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예수는 중심을 강조하신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서
제럴드 A. 클링바일
“말도 못 하게 복잡하다오.” 로마 시대 팔레스타인 농부에게 정치와 종교에 대해 묻는다면 필경 한숨 섞인 그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서기 1세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의 생활고는 물론이거니와 로마의 억압, 권력을 탐하는 지방 관리, 여차하면 반란을 일으킬 태세인 민족주의자 집단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 종교까지. 당시 종교의 역할은 대단했다. 연관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옷 입는 방식부터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을 것인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심지어 밭에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지까지 다 관여했다.
“때가 차서”(갈 4:4) 예수님이 태어났을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팔레스타인에서는 ‘말도 못 하게 복잡하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들렸다. 예수와 서기관 및 바리새인 그리고 사두개인 사이의 상호 관계 역시 한마디로 표현해서 ‘말도 못 하게 복잡했다.’ 이것은 21세기의 모든 사람에게도 매우 친숙한 표현 아닐까? 세속화된 유럽이 되었든 브라질의 빈민촌, 정치의 도시 워싱턴, 분쟁으로 찢긴 시리아나 이라크가 되었든, 이 세상은 어디나 종교•정치•경제적 신념에 따라 사분오열되어 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 21절에서 기도한 것처럼 온전히 헌신하는 상호 작용과 통합 대신 끊임없는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예배 후 점심 식자 자리에서 ‘여성 안수’, ‘영적 성장’, ‘창조와 진화와 창세기 1장’과 같은 뜨거운 쟁점을 화두로 던진다면 격한 토론이 벌어지고 종종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이상한 사람 취급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분열된 상황에서 예수는 어떻게 생활하셨는가? 종교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시키셨는가? 로마나 지중해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이신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거하시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원칙에 충실할 수 있었는가?
예수님과 갈등
예수님에게 갈등은 병가지상사였다. 그분께서 갈등을 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갑자기 유명해진 나사렛 출신 예수를 반대했다. 반면 호기심으로 논쟁을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은 주로 예루살렘의 지도층이었다. 요한은 이들을 ‘유대인’이라 불렀다(요 1:19; 2:18; 5:16~18; 6:41). 이들은 또 서기관, 장로, 관원(마 9:3; 16:21; 막 3:22; 눅 23:35)이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더 정확하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다(마 3:7; 9:11; 16:1, 12; 막 12:18).
예수님의 측근 사이에도 갈등은 존재했다. 종종 그분은 제자들을 질책하시기도 했다. 제자들은 자신들 세상, 주님의 사명, 익숙한 전통, (타락한) 인간 본성 등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크냐고 여러 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막 9:34; 눅 22:24).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갈등의 한가운데서 그분의 공공연한 적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을 기꺼이 상대하셨다. 이를 테면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관원인 니고데모와 밤중에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요 3:1). 또 다른 바리새인인 시몬에게도 식사 초대를 받아 집을 찾아가셨다(눅 7:36~50).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관원, 율법학자들은 항상 예수님 주위에 서성거리는 듯했다. 그분의 논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자신들의 신념을 거칠게 주장하고 격렬하게 반대하다가 결국 설복당하지 않는 그분을 침묵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때때로 예수께서는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매우 창의적이고 놀라운 방법으로 대응하셨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서로 모의하여 예수님에게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라고 질문을 던졌다(마 22:15~28). 그분을 곤경에 빠뜨렸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 놀라 그들은 좌절감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를 떠나야 했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큰 고민에 빠졌다. 당시 신학적 영역의 어느 부분에서건 그분은 막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함정 질문을 던진 사두개인들은 예수의 대답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23, 33절 참고). 또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바리새인에게 교묘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을 때도 예수님은 노련하게 대답하셨다. 표적을 보여 달라는 믿음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한사코 대답을 거절하셨다1(마 12:38~45; 16:1~4). 어떤 경우에는 그들을 직접 논쟁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마 22:41~46).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와 예수님 사이의 가장 두드러진 공방이 마태복음에 나온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일곱 가지 화를 나열하시며 그들의 영적 자만심과 눈먼 상태을 애통해하신다(마 23장).
