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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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860~1868 교회 발전기
3부 1868~1881 장막부흥회 성황기
4부 1881~1891 1880년대
하나님의 메신저
사역의 확장
엘렌 G. 화잇의 생애와 유산
애너 갤러니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공식적인 역사는 1860년에 교단 명칭을 채택하고 1861년에 소규모 출판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런 미약한 출범을 통해 재림 신자들은 자신을 하나의 조직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역 합회를 만들어 연합하였고, 미시간 연합회가 1891년 10월에 조직되었다.
이때까지 엘렌 화잇의 메시지는, 신자들이 하나님과 성경 진리에 충성하는 일을 지지하고 출판 사업을 유지하며 교회 조직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데 주로 향해 있었다. 이제 재림 신자들이 교회의 선교를 확장하도록 비전이 확대될 때가 되었다. 마침내 1863년 5월, 총 일곱 합회 중 여섯 합회1에서 참석한 대표자 20명은 교단 전체를 이끌어 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건강 기별의 강조
1865년 6월 5일(금요일 일몰 후의 일이므로 6월 6일로 소개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대총회 제1회기가 시작된 지 2주 후였다. 교회의 주요 교리가 정리된 지 얼마 안 된 때에 화잇 부부는 미시간 주 오체고에 있는 힐리어드 가정을 방문 중이었다. 엘렌은 거기서 약 45분간 계속된 이상을 보았다. 그녀는 포괄적인 건강 메시지2를 받았고 하나님은 그것을 신자들에게 전달하길 원하셨다. 이것이 건강 생활에 관한 그녀의 첫 번째 이상은 아니었다. 1848년,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담배, 차, 커피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3 그 뒤 1854년에는 성도의 집은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욕망은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4 힐리어드 가정에서 받은 포괄적인 이상에는 건강한 몸과 건전한 환경이 주는 유익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넘어 건강과 영성 간의 밀접한 관계도 제시되었다. 이 기별에는 사회적, 선교적인 암시가 담겨 있으므로 엘렌 화잇은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이 일깨워져야 한다”5고 했다.
그런 주요한 업적과 더불어, 1863년 말에는 화잇 가족의 앨범에서 한 페이지가 떨어져 나갔다. 큰아들 헨리 니콜스가 폐렴을 앓다가 12월 8일, 메인 주 탑스햄에서 사망한 것이다. “사랑스럽게 노래 부르던”6 16세 아들을 잃고 그의 부모 특히 엘렌이 받은 타격은 엄청났다. 얼마 뒤에 배우게 된 간단한 가정 요법만 미리 알았어도 막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사망한 지 두 달이 지나서, 셋째 아들 윌리가 같은 질병에 걸렸다. 이때 어머니 엘렌은 간절히 기도하면서 수치료를 시행하였고 아이는 병을 이겨 내고 회복되었다. 그러나 대쟁투 사이에 일어나는 질병, 고통, 사망은 하나님의 메신저 가정을 여러 차례 들이닥쳤다. 화잇의 넷째 아들 존 허버트는 앞서 1860년, 생후 3개월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배움
1864년에는 엘렌 화잇의 사역에서 최소한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첫째, 그녀는 <영적 선물(Spiritual Gifts)> 제4권을 출간했다. 부제는 ‘믿음에 관한 중요한 사실들 : 건강 법칙과 과 증언 1~10’이었다. 그 책에서는 32쪽 분량으로 한 장을 할애하여, 1863년 6월 5일에 계시된 포괄적인 건강 기별을 다루었다. 동시에 그녀는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호소(Appeal to Mothers)>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1864년 9월 초, 뉴욕 댄스빌에 있는 제이스 C. 잭슨의 의료원, ‘언덕 위 우리 집’을 방문한 일 역시 출판물 간행 이후에 또 다른 주요 사건이었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으로 이동하다가 화잇 부부는 이 의료 기관에 들렀고 천연 치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엘렌은 건강 개혁에 대한 잭슨의 방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받은 건강 이상 덕분에 그녀의 이해가 더 앞서 있었다. 화잇은 계속해서 건강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썼고 1865년에는 <건강 : 어떻게 살 것인가(Health: or How to Live)>라는 여섯 가지 소책자를 출간했다. 건강, 영양, 생활 방식 등에 대해 언급하며 엘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신실히 준수하라고 호소하였다.
빡빡한 여행, 설교, 저술, 출판 사역, 지도자 역할, 기타 업무에다 갖가지 가정사와 가난까지 겹쳐 제임스 화잇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1865년 8월 16일, 그는 탈진하여 쓰러졌고 마비 증세가 일어났다. 그 뒤에도 뇌졸중이 연속적으로 발생했고 이것은 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쳤다. 선지자, 저술가, 설교가, 상담가, 어머니로서의 부담에 더하여 엘렌은 아픈 남편까지 간호해야 했다.
1865년 12월, 화잇 가족은 뉴욕 주 로체스터로 여행할 기회를 얻었고 친구들의 집에 머물렀다. 악화되는 제임스의 건강을 위해 크리스마스 날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였다. 그때 엘렌은 이상을 보았고 남편의 회복을 어떻게 도울지 가르침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건강 원칙을 환자에게 실행하고 알려 줄 수 있는 건강 기관 설립하라고 지침을 받은 것이다. 건강 개혁과 신앙이 통합된 그 이상(계 14:12)으로 교회는 폭넓은 선교와 재림 준비의 발판을 마련했다.7
여섯 달 후, 1866년 5월의 대총회 기간 동안에, 엘렌 화잇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건강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권면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몇 달 뒤 정기 간행물 <건강 개혁자(Health Refromer)>가 창간되었고 배틀크릭 요양원의 선두 격인 ‘서부 건강 개혁원’이 설립되었다.
순종하는 종들
하나님의 손에 들린 신실한 도구가 되는 일은, 유익한 것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주께서 모든 방면에서 계시해 주신 뜻을 순종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엘렌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추운 겨울 날씨에도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임스의 회복을 돕고자 미시간 북부로 가는 순회 설교에 제임스를 동행시켰다. 그 결과 1866년이 지날 무렵 제임스가 부분적으로 회복되었고 그들의 사역은 확장됐다. 한동안 화잇 내외는 농사와 저술에 종사했다. 그러나 1867년, 20주에 걸쳐 여행을 하며 이들 내외는 140회 집회를 이끌었다. 덕분에 “엘렌은 수줍어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8 청중이 많든 적든 그녀는 동일하게 기별을 전했다.
일례로 1867년 9월, 엘렌은 일리노이-위스콘신 합회의 집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그런 다음 아이오와에서 유사한 집회를 이끌었다. 두 집회의 성공에 힘입어 대총회는 1868년 9월, 미시간 주에서 최초의 공식 장막부흥회를 후원했고 그곳에서 엘렌은 약 2,000명에게 말씀을 전했다.9
무언가를 지시하기 위해 사람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무장시키고 힘과 용기와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의 메신저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사명과 메시지를 전할 때에도 그와 같은 일이 그의 삶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1 아이오와·미시간·미네소타·뉴욕·오하이오·위스콘신합회이다. 버몬트합회는 대표자를 보내지 않았다.
2 Ellen G. White manuscript 1, 1863; Ellen G. White,
3 <가려 뽑은 기별> 3권, 273
4 Ellen G. White,
5 위의 책 5권, 105, 106
6 <교회증언> 1권, 103
7 위의 책, 485~494
8 Arthur L. White,
9 Gary Land, ‘Camp Meetings’,
애너 갤러니스
케냐 나이로비 재림교회 대학 내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지부 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