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기스 발굴
과거를 통해 발견하는 미래의 하나님
제럴드 A. 클링바일
그날 아침은 고요했다.
아침 일찍 올라간 ‘텔’1에 구름이 덮여 있었다. 안개 속으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30분 후면 태양은 이 상쾌한 아침을 뜨겁고 습한 날로 바꿔 놓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상쾌한 공기에 여전히 고요한 아침이었다. 미국 테네시 주 서던 애드벤티스트 대학의 4차 라기스 발굴단의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은 예배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곧 의욕적인 발굴, 인양 작업, 조심스런 체질, 꼼꼼한 기록 등 분주한 작업이 텔에 깃든 아침의 정적을 깰 것이다.
땅을 파헤치는 이유
일찍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고고학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을 포함하여 고대 근동 지역의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이 분야에서의 재림교회 고고학자들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다. 1968년 앤드루스 대학의 시그프리드 혼 교수의 지휘 아래 요르단의 텔 헤스반 발굴을 시작으로 재림교회 고고학자들과 여러 기관이 주도한 발굴은 고고학 연구와 기술 분야에서 제일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기 고고학자들은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종합적 접근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건물 유적, 인공 유물, 도자기 이외의 것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사람의 유골과 동식물 유해에 관한 연구 결과 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자료들을 통합한 것이 재림교회 고고학 연구 프로젝트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2
‘과거를 더 캐기 위해 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우선, 성서고고학은 성서 시대 동안 성경에 언급된 지역에 초점을 둔다. ‘성서고고학’이란 한물간 표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즘 대부분의 학자들은 ‘고대 근동 고고학’ 이나 ‘시리아-팔레스타인 고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히브리 대학 교수이자 본 발굴단의 공동인솔자 셋 중 하나인 요시 가르핑켈 교수는 “성서고고학이야말로 어떤 다른 용어보다 자연스럽다.”라고 여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메르세데스 벤츠가 회사 이름을 바꾸지는 않잖아요?” 아득한 과거를 밝히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성경에 묘사된 역사나 사건의 실체에 초점을 두고 진행된다.
고등학생 자원봉사자인 다니엘라 헤셀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성서 역사가 실제로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 인물, 실제 장소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해 주는 비교적 좁은 지역에 살면서 실제로 하나님을 만났던 선택받은 백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 세상을 향해 구원을 알리며 우리가 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
애리조나 지역 재림교회 목회자이자 자원봉사자인 맬컴 더글라스 목사는 “고고학은 성경 그 자체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성경에 대해 믿고 있는 것들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즉, 고고학은 단순히 대규모의 과학적 사업이 아니다. 서던 고고학 연구소 부소장이자 발굴단의 공동 인솔자인 마틴 클링바일은 고고학을 교회의 사명과 연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그분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데 의의를 둔다고 강조한다.
왜 라기스인가?
이스라엘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한 곳인 텔 라기스는 면적이 거의 12.5헥타르에 달한다. 고고학자들은 사실 이곳이 성서 시대에 유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고 말한다. 세펠라 남부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팔레스타인 해안 평지와 예루살렘을 둘러싼 고대 유다 산악 지대를 연결하는 지역으로, 이스라엘의 통치 기간 동안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1929년에 발견된 이곳은 3대 주요 발굴 계획의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4차 라기스 발굴은 다윗과 솔로몬 왕의 통치 이후 초기 유다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 시기를 두고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지난 20년간 열띤 논쟁을 벌여 왔다.3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 연구 팀이 주도한 3차 라기스 발굴의 결과로 이스라엘의 연대기가 개정되었고 4차 라기스 발굴단 인솔자들은 라기스가 이러한 연대순의 문제들을 분명히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철기 시대의 연대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발굴될 당시만 해도 정밀한 연대측정 기술이 부족했거든요.” 서던 고고학 연구소 소장이자 발굴단의 공동 인솔자인 마이클 하젤 소장이 설명했다. 발굴자 대부분이 상층부에 초점을 두는 반면 유다 초기 역사를 간직한 하층부는 체계적으로 드러나지 있지 않다.
