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알로미아
예수
전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랑받는 구절 중 하나이다. 그것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우리 믿음의 정수를 묘사한다. 사실, 요한복음 1장 전체는 독자들의 마음을 거듭거듭 사로잡는 심오한 신학적 논문이다.
그것은 그분의 신적이고 영원한 상태를 묘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3절)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사실에서 그것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은 그 말씀을 더욱 깊게 묘사해 나간다.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규모의 장엄함만을 묵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초월적일 뿐 아니라 내재적임을 보게 된다. 그 말씀은 영원하다. 그분은 자연에 제약받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 세상을 초월하시지만 분리의 장벽을 깨뜨리시고 “자신의 장막을 치신다.”1 말씀은 창조 세계에 오셔서 우리 안에 사시는 방식으로 피조물의 삶에 입혀진다. 그분은 오염을 피하기 위해 멸균 처리된 방호복을 입고 안전하게 고립된 유토피아를 즐기지 않으시며 오히려 정당하게 부여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비우신다. 그리하여 반역한 인간 가운데 사시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할 수 있으시다. 요컨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거하셨다. 영원이 잠시가 되고 신성이 자신을 비워 인성을 쓰셨다.
냉대
비극적인 것은 말씀이신 분의 사명이 홀대받거나 노골적으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11절). 다행히도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14절)라고 외친다.
말씀을 목격한 자들은, 우리 믿음의 핵심 요소가 계시된 메시지를,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주된 이유를 말과 시간을 통해 전했다. 그 이름을 가지고 우리는 믿음의 이유에 대해, 나아가서 우리가 따르는 분에 대해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재림교회의 중심 인물이 되신다. 예수와 그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라고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가지 목적, 한 가지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사도 바울의 묘사를 빌자면 그것은 화목의 사역이다. 인류가 하나님과 먼저 관계를 끊었을 때 인류와 화해하려고 앞장서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이것이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다.2 예수는 화목을 이끈 중요 매개자이시다. 예수가 없다면, 생명이란 그저 뜻만 좋은 몽상일 뿐이다. 예수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대제사장
예수께서는 하나님, 창조주, 화목자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훨씬 더 나아가 인류를 구속하신다. 그리스도는 변변찮은 유명 인사처럼 우리에게서 단절되어 다가갈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계획에 따라 예수께서는 믿음 안에 있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생애를 사신 이유는 단순히 권한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사시면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였다고 히브리서는 힘 있는 진리를 공개한다.3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 구속주, 화목게 하시는 분이시며 능력을 주시는 구주이시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영적 행보에 능력 주시는 분으로 명시한 저자가 그분을 우리 믿음의 “마침이 되시는 이”(히 12:2)라고 묘사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4
마침이 되시는 이(finisher)라는 개념은 특정한 결승선을 통과하는 어떤 상태를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인 성장의 개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믿음이 시작되도록 만드신 분이며 그 믿음을 성숙하게 하시는 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께 달려 있다.
우리의 기별에 나타난 그리스도 중심성은 성경에만 근거하지 않는다. 진리의 기별을 세상에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엘렌 화잇의 놀라운 설명에 귀 기울여 보자. “죄의 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야말로 위대한 진리이다. 이 진리 주위에 모든 다른 진리들이 매달려 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모든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충분히 인식하려면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통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여러분 앞에 자비, 중생, 구원, 구속의 위대한 기념비적 존재를 소개한다. 그분은 곧 십자가 위에 들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목사들이 전하는 모든 설교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복음, 315).
얼마나 놀라운 진술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메시지와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역설한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분은 참으로 모든 것이 되신다. 이 신학적 격언을 생생하고 명백한 격언으로 삼아 삶의 경험으로 승화시키려면 우리는 예수야말로 전부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 ‘에스케노센’은 문자적으로 장막을 치는 행위로 번역될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 중에 살거나 사람들과 나란히 여행하는 것을 명시한다.
2.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3.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9).
4. ‘텔레이오테스’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 완성하시는 분, 완성자를 뜻한다. 예수께서는 우리 믿음을 시작하시는 분이고 동시에 믿음을 성숙하게 하고 완성으로 이끄는 분이다. 참고 J. P. Louw and E. A.
5. 엘렌 G. 화잇, 복음 교역자(워싱턴, D. C. :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 1915), 315
해럴드 알로미아
미국 네브래스카 주 링컨에 소재한 유니온 대학교 내 칼리지뷰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프리랜서 사진가인 로시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