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다가올 때
극심한 시험에서 배우는 교훈
마리아 롬바르트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허락하신다. 그분이 우리의 고통을 즐기시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의 불꽃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은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얻는 교훈
나는 아픔을 겪으면서 하늘 아버지와 더 가까워졌다. 그분께 달려갈 수도 없고 그분의 팔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도 몸으로 느낄 수 없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눈물로, 입속에 맴도는 말로, 심지어 화를 내며 던지는 질문을 통해서 그분께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고 그분은 나에게 안전한 거처가 되신다는 사실을(시 62:8). 내가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은 하늘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 내가 슬픔과 고통, 고민의 경험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경험을 활용하셔서 내가 그분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도 깨달았다.
늘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일단 고난을 견디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바라던 결과를 항상 얻지는 못한다. 이것은 때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꼭 배워야 할 교훈이다. 나는 시험을 겪고 나면 보상을 바라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이 끝나면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재를 참아 내고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생각처럼 되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늘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분의 계획과 맞을 때도 있고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훨씬 더 아름다운 선물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잠시 동안 응답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상의 선물을 주실 것을 믿으면서 전진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겠다는 빈약한 노력을 토대로 성급하게 스스로의 운명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공감하는 기술
나는 고통을 만나면 그것이 수그러들 때까지 본능적으로 제쳐 놓는다. 그러나 고통으로부터 숨는 대신에 나는 고통을 뚫고 나가고, 붙들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고통과 고난을 경험하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마음이 열린다. 아이를 잃은 엄마,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 50년을 함께한 동반자를 잃은 할머니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의 죽음뿐 아니라 애완동물, 문화, 정체성, 직업, 꿈, 가정, 사랑의 상실에서 고통을 느낄 수도 있다. 각기 다른 상실에서 얻는 고통은 저마다 독특하다. 따라서 상실을 경험한 누군가를 우리가 마음으로 동정할 수 있지만, 그들이 경험한 정도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한 감정적으로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알고 지내는 어느 어머니가 얼마 전 딸을 잃었다. 나는 그녀를 껴안고 애석한 마음으로 위로의 말을 전해 주었다. 나도 역시 죽음으로 여러 사람을 잃었다. 그중 몇몇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엄마가 딸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이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전화기를 붙잡고 문득 더 이상 딸과 연락할 수 없음을 확인할 때마다 느낄 아픔을 나는 터럭만큼도 느낄 수 없다. 자기 아이를 잃어 본 사람만 그 엄마의 고통을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다.
고통은 선물?
고통 그 자체가 선물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절망 중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고난을 통해 얻은 우리의 이해력을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 고통을 선물로 바꾸신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고난의 경험을 통해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을 위해 준비된다. 모든 사람은 삶 가운데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고통 중에 이해와 위로를 갈구하고 있다. 성급히 판단하려는 나의 성향이 고통을 통해 동정과 염려로 바뀌는 것을 나는 배우는 중이다.
고통의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기쁨, 평화, 능력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개인적 경험을 돌이켜 보건대 시련을 당한 뒤에는 더 강한 사람이 된다. 눈에 띄는 성장은 아닐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위로할 수 있게 되면서 내 마음은 아주 조금씩 더 강해졌다. 그 경험들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고통으로 엉망이 되든지 능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붙들든지 할 수 있다. 선택은 자기 몫이다.
고난을 짊어진 예수
예수는 십자가로 가실 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전부 겪으셨다. 신체적인 고통 역시 크나큰 것이었지만 그 고통은 인간도 경험해 왔다. 정말로 그분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통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한 분, 하늘 아버지에게서 완전한 분리될 때 몰려오는 고통이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창세 이전에 제정하신 법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그의 임재, 빛의 광선을 거두셔야 했다(소망, 693). 그러나 찬양하라. 예수님은 죄를 이기고 승리자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슬픔에 공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우리의 고통을 경험하셨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의 본성과 맞지 않는 경험이다. 우리는 기쁨과 평화와 완전을 위해 창조되었다. 우리는 하나님 그리고 동료 인간과 서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도록 창조되었다. 고통은 그러한 아름다운 경험을 앗아 가고 대신 파괴와 바꾸어 놓았다. 그의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가 겪어야 할 상처를 미리 보신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주셔서 언젠가 고통이 영원히 뿌리 뽑힐 때를 고대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계 21:4). 그리고 그분이 그 눈물을 씻기실 때 고통의 기억도 함께 씻으시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바꾸셔서 우리는 더 이상 고통의 경험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리아 롬바르트
서아프리카, 이집트, 레바논의 선교지에서 성장하였다. 지금은 북아메리카의 선교지에서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