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그 너머
이웃 사랑은 선행에 그치는 게 아니다
애나 바틀릿
코코아가 너무 뜨거워서 마실 수가 없었다. 컵을 손으로 쥐고 차가운 손가락을 그 열기에 녹였다. 사진 촬영 과제를 수행하느라 동급생 몇 명과 시내에 나간 때였다. 나는 커피숍 안에서 몸을 녹이면서 아직 밖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들을 기다렸다. 코코아를 들고 있는 동안 매서운 바람이 친구들의 모자를 흔들었고 친구들의 입김이 보였다. 몇 분 후 창가에 있는 나와 합류하면서 그들이 말했다.
“밖에 노숙자가 한 사람 있어. 추워서 온몸을 웅크리고 있더라고. 따뜻한 걸 좀 갖다 주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우리끼리는 좀 겁이 나서.”
“물론이지.”라고 나는 말했다.
코코아와 쿠키를 샀다. 냅킨 위에 적절한 성경절을 써 주려고 머리를 짜내다가 결국 포기한 뒤 음식을 들고 그에게로 향했다. 대부분은 뒤에 서 있었고 두 사람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 따뜻한 음료를 기쁘게 받았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따뜻한 침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선을 행한 것이다.
몇 달 뒤 나는 다시 시내로 가게 되었다. 그를 보기 전까지는 그 커피숍 옆에서 몹시 추웠던 그날 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윤기 없는 머리카락이며 칙칙한 옷차림, 있던 자리까지도 모두 같았다.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코코아를 건네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읽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도움 받은 사람의 삶이 바뀌고 선한 사마리아인도 뿌듯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때의 내 기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머지 이야기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이야기 하신 까닭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율법사가 물었기 때문이다(눅 10:25 참조).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에 대해 되물었다. 그는 신명기 6장 5절을 인용하여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네 대답이 옳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그것들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율법사가 구체적인 설명을 원하자 예수께서는 강도를 만나 두들겨 맞고 거의 죽게 되어 길 한편에 버려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른바 유대인 몇 명이 그를 보았지만 그냥 지나갔다. 그때 어느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곧바로 도움을 베풀었다(눅 10:30~33).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의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그 위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그는 대충 치료해 주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상자를 일으켜 자기 짐승 위에 태워 함께 떠났다. 여관에 도착해서도 그는 자신의 친구를 버리지 않았다. 돌아올 때까지 친구를 잘 돌보아 달라며 여관 주인에게 선금을 지불했다(35절).
다친 사람을 올바로 대한 사람이 누구냐고 예수께서 질문하셨다.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 (37절).
한번 그 이상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우리가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셨을 뿐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보여 주셨다.
이야기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율법사가 이미 깨닫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셨다.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관계 맺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비유대인인 사마리아인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다. 타인을 사랑하는 그들의 방식이 틀렸음을 백성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났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하지만 한 번 스치는 자선이 아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의 이웃에게 당장 필요한 것을 베푼 다음 그를 먼지 속에 내버려 두고 떠나지 않았다. 여행하는 동안 그 이웃을 데리고 다녔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먼 곳까지 내다보고 자선을 베풀었다. 이웃이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시간과 재원을 쏟았다. 그리고 여관으로 데려가 계속 보살폈다.
자신이 곁에 없어도 그가 죽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가 되었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은 이웃을 여관 주인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의 이웃을 그 주변 사람들의 간사함 속에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며 그를 돌봐 달라고 했다. 나중에 그가 괜찮은지, 적절히 치료받고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사탄에게 공격당한 피해자들이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몇몇 주인공처럼 우리는 종종 그들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 일련의 복음 전도 프로그램을 통해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된 사람들이 행사가 끝난 후 교회에 그다지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이유는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정에 도와줄 누군가가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아이’인 그들은 하나의 사소한 부정적인 경험만으로도 신앙을 포기할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군가를 단지 일으켜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그는 기꺼이 타인과 함께 길을 걷는다. 다친 사람을 보고만 있지 않고 즉각적인 필요를 채워 주고 구원의 길로 되돌려 놓는다.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그들을 돌본다. 그들을 다른 무리에 데려다주고 잘 치료받고 있는지 확인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사람이 일어서서 계속 여행할 수 있을 때까지 친구가 되고 곁에 있어 준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사람들을 예수께 인도한다.
따뜻한 초콜릿 그 이후
커피숍 밖에 있던 그 남자를 두 번째로 보고 돌아온 후 그를 도와줄 갖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당장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만 떠올랐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개인의 삶을 영구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선한 행동 그 이상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을 보살피고 내 삶과 구주에게로 이끌어야 한다.
다음 번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다. 외면하거나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도움을 베푸는 사람. 코코아 한 잔으로 끝나지 않고 여행길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
애나 바틀릿
2014년 <애드벤티스트 월드> 인턴 사원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군가를 단지 일으켜 세우는 것 그 이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