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나무-반듯한 자세
꼿꼿하게 걸으려면?
제럴드 A. 클링바일
18년은 긴 시간이다.
많은 나라에서 18이라는 숫자는 법 앞에서 완전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18세가 되면 운전과 투표를 할 수 있고, 의료 연구에 자기 신체를 맡기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18년은 긴 시간이다. 이것은 그 여자가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시간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안식일에 회당에서
유대의 어느 안식일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부분의 유대인처럼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눅 13:10).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장면은 누가복음 4장 31~37절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거기서는 또 다른 사람을 낫게 하셨다. 첫 번째 핵심 : 그날이 어느 날이었는지를 살피라. 그날은 바로 안식일이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그 여자의 병에 대해 누가의 설명은 모호하다. 그녀는 “꼬부라졌고” “귀신 들렸으며”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였다(눅 13:11).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귀신 쫓기 의식이 아니며 질병과 파괴적인 악마의 활동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의사인 누가는 말한다.
예수님은 청중을 보시다가 희망의 기미가 전혀 없이 수년 동안 꼬부라져 고통 받고 있는 여자에게로 눈길을 돌리신다. 그녀에게 앞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말씀이었다! 두 번째 핵심 : 예수님은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며 그것을 위해 행동하신다.
기적
예수님이 그 여자를 상대하실 때 청중은 분명 수군거렸을 것이다. 자신과 상관없는 여자를 공개적으로 주목받게 하는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행동이다. 요한복음 4장 9절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다.1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눅 13:12). 새국제역(NIV)에서는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자유로워졌다”라고 묘사했다. 그런 다음 그분은 당시 문화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하신다. 그분은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13절).
“여자가 곧 폈다”고 누가는 말한다. ‘곧’이라는 표현에서 누가는 제한된 자신의 의술과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창조자를 가리킨다.2 하늘과 땅을 있게 하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력 넘치는 말씀과 마찬가지로(창 1~2장), 예수님의 말씀은 즉시 창조의 힘을 발휘한다. 뼈의 구조가 바뀌고 근육이 펴지고 힘줄이 늘어난다. 불가능한 것이 별안간 현실로 이루어진다. 여자는 똑바로 서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세 번째 핵심 :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당하게 그리고 똑바로 서라고 말씀하신다.
회복된 다음에
이 믿기 힘든 기적에 대해 회당장은 놀라워하지 않았다. 적어도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누가복음에서는 안식일에 진행된 네 가지 치유(4:31~41; 6:6~11; 14:1~6;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인 13:10~17)를 소개하고 있다. 모든 기적마다 비판이 따랐고 예수님과 유대 지도자들 사이의 긴장은 더 팽팽해졌다. 회당장은 무리를 책망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치유 행위도 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넷째 계명에 비추어 치유 행위는 엿새 동안에만 진행해야 했다(눅 13:14).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답변은 의미심장하다. 주어가 갑자기 “예수님”에서 “주님”으로 바뀐다. 그분의 어조는 강하다(“외식하는 자들아!”, 15절). 그분의 논지는 지당하다. 그 여자를 “아브라함의 딸”로 묘사하셨다(16절). 성경 전체에서 이 표현은 여기서만 나타난다. 유대인은 자기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말하기를 좋아했다(요 8:33, 39, 53). 그녀를 “아브라함의 딸”이라 칭하신 것은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뜻이다. 네 번째 핵심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치는 성별과 인종에 근거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별된다.
안식일
누가복음 13장 16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안식일에 대한 핵심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천지 창조 당시 하나님께서 구분하신 그날은 진정 자유와 재창조의 날이다(출 20:8~11; 신 5:12~15).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기적이 증명하듯이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안식일마다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위해 넉넉한 은혜를 드러내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안식일 치유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청중들이 안식일에 대해 더 성서적으로(그리고 덜 전통적으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그녀가 해방을 맛보기 위해 18년간 기다렸던 것처럼, 매 안식일 우리는 속박당하고 뒤틀렸던 과거를 생각하며 우리를 위해 이기신 예수님을 찬양해야 한다.3 다섯 번째 핵심 : 하나님의 안식일은 우리의 피난처이다.
굽은 나무
헬무트 골비처(1908~1993)는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와 베를린 달렘의 루터교회에서 잠시 목회한 뒤 수십 년간 독일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나치가 독일을 지배할 때 고백교회의 신자로서 그는 세계 정복이라는 히틀러의 야욕에 맞섰고 전후 독일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냈다.
1970년에 골비처는
골비처의 역설적인 책 제목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여전히 도전장을 내민다. 불평등, 파괴, 방해, 질병, 공허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져 가는 환경 속에서 연약한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반듯하게 목적을 지니고 살기를 바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우리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구부러진 나무이며 희망 없이 몸을 웅크린 채 똑바로 펼 수가 없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의 구부러진 몸을 매만지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말씀을 선언하시도록 우리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은 삶의 어느 부분이 뒤틀리고 구부러졌는가? 예수님과 회당장이 주고받은 누가복음 13장 10~17절의 설전에서는 예수님의 안식일 기적으로 누가복음에 영원히 소개된 이름 없는 여인의 신체적 고통보다 더한 뒤틀림을 소개하고 있다. 뒤틀린 마음과 정신, 구부러진 태도에는 예수님의 손길과 생명의 말씀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굽은 마음, 정신, 몸을 곧고 반듯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누가복음 13장 10~17절의 복음이다. 다섯 번째 핵심 : 당신이 바르게 걷고 말하고 꿈꿀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하라.
1 우물가의 여인 또한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인 자기에게 말을 거는 것이 신기했다.
2 누가는 다른 기적들도 똑같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1:64; 4:39; 5:25; 8:44, 47, 55; 18:43; 19:11; 22:60).
3 다음을 참조할 것. ‘The Sabbath and the Healing Ministry of Jesus’ in Sigve K. Tonstad, The Lost Meaning of the Seventh Day(Berrien Springs, Mich.: Andrews University Press, 2009), pp. 181~203
제럴드 A. 클링바일
<애드벤티스트 월드> 부편집인이다. 뒤틀리고 구부러진 모든 마음과 정신이 영원히 곧게 펴질 날,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