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 현상 – 카페인 중독자의 고백
윌리엄 헤이든
나는 20년 전부터 카페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물론 엘렌 화잇이 카페인에 대해 언급한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장거리 운전할 때, 고된 밤을 보내고 난 후, 시차를 극복해야 할 경우 등 아주 가끔씩이었다. 두 달에 한 번이었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어쨌든 많지는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다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즐거움을 위해 한 잔, 기운 내려고 한 잔. 그 즈음 ‘구오메이’ 커피가 뜨고 있었고, 이내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안 가 본 사람이 있을까? 모두 재림교인이었던 우리 대다수는 함께 터벅거리며 찾아가곤 했다. 담소를 나누고, 긴장도 풀고 그리고 카페인이 들어가면 확실히 다시 일할 맛이 났다.
나는 목사다. 안수도 받았다. 함께 커피를 마신 이들 중에도 목사가 많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들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끊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그저 ‘라테’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도 ‘콩’ 라테.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매일 마시고 있었다. 아침에 한 잔, 활력을 위해 오후에도 조금. 강단에서도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 커피를 마셨다. 더 이상 그 문제에 골몰하지 않았다. 커피 마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재림교인도 많이 마시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되겠나?
커피에 관한 의학 보고도 읽었다. 과도한 섭취를 경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커피가 거의 해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알츠하이머 발병률을 낮추는 등 분명한 건강상의 이점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카페인을 주입받은 쥐가 끔찍한 병에 걸렸다는 보고도 있지만, 사람으로 치면 매일 커피 11리터를 정맥에 주입시킬 때나 가능한 일이라면서 내 자신을 진정시켰다.
‘원하면 그만둘 수 있어’
몇 년이 더 지났다. 나는 ‘원하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단지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커피를 끊을 때 겪는 심각한 두통과 며칠 동안 이어지는 끔찍한 기분에 대해서도 들었다. 굳이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다. 뭐하러? 어차피 그냥 커피일 뿐인데.
그러나 20년쯤 지난 후, 전보다 더 많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단지 평상시의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잔이 필요했다. 몸이 약물에 익숙해지면 전에 경험했던 효과를 느끼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약물이 필요하듯, 이른바 커피에 ‘내성’이 생긴 것이다. 처음 커피를 마시고 행복감에 젖은 기억이 난다. 그런 행복감을 마지막으로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이제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현재 커피는 내가 깨어 있게 도와주고 잠시 동안 약간의 에너지를 주는 정도다.
커피가 나의 수면에 영향을 주었다는 걸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눕기만 하면 10분 이내에 잠들고 7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18년 동안 그런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악몽의 시작
마침내 커피를 끊기로 결심했다. ‘20년이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젊어지지도 않았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는데 커피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이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커피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커피를 끊을 만큼 심각하게 자책한 것은 아니다. ‘문제 될 게 뭐 있겠어? 그냥 커피일 뿐인데!’ 하는 생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얼결에 “이제 그만.” 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얼마간의 휴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두 주 정도 일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생각이었는데 이때다 싶었다. 커피를 끊을 때 겪게 될 두통과 어지러움을 며칠만 견디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커피를 끊은 지 얼마 안 되어 위에 통증이 왔다. 이미 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때문이려니 했다. 그런데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속이 메스껍고, 아파서 기진맥진할 지경이었다. 그전부터 있던 가벼운 위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틀이 지나자 두통이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한꺼번에 아픈 게 낫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커피를 끊기로 작정한 상태였다. 다행히 두통은 곧 사라졌다. 위는 여전히 아팠지만 예상했던 금단 증상은 없었다. ‘뭐야. 별 거 아니군. 마시고 싶은 생각도 안 드는 걸.’ 그 무렵 나는 기분이 너무 나빠서 아무것도, 심지어 커피도 관심이 없었다.
4일이 지나자 정말 비참했다. 식욕이 전혀 없고 메스꺼웠다.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이틀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진짜 악몽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공황 발작이 시작되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 와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연이어 극심한 공포가 밀려와 머리와 가슴팍에 박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의 36시간 동안 공포에 휩싸여 넋이 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즉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자살하든지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이 몰려들까? 카페인 금단 현상일 리 없어. 안 그래? 3시간 동안 두통으로 금단 증상을 이미 겪었잖아. 더 이상은 아닐 텐데.’
잠자리에서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했다. ‘카페인 금단 현상’을 검색했더니 놀랍게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 바로 카페인 금단 증상이었다. 두통이 가장 흔하지만 그것은 유일한 증상도, 누구나 겪는 것 아니다. 심각한 금단 증상에 대해 읽고 나서 지금 내게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18년 동안 매일 약물을 몸에 주입하다가 끊어 놓고 약간의 두통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극심한 약물 금단 증상을 겪고 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끔찍하리만큼 고통스러웠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았다. 돌이켜 보면 최악의 상황을 통과할 때까지 내 증상을 카페인 금단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 증상이 무엇 때문인지 진작부터 알았다면 나는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맹렬하게. 상황이 이해되었을 때는 최악의 고비를 막 넘긴 참이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위험한 물질
이제 카페인에서 멀어진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여전히 100퍼센트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하나님께 감사한다!). 카페인이 그렇게 위험한 것인지 그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독자들은 나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기 바란다. 아직 카페인을 마시지 않았다면 부디 시작할 생각도 하지 마시라! 마시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 따위는 집어던져 버리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하거나 건강에 좋은 것은 아니다. 만약 조금 마시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라! 더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어질 것이고 끊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카페인은 약물이다. 대부분의 약물처럼 중독성이 있다. 커피 회사 간부들은 카페인의 중독성을 부인하겠지만 나머지 모든 사람은 더 잘 알고 있다. 만약 당신이 중독자라도 중단하라. 끊으라(당장 끊는 게 가능하다. 물론 단단히 각오하라).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경험한 증상을 겪지 않을 수도 있고 더 심하게 겪을 수도 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건 그냥 커피가 아니다. 그것은 중독성 강한 약물인 카페인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원하신다.
윌리엄 헤이든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