성서 시대에서 라기스가 가장 주목받던 순간은 니느웨 앗수르 왕궁에 발견된 양각 부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701년 라기스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정복되었다. 잘 다져진 경사로를 만들어 요새화 된 도시를 점령하여 마침내 라기스를 정복하기에 이른다. 그는 어마어마한 경사로를 쌓아 이 철통 같은 성읍을 정복했다. 경사로는 지금도 남아 있다. 산헤립의 라기스 정복 이야기는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양각부조 기록과 열왕기하 18장 14, 17절, 19장 8절, 이사야 36장 2절과 37장 8절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로부터 130년 후 라기스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 또다시 정복당하는데(렘 34:7), 1930년대 처음으로 라기스를 발굴할 당시 발견된 질그릇 조각에 그 사건이 잉크로 새겨져 있다. 이 기록에는 봉화로 연락을 주고받던 파수꾼이 언급되어 있고 바벨론 군대가 침공할 당시 백성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걱정이 암시되어 있다. “…아침이 되면…우리는 아세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 주인께서 주신 모든 군호를 따라 라기스의 봉화 신호를 예의 주시하다가 주인께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4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라기스를 언급한 곳은 느헤미야 11장 30절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정착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하여
라기스는 역사상 하나님의 약속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위대한 장소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스 1:1) 그분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과 도성을 재건할 수 있게 하셨다고 전한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이다.5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예루살렘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 주기도 하셔서 그분의 계획과 목적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신다. 그분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시는 듯하다. 필요할 때는 느부갓네살이나 고레스도 사용하신다. 라기스 발굴은 하나님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이 개입하셨다는 생생한 증거를 질그릇 조각, 성벽, 공예품에서 문득문득 발견한다. 역사·문화·종교의 점들을 이어 가면서 큰 그림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라기스 4차 발굴은 고대 역사나 하나님의 인간 역사 개입에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하고 비서구 지역 기관에서 고고학 탐사에 참여한 재림교회 학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려고 애쓰고 있다.
마틴 클링바일은 발굴에 처음 참여했던 1998년 마다바 평원 프로젝트를 잊지 않고 있다. 당시 그는 볼리비아 재림교회 대학 교수였다. 월수입 250달러로는 일반 자원봉사자 수고비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림교회 후원 단체 중 한 곳에서 그에게 장학금을 기증했고 한 구역을 감독해 달라고 초청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고 가르치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틴 교수는 발굴 관리 담당자에게 얻은 몇 가지 물품으로 학생들과 함께 작은 전시관을 열었다. “방문객들이 출토품을 보고 만지면서 엄청난 전율을 느껴요. 영향력과 파급 효과도 상당합니다.”
서던 고고학 연구소는 이 점을 배려하여 대대적인 모금을 벌였고 제삼 세계에 위치한 두 재림교회 기관을 협력 단체로 끌어들였다. “그들에게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는 영역을 할당해 줍니다.”라고 클링바일은 말했다. 이런 점에서 금번 4차 라기스 발굴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고고학 탐사와 관련하여 갖가지 과제를 경험하게 하는 발굴 학습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교수들의 매일 강의, 주말을 활용한 이스라엘 및 요르단 주요 지역 탐방으로 운영진과 자원봉사자들은 한층 폭넓은 학습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결과, 2014 서던 라기스 발굴 작업에는 볼리비아, 캐나다, 페루, 베네수엘라, 브라질, 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 14 국가에서 총 62명의 자원봉사자들과 운영진이 참여했다.
