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저자 모두 호숫가에서 수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행하신 일 중에서 이 사건처럼 꼼꼼하게 묘사된 것도 없다.
이야기에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배부른 사람들의 만족스런 표정 이상의 것을 목격했다. 그들에게 이 이적은 어떤 방법으로도 전할 수 없었던 예수님의 사명과 그분의 정체성에 대해 새 지평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담긴 의미심장한 뜻을 종종 놓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천 명의 군중처럼 음식을 기다리는 입장에만 자신을 두었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께 명령받은 제자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 책임을 하나라도 덜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의 손에 빵과 물고기를 나눠 주는, 힘은 들고 생색도 안 나는 일을 하기보다는 풀밭에 앉아 기적의 은혜만 받아먹고 싶어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께서는 우리의 불복에 대해 언성을 높이며 따지시지 않으신다. 그저 지긋이 바라보시며 가장 부드럽게 책망하듯 요청하신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감독과 실랑이하다가는, 반대와 어려움을 제시하고 자원의 부족과 사업의 방대함에 대해 항의하다가는 우리가 제자도의 길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것임을 예수님은 잘 아신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하게 요청하신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의심하고 걱정하는 겁쟁이 제자들을 직접 발로 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도 알고 계셨다. 사탄이 우리 앞에 무시무시한 불가능이라는 망령을 들이밀 때 예수님은 자기의 말을 따르라고 단순하고도 강경하게 요구하신다.
이번 달 커버스토리 ‘오천 명을 오십만 번 먹이는 하나님’을 읽으면서 수백만 영혼에게 영적•육적 양식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월드뷰 2015년 5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