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메신저
어떻게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나?
엘렌 화잇의 생애와 유산에 대한 전망, 1827~1860
제임스 R. 닉스
1845년 후반, 18세의 엘렌 하몬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출간된 전 밀러주의자 신문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1년 전인 1844년 12월, 하나님께서 받은 이상의 주요 부분을 실었다. 그녀가 일생 동안 받은 수백여 이상과 예언적인 꿈 중 첫 번째였다. 자신이 죽는 1915년까지 70여 년간 저술한 숱한 기사, 서적, 책자 중 그 편지가 첫 번째 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846년 제임스 화잇과 결혼한 다음에 그녀는 흔히 엘렌 G. 화잇으로 알려졌다. 엘렌 G. 화잇의 사망 100년이 되는 2015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녀의 영적 유산을 포함한 생애의 두드러진 영향력을 회상하고 있다.
초기
엘렌과 그녀의 쌍둥이 자매, 엘리자베스(어린 시절 ‘엘라’와 ‘리지’로 불렸다.)는 로버트와 유니스 하몬 가의 여덟 자녀 중 막내였다. 두 자매가 1827년 11월 26일에 태어날 당시 집은 집은 메인 주 고램에 있었고, 이후에 메인 주 포틀랜드로 이사했다. 둘이 9살이었던 어느 날, 조그만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걸어가는데 화가 난 학교 친구가 그들에게 돌을 던졌고 엘렌의 얼굴에 명중했다. 그 사고는 그녀의 남은 생애에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 엘렌은 살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학교를 다닐 만큼 충분히 회복되었을 때도, 손이 심하게 떨려서 펜을 쥘 수가 없었다. 책을 읽으려고 할 때 글자들은 책 위에서 뒤엉킨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정규 교육은 그렇게 끝났다. 그때부터 그녀는 혼자서 공부하였다.
엘렌의 부모는 감리교인이었다. 그녀는 14살에 그 교회에 출석했다. 전직 농부였던 침례교 설교자 윌리엄 밀러가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주야 예언의 끝인 1844년이라는 아주 가까운 시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리라는 자신의 결론을 포틀랜드에서 전했다. 엘렌은 그 생각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자신들이 믿은 새로운 신앙 때문에 하몬 가족은 교회에서 출교당했다.
실망을 넘어
기대와 달리 예수는 1844년에 오시지 않았고, 엘렌과 다른 많은 이들은 심히 실망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성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걸어 올라가는 첫 이상이 그 무렵 하나님께로부터 엘렌에게 주어졌다. 예수께서 길을 가는 무리 바로 앞에 계셨다. 시선을 그분께 고정한다면 그들이 하늘 목적지까지 도착할 것임을 그녀는 확신했다. 그 이상은 그녀와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예수를 높이는 일은 엘렌의 사역에 나타난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가 몇 가지 이상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과 글로 전하라고 지시하셨다. 수줍은 성격에 손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 일은 불가능한 듯했다. 그러나 호소를 받아들인다면, 그녀가 말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글을 쓸 때 손을 굳게 잡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마지못해 그녀는 그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 뒤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지켰다.
엘렌은 전직 밀러주의자 설교자였던 청년 제임스 화잇과 결혼했다. 그 부부는 아들 넷, 헨리 니콜스, 제임스 에드슨, 윌리엄 클래런스, 존 허버트를 두었다. 슬프게도 막내가 1860년 생후 석 달이 되었을 때 사망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화잇 부부는 밀러주의자 설교가이자 퇴역 선장인 조셉 베이츠가 소개한 제칠일 안식일을 받아들였다.
사역의 시작
1848년, 하나님께서는 이상 중에 남편 제임스가 신문을 발행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그 일이 처음은 미약하지만 결국에는 세계를 에워싸는 빛줄기처럼 되리라는 말씀을 그녀는 들었다. 그분께서는 같은 해, 재림교인들이 담배와 차, 커피를 삼가면 더 건강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건강은 그녀의 사역에서 주요한 강조점이 되었다.
