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사람
면회실 책상 반대편에 앉은 19살 청년 하나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몸을 떨며 나를 쳐다보았다. “목사님, 제가 여기서 나갈 수 있도록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지내다가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한 재림 청년이 싸움에 휘말려 중죄를 범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던 것이다. 법정에서 검사는 그에게 강제 노동 수용소 생활 6개월 아니면 징역 1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법정에서 선고하는 육체적 수고쯤은 감당해 낼 수 있다고 자신하며 그는 ‘극기 훈련’을 택했고, 뒤늦게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딴 곳에 눈을 돌리기만 해도 6시간 동안 철도 침목을 짊어지고 다녀야 해요. 식사할 때도, 일할 때도, 어디를 가든지요. 침목을 내려놓으면 벌은 두 배로 늘어요.”
다른 때 같으면 나는 이 어린 친구를 꼭 안으며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수용소 바깥에서는 그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임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총을 들고 있는 경비들은 포옹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나는 할말을 신중히 골라서 전했다.
“네가 어떤 일을 했든지 하나님, 가족, 친구 그리고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이러한 장벽이나 장애물 때문에 그 사랑이 변하지는 않을 거야.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어. 네가 석방되는 날 우리는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게 함께 기도할 거야.”
35년간 사역하면서 이렇게 말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감자들이나 담장 밖에 있는 이들이나 똑같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모두 외로움, 슬픔, 죄책감, 좌절된 꿈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법 준수에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우리도 사실 우정, 용서, 회복 그리고 종종 포옹이 필요한 존재다.
2월 호 커버스토리를 읽으면서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재소자 한 사람을 떠올리며 기도하기 바란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떠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