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교회 개척
전 세계 신자 수 1천 800만에 육박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52년 교단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평균 3.58시간에 하나 꼴로 새로운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작년에는 총 2,446개 교회가 설립되어 1년 단위 신자 증가로는 최고를 기록했고 그 결과 전 세계 재림 신자 수는 1,850만 명에 가까워졌다.
게리 크라우스 대총회 세계선교부장은 이러한 놀라운 성장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모든 재림교인들이 담대하게 재림을 선포하는 사역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세계선교부의 선교사들은 교회 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놀라운 수치들을 보면 우리 재림교회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더 정진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크라우스 목사는 말했다.
2014년에 설립된 교회 수 2,446은 2013년보다 381곳이 증가한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교회가 개척되었던 2002년의 기록(2,416교회)을 경신하는 것이라고 데이비드 트림 대총회 통계사무소장이 말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연속으로 해마다 교회가 2,000곳 이상 새로 생겼고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총 7만 8,810개 교회가 문을 열었다. 앞서 10년 동안에 새로 세운 교회는 5만 7,850곳이다.
트림 목사는 전체 교인 수 증가의 이유를 연구할 때 교회 개척이 모든 면에서 중요함에도 자주 간과돼 왔다고 밝혔다.
통계사무소에서 최근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동안 116만 7,796명이 입교했고, 이 수치는 2013년의 109만 1,222명과 2011년의 113만 9,000명을 능가하는 수치이다.
– 앤드루 맥체스니, <애드벤티스트 월드>
호프채널, 프랑스어 방송을 준비하다
재림교회가 인터-아메리카지회의 3개 위성방송 개국 계획의 일환으로 24시간 프랑스어 방송을 시작하게 된다. 호프채널의 24시간 방송국 개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규 채널인 호프채널 프랑스, 호프 채널 아메리카, 호프채널 카리브는 올해 말에 방송을 시작할 계획이다. 3개 채널은 인터-아메리카지회가 속한 지역의 주 언어인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로 방송된다.
호프채널 프랑스는 인터-아메리카지회뿐 아니라 다른 프랑스어 권역인 인터-유럽지회, 캐나다의 프랑스어 사용 교회, 프랑스령 가이아나-앤틸리스연합회 지역에서도 방송될 예정이다.
– 리브나 스티븐스, IAD
토고에서 수감자 30명에 침례식
토고 교도소 내부의 교회에서 수감자 30명이 침례를 받았다. 이 교회는 기존 예배당이 태풍으로 쓰러진 후, 교도소 측의 공식 요청으로 재림교회가 재건축됐다.
토고의 수도 로메의 중앙 교도소에 위치한 이 교회 건축에는 공사 비용 1만 3,000달러가 지출됐고 자금의 절반을 대총회가 지원했다.
현재 로메 중앙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림 신자 브루노 아마 형제가 교도소 안에서 전도회를 개최하여 30명이 침례를 받게 됐다고 동부 사헬연합회 총무부장 콰시 셀롬 세소우 목사가 전했다.
– 앤드루 맥체스니, <애드벤티스트 월드>
중동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된 17가정
재림교회의 선교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동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남미 지역의 17가정이 중동 지역에 파견됐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 가족들은 광활한 사막과 눈 덮인 산이 공존하는 중동에 안전하게 적응하기 위해 레바논에서 3주간 사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친 17가정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파송되어 5년간 선교 활동에 참여한다.
이번 선교 사업은 남아메리카지회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정찬민, MENA
눈물과 포옹 속에 진행된
니카라과 대규모 침례식
첫 대형 전도회에서 2,000여 명 침례
앤드루 맥체스니, <애드벤티스트 월드> 뉴스 편집인
재림교회가 진행한 니카라과 최초의 대형 전도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전도회 마지막 날에 열린 침례식에는 수천 명이 참석하여, 서로 얼싸안으며 감동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목회자 수십 명이 잔잔하게 물결치는 3월의 니카라과 호수에서 1,884명에게 침례를 주었다. 호수 침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다른 200명은 지역 교회에서 침례를 받았고, 작년 10월부터 3월까지 침례 받은 수는 1만 2,000명이 되었다.
“이 침례식으로 우리나라가 복 받기를 바랍니다.”라고 호수 근처 그라나다 시의 시장이 축사했다.
