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발굴하다
대부분의 논쟁의 핵심은 미래이다.
평생 과거의 사실과 의미를 따지는 게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18세기 후반 맹렬한 프랑스 혁명을 일으킨 경제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초기 재림 운동 당시 미국의 목화 산업은 도덕적 재앙이라 할 수 있는 흑인 노예 제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1914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촉발된 끔찍한 군비 경쟁의 정치적∙사회적 배경 세력은 무엇인가?
언뜻 보면 마치 과거가 완벽하게 묘사 가능한 일련의 사건들처럼 보이고 이러한 질문들은 과거에 대한 논쟁이나 토론쯤 되는 것 같다. 사학자 심지어 중∙고등학교 학생조차도 한두 가지 이론에만 집착하게 된다. 물론 관점의 타당성을 따지는 이유는 미래 사건을 해석하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임을 그들도 알고 있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쓸지, 끝에서부터 짜야 할지를 두고 다투는 것도 미래의 동등한 관계를 위해 협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쪽이 다스리고 한쪽은 섬겨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던 조화를 은혜 안에 발견할 것인가?
부편집인이자 구약학자인 제럴드 클링바일의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나타난 논쟁은 단순히 고대 근동 고고학이 케케묵은 학문임을 뜻하는 고대 라기스 흔적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의 신앙, 특히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에 대한 믿음에 관한 논쟁이다. 라기스 발굴과 같은 고고학적 사건이 더욱 많이 드러날수록, 성경은 더욱 신뢰를 얻고 고통스런 과거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전개될 혼란의 때에 마지막 남은 백성들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굳게 믿을 수 있다.
특히 이번에는 각자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며 <애드벤티스트 월드>를 읽기 바란다. “주님,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주님의 말씀에 전념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