브라질 상파울루 재림교회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 켈디 파루시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재미있고 힘들었어요. 파묻힌 것을 발견하고 땅속에서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은 흥미진진해요.” 칼리지데일에서 온 멜리사 패로는 하나님, 동료, 성경을 하나로 이어 준 여행과 예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헬더버그 대학에서 신약을 강의하는 마이클 소쿠파 교수는 베테랑 고고학자와 자원봉사자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그는 탐사 활동의 학습 기능을 통해 남아프리카 학사 프로그램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도 몇몇 과목들을 개설하고 나아가 서던 대학과 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이것이 아프리카를 위한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를 통틀어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아직 없거든요.”
놀라움
뜨거웠던 하루가 또 지나갔다. 텔 라기스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석양이 드리운 언덕은 금빛, 자줏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4차 라기스 발굴단 대원들이 도기 세척 작업을 마쳤다. 내일도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고된 고고학 발굴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내일도 이곳과 이스라엘 곳곳 그리고 그 외 지역에서 여러 발굴단이 역사를 캐내며 구슬땀을 흘릴 것이다.
오늘과 마찬가지로 내일도 질그릇 조각, 건물 유적, 기타 유물들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것이다. 최근 서던 애드벤티스트 대학을 졸업하고 라기스 발굴단에 참여한 셰리 린 올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성경을 믿어요. 평생 성경을 연구했죠. 그런데 이곳에 와서 전혀 다른 차원을 경험했어요. 정말 놀라워요. 이제는 진짜 눈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 기분이 어떤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럴드 A. 클링바일
과거를 발굴하는 데 열정이 남다르며 올 7월 아내 섄탈 클링바일과 라기스 4차 발굴 팀에 합류하여 잊을 수 없는 한 주를 보냈다. 발굴하지 않을 때는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으로 일한다.
1 텔(Tell)이란 수세기 동안 주거지의 부서진 흙더미가 퇴적하여 이루어진 인위적인 언덕을 말한다.
2 현재 이러한 프로젝트에는 텔 헤스반, 텔 우마이리, 텔 잘룰을 포함하여 앤드루스 대학과 라 시에라 대학 및 재림교회 연구소에서 후원했던 요르단의 메드바 평지 프로젝트와 독일 프라이덴사우 애드벤티스트 대학에서 인솔한 모압 키르베트 알 발룰의 발굴 작업이 포함된다. 이뿐 아니라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서던 애드벤티스트 대학이 히브리 대학과 협력하여 텔 하조르를 발굴한 것과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이스라엘 키르베트 케이야파를 발굴한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3 이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할 것. Michael G. Hasel, ‘Another Battle Over David and Goliath’,
4 Dennis Pardee, ‘Lachish Ostraca’, in
5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비롯하여 백성을 “감동시키고(moving)” “일으킨다(stirring)”는 것은 성서 신학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미래에 바벨론을 정복할 인물을 묘사하면서 이사야 41장 2, 25절, 예레미야 51장 1, 11절에서는 똑같은 히브리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사야 44장 28절, 45장 1절에는 그 이름을 고레스라고 밝힌다.
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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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쌓다 : 라기스 4차 발굴 현장. 사각형 구덩이 주변의 모래주머니는 발굴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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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손안에 들어온 역사 : 자원봉사자 키에르스타 맥키가 왕의 인장이 찍힌 항아리 손잡이를 들고 있다. 위 : 파편 분석 : 발굴 지휘자와 단원들이 발굴 부지의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 그날 발견한 도자기 파편들을 판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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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고대의 만남 : 다니엘 페레스가 GPS로 고대 유적지를 측량하는 동안 젊은 자원봉사자 데이비드와 마티아스 클링바일이 쳐다보고 있다.
큰 그림 : 발굴 지휘자 요시 가르핑켈(왼쪽)과 마이클 하젤(가운데)이 중요한 출토품을 쳐다보고 있다. 은퇴 교수 윌리엄 데버 교수가 현장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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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색깔 : 각 지층의 색을 주의 깊게 분류하여 토양의 형질과 색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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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 볼리비아 재림교회 대학 교수 세군도 테오필로 코레아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될 당시의 지층을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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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진 : 무인 항공기로 찍은 발굴 현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