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보인다
마이런 매든
나는 세상이 흐릿하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동안 손을 쳐다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손이 화질 나쁜 컬러 TV 화면처럼 보이는데도 느낌은 왜 이리 만질만질하고 딱딱할까? 언제나 존재하는 흐릿함이 내 인생의 큰 불가사의 중 하나였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원래 그렇고 내가 죽을 때까지도 그것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 성적표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성적이 형편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꾸짖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건 불공평해요.” 나는 팔짱을 끼며 입을 비쭉 내밀었다. “칠판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시험을 잘 볼 수가 있어요?”
순간 어머니 얼굴에 혼란스런 표정이 지나갔고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몇 가지 검사를 실시한 뒤 의사는 내게 “박쥐만큼 시력이 나쁘구나.”라고 말했다.
‘못 본다고?’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모든 사람이 나처럼 보는 게 아니란 말이야?’ 새로운 사실에 대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내 얼굴에 안경을 씌웠다.
“와, 정말 눈부신 걸!”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선명했다. 늘 보았던 것들인데도 어딘가 달라 보였다. “이 싱크대를 봐! 이렇게 반질반질한 줄 몰랐어. 그리고 와! 쓰레기도 빛이 나!”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뒤따라오는 엄마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 여인의 아들은 한때 ‘맹인’이었지만 이제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포위
“엘리사! 일어나세요!”
잠에서 깬 엘리사가 흥분에 찬 하인의 속삭임을 어렴풋이 알아들었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엘리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며 하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땀에 흠뻑 젖었고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하인은 주인의 소매를 잡고 그를 일으켜 주었다. 아무 말 없이 엘리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태를 직접 확인하게 했다. 하인이 떠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완전히 포위했다. 시리아 군대였다. 하나님께서는 시리아 왕의 전략을 엘리사에게 알려 주셨고 엘리사는 그것을 이스라엘 왕에게 전해 주었다. 적국의 왕은 엘리사가 정보 유출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런 일을 막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게 분명했다.
누가 봐도 엘리사와 하인은 덫에 걸렸다.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시리아 군사가 공격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선생님, 어떻게 합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 엘리사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하인은 놀라고 혼란스러워 주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백 명에 대항해서 오직 그들 두 사람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계산을 잘못한 것일까? 아니면 결국 미쳐 버린 걸까?
엘리사는 하인의 표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자신이 엘리야의 제자였을 때가 생각났다. 엘리사는 하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눈의 뜨인 하인은 숨이 턱 막혔다. 또 다른 군대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이 군대는 달랐다. 그들은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있었고 시리아 군대보다 훨씬 많았다.
하인은 그의 눈을 믿을 수 없어 재빨리 좌우를 살폈다. 천사의 군대가 엘리사와 그를 내내 둘러싸고 있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하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맹인이었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볼 수 있었다(왕하 6:8~17 참조).
영적 시력
영적 맹인과 신체적 맹인은 매우 비슷하다. 제대로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시력이 얼마나 나쁜지 결코 깨닫지 못한다.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영적 시력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신학에 대해 꽤 알고 있었고 믿음도 확실했으며 내 삶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 한 분이 성경을 파고들어 보라고 조언한 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분이 원하는 건 성경을 그냥 읽는 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입에서 바로 나온 것처럼 각 단어의 뜻을 음미하며 각 장의 구절 하나하나를 연구하도록 주문하신 것이다.
힘들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 과제를 시행해 보았는데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성경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할수록, 읽은 내용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갑자기 성경을 읽는 것이 단지 또 다른 잡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방편이 되었다. 나는 곧 매일매일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그분과 소통하며 보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으로 삼자 마침내 그분이 내 눈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시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해야 하는 매 순간에, 성공했을 때, 슬플 때 그분이 어떻게 함께하셨는지를 보았다. 거룩한 책에 쓰인 영감의 글로만 알았던 성경 이야기들이 살아 있었고 나의 영적·개인적 삶에 생생하게 적용되었다. 나를 이끄는 그분의 손길이 보이자 슬픔과 고통, 기쁨과 사랑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바뀌었다. 모든 것은 이전과 정확히 똑같았지만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영적 명확성이란 아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시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분이 하시는 일을 실제로 볼 수 없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영적 안경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영적으로 눈멀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도 영적으로 눈먼 사람이 참 많다.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듣지만 그것을 느끼기는커녕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만 정작 스스로는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영적 식별력에 얼마나 민감하든지 간에 우리는 모두 맹인으로 태어났다. 죄는 우리의 시력을 흐리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시야는 선명하지 않게 되었다. 주인이 돌아오실 때까지는 결코 시력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겠지만 현재의 나쁜 시력을 개선할 수는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고자 하신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기 원하시고 삶의 거친 길을 평평한 길로 바꾸기 위해 그분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신다(사 42:16). 우리의 삶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그분의 완벽한 성품을 조금이나마 보여 주기 위해 안달하신다(렘 29:11~14).
이 영적 안경을 선사하시면서 단지 우리가 진심으로 그분을 찾기만을 원하신다(신 4:29). 우리 삶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확인하려면 먼저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탐구함으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이 누구인지 분명하고 뚜렷한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물론 우리가 기도하며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출 33:11). 우리는 복을 구하고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쉽게 하지만 기다리고 듣는 데는 인색하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만이 아니다. 매일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도 포함된다(렘 33:3 참조).
흐릿한 환경에 만족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원래 자신이 의도하신 대로 우리가 눈을 열고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기다리신다. 엘리사처럼 그분이 당신의 눈을 열어 주시면 당신도 다른 사람의 눈을 열게 되고 그들 또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이런 매든
2014년 <애드밴티스트 월드> 인턴 사원이었다
발문
죄는 우리의 시력을 흐리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시야는 선명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