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리스도의 의
우리에게 주시는 그분의 선물
테드 N. C. 윌슨
우리가 지구 역사의 종막으로 급속히 다가가는 이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요,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예수께서 속히 오신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일에, 고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대기하 7장 14절의 “자신을 겸비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우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라.”는 하나님의 권면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겸비하라는 초청을 받으며 “우리가…살며 기동하며”(행 17:28) 존재하는 것은 단지 그분을 힘입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율법주의, 즉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고 권장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이처럼 허무맹랑한 말도 없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가장 큰 소리를 낼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기초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인 칭의 그리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하는 하나님의 행위인 성화는 분리될 수 없다. 이 둘이 합하여 우리의 의 되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닌 그분의 계획
때로 칭의와 성화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구원에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혼돈될 때가 있는 듯하다. 성화를 빼놓고 칭의만 강조하여 ‘싸구려 은혜’에 이르는 이들이 있다. 반면 성화에만 집착하여 ‘완전주의’나 행위로 말미암는 율법주의적 구원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의는 칭의와 성화 모두를 온전히 포함한다. 그것은 우리가 아닌 그분의 계획이다. 즉각적이고도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가운데 영원히 함께할 때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방식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고 바울은 선언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의를 선언하신다. 이 선물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선언된다. 자신의 삶을 겸손히 그리스도의 통제에 내맡기면 그분의 능력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 총제적인 변화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리스도의 의 덕분이다.
자기 본위의 율법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인 율법주의를 위한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위한 단도직입적인 호소이다. 성령에 이끌리면 우리는 삶 속에 예수를 영접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분처럼 바꾸시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우리는 그분과 같아진다. 주정뱅이가 정신을 차리고 방탕한 사람이 깨끗해지고 심술쟁이가 평화의 사도가 되고 이기적인 사람이 너그러운 자선가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불신자가 회심하는 것도 모두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무엇인지 성경은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우리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그분의 완전한 아들을 준비하셨다.
이것이 예수께서 선언하신 ‘거듭남’의 경험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거듭남
이 다시 태어남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온전히 새사람이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 죄를 고백하고 십자가 아래 무릎 꿇을 때 우리는 죄에서 정결하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된다(요일 1:9).
이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의, 즉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의이다. 우리는 바울과 함께 이처럼 선포할 수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와 그 의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분처럼 진리를 믿고 받아들인다. 성경은 그분의 아름다운 진리를 계시한다. 그분은 성경의 중심이다.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딛 3:5, 6)라고 이를 설명한다. 나아가 그는 이렇게 진술한다.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7, 8절).
선한 행위란 그리스도의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더욱더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성화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맺는 관계에 달려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리스도의 의
예언의 신 중에서도 특히 작고도 놀라운 책 <정로의 계단>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성경 진리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응할 만한 자신의 의는 조금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지금 우리 죄를 벗기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려 하신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신다. …그대는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그대의 마음을 항상 그에게 바침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동안에는 그는 그대가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희망의 유일한 근거는 우리에게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에 있고 또한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선행에만 있는 것이다”(62, 63쪽).
바울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평생의 과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은 아무도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룩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모두 죄인이며 자기 의를 제공하시는 구주가 필요하다.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치고 그분과 그 말씀에 가까이하기 위해 우리 안에 그분이 역사하시도록 할 때, 다음의 영적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나타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실물, 69).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품성이 우리의 삶에서 완벽하게 재현된다. 매일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더욱더 변화시키도록 해야만 한다. 이것은 평생의 과업이다. 그분의 능력을 통해 그분의 말씀에 실제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이 나타나길 간청해야만 한다.
율법주의적인 체크 리스트를 흔들어 대면서 ‘완전주의’로 표현되는 길을 향해서는 안 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이 다른 이보다 더 의롭다고 주장하며 교회에 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도 실제로 거룩하지 않다. 하늘에 거룩하다고 기록된 자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그들 자신의 선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선지자와 사도 누구도 거룩하다고 고백한 적이 없다. …그 의인은 결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닮아 갈수록 자신이 그분을 닮지 않았다고 슬퍼한다”(True Revival, 62).
그분의 은혜
그렇다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때에 우리는 구원의 계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싸구려 은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매일매일 더욱 그리스도를 닮도록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을 부인한다. 율법주의도 구원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구원의 유일한 길, 즉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게 한다. 고등 비평으로도 구원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회심과 성화라는 기적을 없애 버리고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제거해 버린다.
칭의와 성화를 모두 아우르는 그리스도의 포괄적인 의만이, 우리를 구원하고 변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양육시킨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안에서 행하신 것이다. 그분의 은혜를 통해, 우리가 더욱더 그분을 닮아 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품성을 지닐 수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세 천사 기별의 정수라는 것을 예언의 신에서 듣는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분의 의와 구원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배로 돌아서라고 촉구하는 일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절정은 그분께서 재림하시는 때, 그분을 기쁘게 맞이함으로 이루게 될 것이다. 그 사건은 그분께서 의롭게 하시는 구원과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통해 우리 삶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음을 세상에 입증할 것이다.
그날은 진정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될 것인가!
테드 N. C. 윌슨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대총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