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기 있었지요
십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
섄털 J. 클링바일
“예수를 섬기며 갈리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 27:55, 56).
당신들은 왜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나요? 연루되는 것이 두려웠나요? 아니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나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알 것 같아요. 저는 재림교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한동안 예수님을 따랐지만 거리를 둔 적도 종종 있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위험합니다. 물론 저는 십자가의 협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에서 툭하면 자동항법장치를 켜 놓고 다녀요. 그러면 그분과 어느새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하지요.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57~60절).
이야기 속에 갑자기 당신이 나타납니다. 예상치 못한 당신의 등장으로 어두운 순간에 큰 희망이 생기네요.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낸 제자들은 두려움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림자 밖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 용감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은 그분을 선택하는군요. 그리고 그분에게 뭔가를 제공합니다. 새로운 무덤을요! 예수님을 선택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멀어진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분을 선택했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을 때는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분을 따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드리기 위해 따르는 것일까요?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62, 63절).
당신들은 기억하고 있군요. 희한하게도 제자들은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네요. 이 순간을 위해 예수님이 한동안 제자들을 준비시키셨는데도 말이죠. 당신들은 정답을 잘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딱딱한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진리를 지켰다고 생각했겠지만 당신들이 방금 죽인 사람은 하나님입니다.
섬뜩한 일이네요. …저도 제법 알고 있어요.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성경으로 증명할 수 있고 성소와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지요. 그러나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예수님과 그런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다면 긴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대적으로 살았다는 사실을요.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사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65, 66절).
이봐요. 빌라도! 무덤을 봉인하고 파수꾼을 세우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은 지금 누구와 상대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군요. 그분은 그냥 유대인의 왕이 아닙니다. 그분은 입김으로 별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온 은하계를 만드셨다고요.
다시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게 빌라도를 비난할 처지가 못 됩니다. 빌라도보다 역사에 관해 더 많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더 분명히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아주 작은 존재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할 때도 그분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고 주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 그분을 내 멋대로 조종하고 지시하려는 일을 이제 멈춰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창조주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최선을 다 하시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지요.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마 28:5).
당신들은 두려웠던 것이죠.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룩함 앞에서 인간은 떨기 마련입니다. 거룩함에 매료되어 다가갔다가 한낱 인간이 그 앞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깨닫고 도망쳐 버리는 역설이 존재하지요. 그 싸움이 매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실 속의 나와 이상 속의 내가 싸우고 있어요.
무덤 앞에 있는 여인들이여,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없이는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6~20절).
당신들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의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천국의 장면이 눈앞에 지나간다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거나 천사를 만난다면,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제자인 당신들이 의심하는 모습을 보니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믿음은 종착지가 아니라 긴 여정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진하기로 선택할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의심한 사람을 포함하여 제자 여러분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분의 권세를 힘입어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교회가 맘에 드는 전도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행사에 떠밀리거나 지켜만 보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멀리 서서 쳐다만 보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분이 항상 나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알려야 합니다.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예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어떻게 저의 삶을 바꾸셨는지 보세요. 와서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나 보세요.”
섄털 J. 클링바일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부소장이다. 제럴드와 결혼했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십 대 딸 셋을 두고 있다.
발문
예수님께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순간에 당신은 그분을 선택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