히브리 문화에서 화는 애통과 임박한 죽음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어조를 생각하지 않고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읽는다면, 예수님이 몹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사명은 복수, 분노, 짜증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분의 질책에는 동정심과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예수께서 성전과 청중들에게 미련이 있는 듯한 시선을 던지실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얼굴에는 거룩한 동정의 표가 나타났다. 마음의 깊은 고민과 쓰라린 눈물 때문에 목 멘 음성으로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부르짖으셨다. …그리스도의 애통에서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흘러나왔다”(소망, 620).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으라
예수님의 상호 작용은 ‘정치적 올바름’이나 전략적 기회를 노린 것이 아니다.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조지 매시선 목사가 작사한 가사처럼 “주 사랑 나를 붙드니”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거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그분께 끌렸던 것이다. 참으로 예수는 다른 분이셨다. 그분은 다르게 말씀하셨다. 그분의 신학은 이해하기 쉬웠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세상의 소금과 같았다. 그분은 겸손의 모범이었다. 그분께서는 불굴의 의지로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애쓰셨다.
“잠깐만. 지금 예수님의 생애에서 충돌, 그것도 종종 눈에 띄는 충돌의 순간을 죽 늘어놓고 나서 예수님은 충돌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는 삶에서 결국 자기 세계에 도달하셨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정말 그렇다.
예수님은 충돌, 특히 신학적 충돌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지만 싸워야 할 때를 잘 가리셨다. ‘진보’, ‘보수’, ‘극보수’, ‘주류’, ‘무관심’ 등 그분은 일정한 틀에 사람을 가두는 어떤 축에도 끼지 않으셨다. 바리새인이든, 사두개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교육받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예수께서는 신학적 성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보셨다. 그러면서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과 진리에서는 결코 흔들림이 없으셨다.
작년 여름 내내 나는 사복음서를 다시 읽었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는데 사무실에서 바쁘게 편집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말씀 읽는 데 쏟았다. 그러다가 예수께서는 당대의 신학자, 지도자들과 어떻게 접촉하셨는지가 궁금해졌다. 사복음서에서 6가지 중요한 원칙이 눈에 들어왔다.
1. 예수님은 절대 어느 한편에 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성경을 치켜들었다. 바리새인이 토라와 의식적 정결 그리고 박하와 근채에 대한 잡다한 규정에(마 23:23) 신경 쓰고 있었다면 사두개인은 성경을 무시하는 또 다른 신학적 극단에 섰다. 그들은 성경의 영감성을 의심했다. 헬레니즘 사고방식에 물든 사두개인은, 문자에 치중하는 바리새인을 원시적이라고 혐오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라는 말로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셨다(막 12:24). 예수님은 끊임없이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설명하셨다.
2. 예수님은 자기 사명, 곧 하나님의 사명에 집중했다. 절대 권력 경쟁이나 신학적 논쟁 때문에 곁길로 새지 않았다. 그분은 시몬의 장모를 비롯하여 병자를 많이 고치신 후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막 1:29~39). 전날 목격한 일에 대해 제자들은 여전히 경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버나움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힐 수 있는 기회였다. 모두가 예수님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다른 곳으로 가셨다. 그의 사명은 갈릴리보다 더 컸다. 그분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선교에 사로잡힌 마음은 신학적 타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3.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만났다. 대적들도 만났다. 그분의 행동에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태복음 19장 16~24절도 좋은 예이다. 한 관원이 예수께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독자들은 두 사람 간의 대화를 알고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인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을 특히 강조하신다. 관원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시고 단지 그의 약점을 바로잡아 주신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재물이 많았던 관원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예수께서 그를 돌려보내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슬프지만 사랑의 눈길로 그를 쳐다보셨을 것이다.
