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리나
이민자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
에프라인 벨라스케스 2세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 미국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당시의 재해와 관련하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를 이제 소개해도 될 것 같다. 거대한 참사와 재난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희망과 힘의 원천이 되었다.
카트리나는 2005년에 발생한 초대형 허리케인이다. 태풍이 지나간 곳은 엄청난 파괴와 고통만 남았다. 그해 허리케인 시즌의 피해는 역사상 가장 심각했고 피해액은 1,600억 달러에 달했다. 한 번의 폭풍으로 1,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 100만여 명의 후유증이 아직도 북미 대륙을 떠돌고 있다.
인명 희생과 재산 손실, 뉴올리언스 주에서 일어난 무정부 상태, 고통과 절망 속에 등장한 영웅과 악당에 관한 이야기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잃어버릴 집도 없고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국가 도움이나 보살핌을 구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카트리나를 경험했다. 비극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의학적 치료를 받기 위해 뉴올리언스 주에 찾아온 ‘건강 이민자’이다. 그 여정은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비행기로 미국에 가는 것은 문제될 게 없었다. 우리는 희망에 부풀었다. 어머니는 간 이식이 필요했고 뉴올리언스 주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가오고 있는 폭풍우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거기서 안드레스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였다. 10년 동안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서 밀입국자로 지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수백만 명과 마찬가지로,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고국의 가족에게 꼬박꼬박 돈을 보내며 열심히 일했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한 후에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누군가 그의 아내에게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의 아내 마리아는 비자를 받아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없었고 간신히 ‘코요테’*를 고용하여 사막을 건너는 위험천만한 여행 끝에 루이지애나로 찾아왔다. 마리아는 사랑과 희망의 사명을 띠고 있었다. 죽게 내버려 둬 달라는 안드레스를 그녀는 최선을 다해 격려했다. 내 가슴 또한 편치 않았기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에게 시편 91편을 읽어 주었다. 우리는 베드로의 권면으로 용기를 얻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벧전 1:6, 7). 실로 커다란 시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이 아니라 물과 함께였다.
폭풍우가 상륙하다
평생 푸에르토리코에 살면서 그렇게 무섭고 거대한 허리케인은 경험한 적이 없었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이든 ‘큰일’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이다. 베드로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4).
나는 재난 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재림교회 의료 봉사단(Adventist Medical Cadet Corps)에서 훈련받았다. 하지만 최고 시속 280킬로미터의 강풍이 지나간 현장에서는 내가 받은 훈련도 쓸모가 없었다.
아버지는 카트리나의 상륙에 대해 반신반의하셨다. 어릴 때부터 허리케인에 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며 자랐지만 방송에서 예보한 만큼 실제로 막대한 피해가 생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빗나간 종말 시나리오처럼 그것은 과장에 불과할 거라고 아버지는 생각하셨다.
하지만 우리가 루이지애나 슈퍼돔으로 피신해야 하며 수십만 명이 도시를 탈출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진짜임을 깨달으셨다.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었다. 우리는 병원 로비로 대피했고 카리브 연안과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사용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것처럼 우리는 구매한 모든 물품들을 함께 사용했다. 베드로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벧전 3:8).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허리케인은 병원 건물을 파괴하러 달려오는 기차처럼 울부짖었다. 몇 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강풍이 불어 댔다. 도시의 넓은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제방도 뚫렸다. 이번에는 경고가 옳았다.
더 높은 지대로
우리가 대피한 병원은 다행히 침수되지 않았다. 전력은 절반 정도 남았고 작은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주 방위군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우리에게 경고했다.
갖가지 경험과 사연을 간직한 난민 한 그룹이 우리의 미니밴과 소형차에 함께 탔다. 남아메리카에서 그리고 미국 인근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미국에 오기까지 그들이 겪은 일은 참으로 다양했다. 함께 더 높은 지대를 찾아가는 무리 중에 마리아도 있었다.
안드레스를 비롯해 남겨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머니는 며칠 뒤 헬기로 이송될 거라고 확답을 받았지만, 헤어지기 전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는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우리는 죽음과 희망의 장면을 목격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는 반파된 도로 위로 여행을 계속하는 남은 자였다. 거기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약탈과 강탈이었다. 서로 낯선 사람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끝날 때는 가족이 되었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숙소가 모자라 방 두 칸에서 복작거리며 잠을 청했다. 그래도 먹을 것은 항상 있었다. 우리의 삶은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섭리로 폭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은 과거에도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의 탈출을 이끄셨다. 텍사스에서는 재림교인 몇 가족이 우리를 보살펴 주었다. 무릴로 목사님과 파간 목사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보살핌과 숙소를 제공해 주셨다. 그곳은 마치 ‘약속의 땅’ 같았다.
이틀 뒤 어머니와 안드레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그때 함께한 이들 중 몇몇과는 지금 연락이 끊겼지만 아직도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는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고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어머니는 무사히 간 이식을 마쳤고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고 계신다. 그때의 강렬한 경험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비록 우리가 거룩한 나라요 같은 나라의 시민이라 해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나그네와 행인”(벧전 2:11)이다. 죄악의 홍수로 넘치는 이 행성에서 실로 우리는 모두 불법 체류자이다. 우리의 소속은 이곳이 아니다. 우리는 거룩한 꿈을 좇는 이주자들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인 순례자이다.
*라틴아메리카 밀입국 브로커의 별칭
에프라인 벨라스케스 2세
인터-아메리카지회 내 인터-아메리카 재림교회 신학대학원 부원장이다.
발문
최고 시속 280킬로미터의 강풍이 지나간 현장에서는 내가 받은 훈련도 쓸모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