의 운영진과 더불어 수년간 재정 적자에 시달린 해거스타운 공장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의 지적 재산권은 대총회가 소유하며 <애드벤티스트 리뷰>, <애드벤티스트 월드>를 비롯한 각종 서적 및 다양한 인쇄물은 교회의 또 다른 메이저 출판사인 퍼시픽 프레스에서 리뷰 앤드 헤럴드사 이름으로 출판한다.
“리뷰 앤드 헤럴드는 오랜 기간 재림 기별을 전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 전통과 유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불어 본 출판사의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예전 소련 고위 관리와 함께 리뷰 앤드 헤럴드를 방문했던 전 대총회장의 아들이자 현 대총회장인 테드 N. C. 윌슨 목사가 말했다.
“그동안 리뷰 앤드 헤럴드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여러분의 노고로 수많은 영혼들이 하늘에 이를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윌슨 목사가 덧붙였다.
해거스타운 공장 폐쇄는 직원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일해 왔다. 현장 인터뷰, 전화, 이메일을 통해 전∙현직 근무자들은 공장이 계속 가동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개인적 슬픔을 뒤로한 채, 리뷰 앤드 헤럴드가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린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그들의 얼굴은 밝게 빛났다.
“출판의 힘은 겸손입니다.” 장기 근속자이자 2010년부터 리뷰 앤드 헤럴드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마크 B. 토머스 사장이 말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에서 근무한 것은 마치 출판계의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서 일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소련의 종교국장인 하르체프가 리뷰 앤드 헤럴드를 방문할 당시 토머스 사장도 함께 있었다. 하르체프는 12일간의 미국 방문 기간 동안 리뷰 앤드 헤럴드를 거쳐 뉴욕과 애틀랜타에서 여타 교파의 지도자들과도 만났다. 미국-소련 역사상 첫 종교 교류가 이루어졌다.
토머스 사장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밀 요원들이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소 냉랭한 분위기였습니다. 건물에 저격수들과 폭발물 탐지견들도 있었지요. 우리도 헬리콥터 이착륙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은 70번 고속도로 때문에 이곳에 착륙하지 않더군요.” 70번 주간고속도로는 리뷰 앤드 헤럴드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주요 고속도로이다.
하르체프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헬리콥터에서 옆에 앉아 있던 오티스에게 출판사에 대한 희망을 한 번 더 내비쳤다.
“워싱턴으로 가는 내내 그는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야 할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부터 하르체프와 저는 죽이 잘 맞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셨지요.”라고 오티스가 전화 인터뷰로 말했다.
당초 오티스는 추운 겨울이 지난 후 소련에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하르체프가 곧바로 와 달라고 요청했고 오티스와 그의 아내 로즈는 1987년 1월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티스 부부가 도착하자 하르체프는 리뷰 앤드 헤럴드에서 보여 주었던 친절한 모습 그대로 자신들을 환대해 주었다고 오티스가 회상했다.
“공항에서 만난 그는 우리가 외교적 차원에서 입국한 것으로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2주에 걸쳐 그 나라를 돌아보는 동안, 그는 1917년 이후로 대총회가 목회자를 파송하지 못했던 지역의 재림교회에서 제가 설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최초의 리뷰 앤드 헤럴드
리뷰 앤드 헤럴드의 뿌리는 18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재림교회 공동 창시자인 제임스 화잇은 <애드벤티스트 리뷰>의 전신인 <현재 진리(The Present Truth)>라는 간행물을 창간했다. 1년 후 그는 <애드벤트 리뷰>라는 두 번째 간행물을 발행했고 곧이어 <세컨드 어드벤트 리뷰>와 <새버스 헤럴드(Sabbath Herald)>를 하나로 묶어 이듬해 <애드벤트 리뷰 앤드 새버스 헤럴드(Th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를 발행했다. 제임스 화이트는 1852년 구입한 작은 인쇄기로 혼자서 출판물을 제작했다.
그 당시 비영리 단체를 위한 법률이 없었던 터라, 제임스 화잇이 전체 운영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초기 재림교인들은 공식적으로 교회를 조직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만약 제임스 화잇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출판사를 세우기로 동의하고 명칭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출판사’로 정했다. 이후 이 출판사는 리뷰 앤드 헤럴드로 알려지게 되었다.