시장과 나란히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테드 N. C. 윌슨 대총회장은 이날의 침례식이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감동적인 침례식에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이날 호숫가에서 수십 쌍의 결혼식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니카라과인은 관습법에 의해 공식적인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의 침례에 앞서 변호사들이 특별히 시간을 할애하여 공식적인 결혼식을 성사시켰다. 니카라과에서는 목회자의 주례로 이루어진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날 침례자 중 한 자매는 아들인 재림교회 목회자에게 침례를 받게 되었다. 이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도록 15년 동안 기도해 왔다. 50대의 이 어머니는 호숫가에서 열린 침례식에 참석하여 갑작스럽게 침례 받기로 결심했고, 이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기 위해 급히 아들을 찾았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고 어머니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이번 침례식으로 1년에 걸친 선교 사업이 결실을 보았다. 초반에는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에서 5,000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건강 기별을 공부했고, 그 후에 성경을 공부했다. 소그룹 활동 후에 개최된 전도회에 소그룹 참가자들을 초대했다. 강사로 초대된 마크 핀리 목사는 니카라과 수도 마나구아에서 매일 저녁 3,000명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4일간 집회를 이끌며 1년간의 선교 사업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2014년 12월 현재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의 재림교인 수는 20만 3,698명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대규모 침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올 1월과 3월 중순 사이, 엘살바도르에서 1,500명, 파나마에서 2,530명이 침례를 받았다.
니카라과 집회에서 말씀을 전한 마크 핀리 목사는 니카라과 각 지역의 제직과 신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전도에 동참했고, 영혼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구도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보고했다.
“지난 금요일 밤에 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자 많은 분들이 걸어서 집회 장소에 왔습니다. 장로님 중 한 분은 자비로 택시 6대를 빌려서 구도자들을 전도회 현장까지 데려왔습니다. 어떤 분은 침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밤새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간 동안 이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자신들의 가족, 친구, 이웃, 동료를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시간과 재정을 기쁘게 바쳤습니다.”
아내를 위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교회 지도자
– 앤드루 맥체스니, <애드벤티스트 월드>
대총회 부회장을 역임한 프랜시스 워닉 목사는 일평생 전 세계에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했다.
최근 중병을 앓고 있는 워닉 목사는 72년간 동행한 아내 메리 수 사모가 재림의 소망 가운데 남편의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워닉 목사의 장녀 브렌다 플레머(64세)는 노령에 의한 폐 질환을 앓고 있는 95세의 워닉 목사가 이미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전했다.
워닉 목사 자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대학에서 만나 72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해 왔고 2015년 2월 3일에 95세 생일을 맞은 동갑내기 친구이자 동반자인 아내가 잠시 동안의 이별을 아픔 없이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어요. 아버지는 이제 곧 잠들어서 쉬기를 원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어머니에게 하실 때 아버지는 항상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시기 때문에 두 분이 잠시 이별하는 것이고, 곧 다시 하늘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 위로하십니다. 저희 어머니는 평생 들어온 이 말씀으로 다시 위로를 받고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하지만 아무리 잠시 잠깐이라도 72년간 함께했던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지는 것이 쉽지는 않으신 것 같아요.” 아들 로버트 워닉(57세)이 말했다.
아이오와 주 레이크시티 태생의 모태교인인 프랜시스 워닉 목사는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 위치한 유니언 대학 도서관에서 아내 메리 수를 처음 만났다. 졸업반이었던 두 사람은 몇 달 뒤 약혼했고 1942년 5월 24일 졸업식 당일 저녁에 결혼식을 올렸다.
유니언 대학 교회에서 열렸던 결혼식은 소박했지만 아름다웠다. 장식은 모두 집에서 만든 것이었다. 주례자는 1966~1975년에 캘리포니아 국회의원으로 일하다가 58세 때 비행기 사고로 잠든 제리 페티스 목사였다.
과일 궤짝 하나로 시작한 신혼
결혼식 이틀 후에 신혼부부는 워닉 목사의 부임지인 북부 다코타 주로 향했다.
“두 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하지만 두 분 모두 하나님께서 맞는 사람을 찾아 주실 것을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했던 것 같아요.”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32년간 일하고 은퇴한 아들 로버트 워닉이 말했다. 로버트는 남부 재림대학 근처의 테네시 주 울테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부모를 돌보고 있다.
신혼부부는 자신들의 차에 짐을 싣고 북부 다코타 주로 출발했다. 새로운 집에서 사과 상자를 가구 대신 사용하면서 신혼 생활과 목회를 시작했다. 몇 주 후에 새로운 집에 의자, 테이블, 침대 등의 가구가 마련되었지만, 북부 다코타 주에서 목회하는 4년 동안 셋집에 살았고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집을 마련했다.