4. 예수께서는 예언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정해진 시간에 오셨고 정해진 시간에 봉사하시다가 정해진 시간에 돌아가셨다(단 9:24~27 참조). 예수께서는 설교 중에 옛 선지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셨다. 요한이 투옥된 후 그분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활동하셨다. 마태복음 4장 14절에서는 그분께서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이루려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바깥 두로와 시돈 지역의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실 때는 귀신 들린 딸을 고쳐 달라며 한 여자가 따라왔다. 자신의 사명은 우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마 15:24)을 위한 것임을 그분은 알고 계셨다. 사역의 매 순간이 예언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5. 예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기사와 표적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은 어딘가 다른 분이라고 청중은 느꼈다. 그 놀라운 사실을 마태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이 아니함일러라”(마 7:28, 29). 예수님은 새롭고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하셨을 뿐 아니라, 상대가 결코 발휘할 수 없는 권위로 말씀하셨다. 바리새인은 구전 율법의 전문가였고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두개인은 헬레니즘 문화를 흡수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예수님은 관직이나 임명에 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권위로 말씀하였다.
6. 결국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권세를 드러내셨다. 대화를 넘어 행동으로 먼저 보여 주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셨고, 사람들은 이에 “다 놀랐다”(마 12:23; 막 1:27).
빈껍데기 말이 아니라 치료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갈망하는 이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셨다. 그들이 찾는 하나님은 함께하시는 하나님, 피조물을 매만지고 끌어안는 하나님, 그들과 함께 먼지 나고 지저분한 세상길을 함께 걷는 하나님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진짜를 찾고 있다.
말도 못 하게 복잡해요
올해 샌안토니오 대총회에서 복잡한 교회 문제들 다루면서 주님의 모본을 따를 수 있을까? 혈통과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모두 상대하신 주님의 방법을 엿볼 수 있을까? 그분은 계시된 말씀 전체에 집중하고 성경에 기초한 해석 원칙을 인식하셨다. 그분은 각 사람과 대화를 계속하신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흘려듣는다.
그분은 자신의 사명 곧 우리의 사명에 집중하시고 예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계셨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사명이 하나님의 권위에 기초하며 하나님의 권능이 따르는지 자문해 보라.
분명 그것은 말도 못 하게 복잡하다. 이미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함께 나아가며 그곳을 찾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 거하신다.
제럴드 A. 클링바일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부편집인이다. 얼마 동안은 바리새인으로, 또 얼마 동안은 사두개인으로 살았던 제럴드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그 중심을 찾고 기뻐하고 있다.
1 예수는 “요나의 표적”을 약속하셨다(눅 11:29, 마 12:39; 16:4).
발문
예수님에게 갈등은 병가지상사였다.
커버 사이드바
서기 1세기 팔레스타인의 종교 집단
서기 1세기 팔레스타인에는 자랑할 만한 다양한 종교 단체와 종파가 있었다. 몇 가지는 성경을 통해 알려져 있으나 성서에서 언급되지 않은 나머지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유대 사상가 필로, 로마 저술가들, 후기 랍비 문서와 등 성서 외 자료를 통해 알려졌다. 모두 팔레스타인에서의 삶이 실제로 매우 복잡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바리새파 : 사제가 아닌 평신도가 대부분인 그들은 구전되거나 기록된 율법을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의식적 정결과 십일조를 중요하게 여겼고 부활과 심판을 믿으면서 구전 율법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당시 모든 유대인 그룹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심이 많았으며 메시아를 향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사두개파 : 대개 부유한 지도층으로 구성된 소수 그룹이며 주로 엘리트 제사장 계층과 어울렸다. 그리스어를 말하고 그리스 철학을 사용하는 등 그리스 문화를 두드러지게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민족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심판, 형벌, 상급이 포함된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구전되는 전통도 반대했다.
에세네파 : 신약에서는 이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1947년 사해 사본이 발견된 키르벳 쿰란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이 에세네파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들은 3년간의 입회 과정, 재산 공유, 독신(가능하면), 의식적 정결, 공동체 활동 엄격한 규율을 준수했고 성경에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헤롯당 : 헤롯 왕조와 연합한 무리로 정치적으로 매우 활동적이었으며 신학적으로는 사두개파와 대동소이했다.
열심당 : 서기 67, 68년에 공식 조직된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닌 반로마 정서 그리고 로마와 유대 귀족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적 기대감은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존재했다. 이들의 행동은 신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지만 정작 신학보다는 정치와 군사 행동에 더욱 초점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