초창기 출판사와 간행물은 근본적으로 동일하게 간주되었고, 1863년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기 전에는 간행물이 재림 운동을 위해 사람들을 단결시키고 힘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고 여겼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애드벤티스트 리뷰> 편집장을 역임했던 윌리엄 G. 존슨은 “그간의 역사를 볼 때 교회 간행물은 출판사 및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리뷰>지는 교회를 위해 앞장서서 재림교인들을 희망으로, 교리로, 전도로 연합시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의 역사에 정통하며 오랫동안 편집장을 역임한 제럴드 휠러는 정기 간행물이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와 비슷하게 공동체를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휠러는 아내이자 재림교인 저술가인 페니 에스테스 휠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의 페이스북과 같다고 할까요?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이들입니다. 이에 <리뷰>지가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제공하여 사람들은 실망감, 두려움, 좌절감, 외로움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편집자에게 보내는 독자들의 편지에서도 그런 면을 볼 수 있지요.”라고 페니 에스테스 휠러가 말했다.
1982년, 출판사가 메릴랜드 주의 타코마 파크 시에 있는 대총회 건물에서 해거스타운으로 이전하면서, <애드벤티스트 리뷰>는 리뷰 앤드 헤럴드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편집인 사무실은 현재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위치해 있는 대총회 본부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애드벤티스트 리뷰>와 동생 격인 자매지 <애드벤티스트 월드>가 리뷰 앤드 헤럴드의 총판매의 2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퍼시픽 프레스에서 두 간행물을 인쇄한다.
“리뷰 앤드 헤럴드가 인쇄를 중단해도 <애드벤티스트 리뷰>는 변함없는 사명으로 전진할 것입니다.”라고 두 간행물의 편집인인 빌 노트가 말했다.
재림교회 출판 역사의 산실
이후 출판사는 간행물의 그늘에서 벗어나 재림교회 출판 역사상 투자 규모가 가장 크고 복합적인 프로젝트였던 아서 S. 맥스웰의 10권짜리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세트로 널리 알려졌다.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보급된 이 시리즈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걸친 내용을 400여 가지가 넘는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이 사업은 리뷰 앤드 헤럴드가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컬러 그림을 넣기로 결정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디지털 시대 이전이었던 그 당시에 해리 앤더슨과 러셀 할란을 주축으로 한 화가들이 책에 필요한 삽화 수백 장을 그렸고 시험 인쇄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특히 리뷰 앤드 헤럴드는 이 사업을 위해 수만 달러를 투자하였고, 기업과 마찬가지로 파산의 위험에 놓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오늘날 상당수 재림교회 출판사들도 이런 일을 주도할 수 없을 거라고 리뷰 앤드 헤럴드 홍보 책임자 킴 페컴은 말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출판사는 이런 일을 추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판권을 주었습니다. 퍼시픽 프레스에도 판권을 주었고요.”라고 킴 페컴이 덧붙였다.
퍼시픽 프레스 역시 제임스 화잇이 설립한 것으로, 리뷰 앤드 헤럴드보다 약간 늦게 시작했다. 1874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문을 연 퍼시픽 프레스는 1984년 아이다호 주 남파 지역으로 이전할 때까지 거의 100년간 같은 자리를 지켰다.
한창 때 리뷰 앤드 헤럴드는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를 1년에 3만 세트까지 인쇄했고 퍼시픽 프레스 역시 비슷한 부수를 출간했다. 교회 출판사였다가 1980년 리뷰 앤드 헤럴드에 병합된 서던 출판사에서도 한 해에 1만 5천 세트를 찍었다.
그밖에 리뷰 앤드 헤럴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성경주석>을 비롯하여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7권으로 구성된 성경 주석은 F. D. 니콜 수석 편집장을 필두로 재림교회 신학자 수십 명이 오랜 시간 연구한 끝에 결실을 맺어 1953년부터 1957년까지 보급되었다. 1986년에는 엘렌 화잇의 <실물교훈>을 요약한
2009년에는 재림교인 평신도 잭 헨더슨이 주도한 서적 배포 운동에 발맞추어 <각 시대의 대쟁투> 보급판을 출간하였다. 리뷰 앤드 헤럴드는 이 책을 권당 60센트라는 전례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했고, 1.1달러 가격으로 미국 전역에 배송하겠다고 제안했다. 총 2백만 부 이상이 발송되었다.
테드 N. C. 윌슨 현 대총회장 역시 이 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여 리뷰 앤드 헤럴드와 세계 각국의 재림교회 출판사가 1억 부 보급 운동에 동참하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전자 서적 2천만 부를 포함하여 총 1억 4,200만 부가 보급되었다.
다시 소련으로
오티스는 처음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하르체프에게 재림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서적과 교육 기회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몇 달 후 소련 당국은 사용이 중단된 학교 건물을 세미나리로 사용하도록 제공해 주었고, 오늘날 그 자리에는 자오크스키 애드벤티스트 대학이 설립되어 있다.