“제 생각에 두 분의 가치관이 현재의 가치관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서로와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우선시하셨고 또 그렇게 사셨던 것 같습니다. 두 분에게는 세상의 낙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라고 로버트 워닉이 말했다.
북부 다코타 주를 거쳐 워닉 목사는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 주에서 목회했고, 1958년에 동펜실베이니아합회장이 되었다.
워닉 목사는 오하이오와 오리건에서도 합회장직을 역임했고, 1975년 레이크유니언합회장 당시 대총회 부회장으로 부름 받아 1985년에 은퇴할 때까지 봉사했다.
교회를 위한 사역의 삶은 굴곡이 있었지만 워닉 목사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며 흔들리지 않는 부부애로 위기들을 극복했다.
“부모님이 크게 다투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아버지가 출장으로 집을 비우시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라고 아들 로버트 워닉이 회상했다.
워닉 사모는 평생 가정을 지키며 내조에 힘쓰고 세 자녀를 양육했다.
“부모님은 항상 하나님께서 두 분을 짝지어 주셨다고 믿으셨어요. 두 분을 짝지어 주신 하나님께서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행복 또한 지켜 주실 것을 믿었지요. 그리고 항상 맡겨진 의무를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기며 사셨지요.”
72년 동안 함께한 부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평균 결혼 기간이 13.6년에 불과한 미국 같은 곳에서는 이런 분들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72년 결혼 생활의 비결
올해 95세를 맞은 워닉 목사 부부의 장수와 해로의 비결이 재림교회의 건강 기별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워닉 목사의 아들은 몇 가지 비결이 더 있다고 말한다. 자아 희생의 정신 그리고 결혼 서약과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사명에 충실하려는 다짐이다.
“두 분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적인 욕심을 품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분에게서 이기적인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셨습니다. 가끔 두 분의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특히 저의 어머니는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내조하셨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셨습니다.”
다른 가족들과 친지들은 워닉 목사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았다고 증언한다. 워닉 목사가 종신 이사로 있는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부소장 윌리엄 A. 페이걸(68)은 두 부부의 삶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두 분은 늘 함께였습니다. 사모님에게 목사님은 위험을 막아 주는 든든한 울타리와 같은 존재였죠. 사모님도 목사님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셨어요. 서로에 대한 헌신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 못지않았지요.”
일례로 페이걸과 그의 아내 실비아가 2003년 9월 워싱턴 D. C.로 이주했을 때, 프랜시스 내외는 정원에서 기른 채소를 들고 집문 앞에 나타나 이들 내외를 안식일 점심에 초대했다.
“워닉 목사님 부부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사모님이 목사님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목사님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모습을 자주 보았어요.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죠.” 실비아 페걸(71)이 말했다. 실비아의 아버지 프랭크 L. 마시는 유니언대학에서 젊은 프랜시스 워닉에게 생물을 가르쳤다.
“요즘 사람들이 보면 구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두 분은 남편이 가정의 머리이고 아내의 역할은 돕는 배필이고 아내의 역할 또한 남편과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믿으시는 분들이었어요. 두 분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어요. 가끔씩 사모님이 옛날 얘기를 하시면서 출장 가신 목사님을 많이 그리워하셨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두 분의 서로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죠.”
남편과의 가슴 아픈 이별을 준비해야 하지만 워닉 사모님은 외로움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두 노부부는 한 방에서 함께 지내며 손을 잡고 있을 때가 많다. 노령으로 귀가 어두워서 손 감각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워닉 목사는 말할 때마다 부활의 소망을 전한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야 한다고 하셨어요.”라고 대총회 성경연구소 행정 비서인 딸 브렌다 플레머가 말했다. “어머니 생각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없으면 못 사실 것 같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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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개척한 과테말라의 한 교회. 2014년 과테말라에는 144개 교회가 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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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메 교도소 수감자가 새로 마련된 침례탕에서 침례를 받고 있다.
북레바논 오리엔테이션 여행 도중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남아프리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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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수백 명이 니카라과 호수에서 침례를 받고 있다.
아래 : 침례식 광경을 보고 있는 테드 윌슨 대총회장(왼쪽 두 번째), 그라나다 시장 훌리아 메나(왼쪽 네 번째), 마크 핀리 목사(왼쪽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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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1942년 5월 24일, 유니언 대학 졸업식 날 저녁에 열린 프랜시스 워닉과 메리 수 워닉의 결혼식 사진. 오른쪽 : 교회 주소록에 실린 날짜 미상의 워닉 부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