특히 1848년과 1849년에 엘렌과 남편은 이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근간이 되는 성경의 주요 교리들을 전하는 일에 조셉 베이츠 및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쳤다. 재림교회 교리들은 전부 성경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엘렌 화잇에게 이상을 보여 주셔서 진리를 좇는 그들을 지도하셨다. 그러나 재림교회 핵심 진리 중에 그녀의 이상에서 비롯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제임스 화잇이 시작한 <현대 진리>의 창간호가 1849년에 발간되었다. 2년 뒤 엘렌 화잇의 첫 번째 소책자가 출판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초기문집>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당시 23살이던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촉구하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제임스와 엘렌 화잇은 계속 여행했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안식일 준수자들은 소수였고 교회는 아직 조직되지 않았다. 그리고 엘렌의 이상에 대한 몇몇 비평으로 인해 갓 출발한 그 운동은 지속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제임스 화잇은 계속 신문을 발행하고 그 뒤로는 책자들을 출판했다. 처음에는 작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져 갔다. 그와 엘렌을 포함한 다른 이들도 설교와 글을 제공했다. 위기 속에서도 이 기간 동안 엘렌과 제임스는 13개 주를 여행하였는데 오늘날 캐나다 퀘벡 주 지역까지 갔다.1 또 처음에는 다른 인쇄소, 이후 안식일 준수자가 소유한 인쇄소에서 그녀가 저술한 26개 기사와 서신이 출간되었다.2 또 그녀는 전체 혹은 일부가 자신의 글로 이루어진 전단지 14개와 소책자, 서적들을 기술했다.
제임스와 엘렌은 약속된 설교를 전하는 여행 외에도 메인 주와 코네티컷 주의 여러 장소를 다녔고 뉴욕의 새러토가스프링스와 로체스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1855년에 그들은 미시간 주 배틀크릭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들의 집을 소유했다. 그들은 바쁘게 살았다.
하나님께 받은 이상들
1855년 배틀크릭에서 열린 한 총회에서 참석한 선구자들은, 엘렌 화잇의 이상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따라서 그것을 유의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공식 기록으로 남겼다. 1858년, 제임스와 오하이오를 여행하는 중에 엘렌은 이후 ‘대쟁투’라고 알려진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 지속적인 우주적인 전쟁을 보았다. 이후 같은 해에 그 이상은 <영적 선물(Spiritual Gifts)> 1권으로 첫 출판되었다.
1855년 배틀크릭에 신자들이 작은 출판사 건물을 세웠지만, 그들은 조직체도 이름도 없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설립되지 않았다. 1860년 후반기에 출판사를 법인 설립하기로 가결했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명칭이 채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상을 통해 17세의 소녀에게 자신이 본 것을 전하라고 지시하셨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1860년의 마지막 이상에서 그녀와 남편이 그들의 증언을 전해야 한다고 또다시 지시하셨다.3 주님의 메신저는 이후 평생 동안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주신 지시를 계속 전했다.
1. 코네티컷, 일리노이, 아이오와, 메인, 매사추세츠, 미시간, 뉴햄프셔, 뉴욕,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버몬트, 위스콘신, 캐나다 동쪽(퀘벡)
2. 서신 2개는 <데이스타>지에, 기사 또는 서신 6개는 <현대 진리>에, 3개는 <세컨드 애드벤트 리뷰 앤드 새버스 헤럴드-1851년 추가>에, 15개는 <세컨드 애드벤트 리뷰 앤드 새버스 헤럴드>에 실렸다.
3. <영적 선물> 2권, 299; <교회증언> 1권, 247, 248; Arthur L. White,
제임스 R. 닉스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소장이다.
발문
호소를 받아들인다면, 그녀가 말할 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글을 쓸 때 손을 굳게 잡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캡션
가족 사진 : 제임스와 엘렌 화잇이 아들 윌리엄과 1857년에 찍은 사진. 가족이 젊은 시절 찍은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여백
빛의 유산
1부 1827~1860
초기
2부 1860~1868
교회 발전기
3부 1868~1881
장막부흥회 성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