“그는 마치 정상급 외교관을 맞이하듯 재림교회를 극진히 대우해 주었습니다.”라고 오티스는 하르체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2년 자오크스키 지역에 문을 연 재림교회 출판사 ‘생명의 근원’에서는 오티스의 도움을 받아 들여온 인쇄기로 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러시아어 성경을 출판하려다 파산한 어느 스웨덴 사람에게서 오티스는 3백만 달러 상당의 인쇄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사장님, 제게는 백만 달러조차도 없습니다만 이야기라도 나누시지요.’ 그리고는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또다시 저는 ‘사실은 50만 달러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더 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사장님께서 자오크스키로 인쇄기를 보내 주신다면 저는 현금으로 3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인쇄기가 지금도 가동되고 있습니다.”
오티스는 1978년부터 1988년까지 리뷰 앤드 헤럴드 사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대총회에서 소련과 러시아 관련 업무를 위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제 76세인 오티스는 여전히 러시아 여행을 하며 81세인 하르체프와 종종 만난다. 작년에 모스크바 남쪽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자오크스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안식일 오후에 대학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의 기여는 러시아 재림교회 출판사의 초석 마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현 대총회 부회장이자 구소련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아서 A. 스텔레 목사가 말했다. 하르체프의 방문 후 리뷰 앤드 헤럴드는 1987년에 러시아어 저널을 발행하여 구소련에 배포했다. <브자임포니마니예(상호 간의 이해) : 소련과 미국의 재림교인>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총천연색 고급 잡지는 구소련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개했다. 1988년 리뷰 앤드 헤럴드는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두 번째 특별 간행물을 발행하기에 이른다.
“리뷰 앤드 헤럴드는 1987년 이미 고품질 출판물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개의 간행물로 구소련에서는 재림교회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고 자오크스키에 출판사가 설립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자오크스키 신학대학원 총장과 유로-아시아지회장을 역임했고 수년간 러시아 재림교회 출판사에 몸담았던 스텔레 목사가 말했다.
신뢰의 증표
구소련의 고위 관리 방문이 화제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비밀 요원들이 리뷰 앤드 헤럴드 사옥에서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 재림교인이자 우간다 삼손 키세카 부통령이 방문할 당시에도 저격수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저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제 뒤로 비밀 요원들과 폭발물 탐지견들이 있었습니다.”라고 토머스가 말했다.
내과 전공의 출신인 키세카 부통령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 결과 리뷰 앤드 헤럴드는 에이즈나 약물 중독을 주제로 한 특별 간행물인 <메시지>를 아프리카로 발송하게 되었다.
“당시 리뷰 앤드 헤럴드 역사상 가장 많은 인쇄 부수를 기록한 이 특별 간행물은 미국과 아프리카 대륙에 에이즈 위험성을 알리고자 발행되었습니다.” 전 <메시지> 편집장이자 현 대총회 부회장인 델버트 베이커 목사가 말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는 다른 나라의 현지 공장에 인쇄 설비를 기부하고 직원을 파견하는 등 전문 기술 전파에도 힘썼다. 일례로, 1989년 제본 책임자인 케이스 알렉산더는 가이아나 출판사의 제본 설비를 돕기 위해 남아메리카로 건너갔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유로-아시아지회 출판부장을 역임했던 하워드 스코긴스 목사는 자신에게 리뷰 앤드 헤럴드는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그 당시 저는 원고가 필요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뷰 앤드 헤럴드에 다음과 같이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책들이 꼭 필요합니다. 로열티는 후에 지불할 테니, 제발 지금은 청구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리뷰 앤드 헤럴드는 많은 금액의 수수료를 포기하고 스코긴스 목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아프리카와 중동에 있는 재림교회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스코긴스 목사는 이후 해거스타운의 리뷰 앤드 헤럴드로 자리를 옮겨 2014년 본사의 마케팅 부사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원고에 목말라하는 세계 곳곳의 수많은 재림교회 출판사에 리뷰 앤드 헤럴드가 각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러시아 시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바로 각국에서 번역하고 재간행할 가치가 있는 고품질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고에 표시된 R자는 믿고 책을 봐도 좋다는 표시입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앤드루 맥체스니
<애드벤티스트 월드> 뉴스 편집인이다.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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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서 찾아온 손님 : 회색 정장 차림의 콘스탄틴 하르체프가 닐 C. 윌슨(가운데 사진 맨 오른쪽), 해럴드 버드 오티스(맨 왼쪽)와 함께 메릴랜드 해거스타운에 있는 리뷰 앤드 헤럴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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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1800년대 말, 미시간 배틀크릭에 위치한 리뷰 앤드 헤럴드 건물과 디자인 부서
글로벌 프로젝트 :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평신도 잭 헨더슨은 <각 시대의 대쟁투>를 미국 각 가정에 보급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재림교회는 2012, 2013년에 1억 4,200만 부를 보급했다.
새로운 이미지 : 아서 A. 스텔레가 소련에서 재림교회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저널 <브자임포니마니예>지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