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다가온다!
우리는 어떻게 설 것인가?
이안 뉴전트
“여보세요?”
“뉴전트 고객님, 안녕하세요? 일주일 뒤에 치과에 예약되어 있어 통지 연락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 전화의 의미는 분명하다. 앞으로 7일 동안 준비하라는 것이다. 7일 동안 양치질을 하고 치실로 깨끗이 관리하라는 것이다. 7일 동안 단것과 사탕을 먹지 말라는 말이다.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그러한 준비는 번번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다. 열심히 닦고 관리하며 은폐하려고 애쓰지만 치과의사의 장비들은 거침없이 우리 치아의 진정한 형편을 식별한다.
잘못된 응답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종종 이런 방식으로 조사 심판의 메시지에 응답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말고 이것을 더하고 저것을 덜하는 우리 행동 가운데 추가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의 마음의 진실한 상태를 덮어 버리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런 행동들은 치실질만큼이나 중요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도구들은 치과의사의 것들보다 훨씬 더 잘 뚫고 들어온다. “하나님의 말씀은…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이런 행동들이 그저 우리 마음의 진실한 상태를 감추려는 시도였다면, 우리는 치과에 찾아갈 준비하는 칠 일간의 노력보다 더 형편없이 실패할 것이다.
한 가지 질문
신자들의 행위를 재림 전에 하늘에서 조사한다고 가리키는 구절이 성경에 많다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독특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조사의 본질을 말해 주는 많은 성경절을 동등하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하늘 지적 존재들이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면서 밝혀내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영생을 살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특성에 좌우된다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바울은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우리의 행위를 감찰하면서, 하늘 지성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지를 찾아보고 있다.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 바로 믿음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찬양 팀, 내가 전한 인쇄물, 내가 먹을 것을 준 노숙자들, 내가 맡았던 교회 직분들, 혹은 우리가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믿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배설물에 불과하다(빌 3:4~9). 하늘의 책에서, 평생 교인이었고 일꾼들이었던 많은 사람이 행한 “놀라운 일들”(마 7:22)의 목록 아래 다음의 각주를 보게 될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6).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면서 하늘 지적 존재들은 피상적인 의로운 행위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행위 전부를 고려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기도 생활의 진정성, 경건 생활의 실천, 우리 공적 생애의 성실함을 고려할 것이다. 이 모두가 단 한 가지 질문으로 감찰될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그 마음을 지배했는가?”
올바른 응답
그러면 이 메시지에 적절한 응답은 무엇인가? 덧씌운 의를 신뢰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면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라는 그들의 질문을 나 자신의 질문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행위가 이 질문에 부합하는지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살펴야 한다(고후 13:5). 우리가 자신의 봉사, 증거, 구제, 예배, 계명 준수를 살펴보면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그 행동의 동기인가?”라고 그들이 묻게 될 질문을 자신이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적절한 대응이지만 그렇다고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예수 없이 자기를 성찰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질 것이다. 예수 없이는 우리의 방자함을 제대로 식별해 낼 수 없다. 그러면 마음을 고칠 필요가 없다는 기만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또 하나, 예수 없이는 마음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고칠 수 없다는 절망의 함정에 빠진다.
이 함정들을 피하려면, 우리는 눈을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에게 고정해야만 한다.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예수께서는 우리 믿음을 유지하고 강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역할은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다. 실상을 덮어 버리려고 더 많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면서 믿음을 강하게 해 달라고 그분께 요청할 수 있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믿음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자신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게 된다. 믿음은 우리의 무지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의 약함 대신에 하나님의 강함을, 우리의 죄악 대신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아들이게 한다”(교육, 253).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의 길을 선택하고, 그분의 지혜와 힘과 의를 받아들이고, 성경을 보면서 이것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 믿음은 더 강해질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마음 상태를 진솔하게 논의함으로 그분과 협력할 수 있다. 어떤 영역에 대해 그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방자함을 드러낼 때, 우리는 겸손히 그것을 인정하면서 그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신다는 약속을 성취시켜 달라고 요청해야만 한다(요일 1:9). 그렇게 우리의 상황을 그분께 맡기고 심지어 그 영역에서 자라 가는 중에도 우리는 심판 때에 그분의 의가 우리를 덮어 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심판 날에 어떻게 설 수 있는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설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님으로만 설 수 있다.
이안 뉴전트
대총회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며 가족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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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
*2015년 대총회에서 수정된 기본교리 문구는 <교회지남> 편집실에서 자체 번역한 것이며 한국어로는 아직 공식적으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성소, 곧 여호와께서 지으시고 사람이 짓지 아니한 참장막이 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당신의 속죄의 희생의 은혜가 믿는 자들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신다. 그분은 승천하시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시고 중보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그 봉사는 지상 성막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수행하는 일로 상징된다. 그분은 2300주야의 예언 기간의 끝인 1844년에, 그분의 속죄 봉사의 두 번째요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셨다. 그 봉사는 지상 성막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수행하는 일로 상징된다. 그것은 모든 죄의 최종적 처리에 해당되는 조사 심판의 사업이며, 고대 히브리 성소가 대속죄일에 정결케 되는 의식으로 예표 되었던 것이다. 이 예표로서의 의식에서는 동물의 희생 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성소가 정결케 되었지만, 하늘의 것은 예수님의 피의 완전한 희생으로 정결케 된다. 조사 심판은, 죽은 자들 중에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가를 하늘의 주민들에게 계시해 준다. 그것은 또한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고 있고 그러므로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승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분명히 알려 준다. 이 심판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해 온 자들이 하늘나라를 얻을 것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이 봉사가 끝나면 재림 전에 인간을 위한 은혜의 기간도 끝난다(레 16장; 민 14:34; 겔 4:6; 단 7:9~27; 8:13~14; 9:24~27; 히 1:3; 2:16~17; 4:14~16; 8:1~5; 9:11~28; 10:19~22; 계 8:3~5; 11:19; 14:6~7; 20:12; 14:12; 22: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