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마강가
예수는 주?
알파 현상의 좋고 나쁘고 당황스러운 사실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살펴보면서 진화 생물학이 예수님의 이야기에 얼마나 어긋나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월한 예수?
황금 보좌와 순금 거리, 손짓 하나로 분부를 수행하는 천사들을 떠나 이 땅에 오셔서 갈릴리 나사렛의 하류들과 어울린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국가 유명 인사이고 당신의 아들이 세계적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태어난다면 굳이 그 장소로 마구간을 택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아니 그들의 아내가 무엇이라고 말할까? 주시하고 있는 방문객을 깜짝 놀라게 한 아기의 첫 울음은 ‘메애~’ 하는 양의 울음 소리와 냄새, 소똥과 ‘음매~’ 소리, 닭 울음소리와 섞여 있다. 아기의 첫 번째 침대로 구유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 구유는 소나 말의 먹이를 담는 통이다. 앵커들이 품위 있게 재잘거리며 톱뉴스로 사건을 보도한다. 온 나라가 영아 유기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긴말 필요 없이 당신이 아이를 버렸다는 것이다.
병원이 더 좋지 않았을까?
정상적인 케냐 사람이라면 그런 아기의 탄생 장소는 아가칸 병원이나 나이로비 병원 또는 동급의 다른 병원 특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방에는 온갖 종류의 꽃과 장식이 즐비하고 저명한 방문객들이 철통 같은 보안 속에서 아기의 코, 예쁘게 생긴 귀, 발가락을 쳐다보며 아기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할 것이다. 병실이 없다고 말하는 병원은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배짱 두둑한 병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버지는 왕인데도 아들을 축사에서 태어나게 하고 30년 동안 목수의 집에 맡겨 넣고 하층민으로 자라게 했다. 저명한 인물이라면 자녀를 어떤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 지도력을 세습할 수 있도록 모태부터 신경 쓸 것이다.
사명의 시작
영아 유기에 맞먹는 드라마 같은 탄생 이후 그는 익명을 유지한 채 조용히 지내다가 임박한 운명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글로벌 미션을 시작한다. 어떻게? 이 땅의 현재의 지도자들, 즉 로마 귀족과 황제를 소환함으로써 말이다. 아프리카 북부에서 아시아와 유럽까지 통치하면서 그는 곧 올 새로운 왕국을 위한 그의 사명을 세상에 확신시켜 주기 위해 군대, 병사, 고등 교육을 받고 웅변에 능한 이들을 고용한다. 그들을 활용하여 자기 통치하에 있는 세상의 모든 지역에 전한다. 이 목표가 성취되도록 계획은 세우고 전략을 고안한다.
하지만 아니다!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와 달리 투박한 옷을 입고 색다른 음식을 먹고 과격하게 설교하는 사막의 은둔자인 그의 사촌이 그를 소개한다. 얼마 안 되어 세상의 왕은 사촌의 목을 베어 버린다. 때맞춰 그분은 인적 자원을 마련한다. 그분은 어부, 세리 마태 등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신다. 사회 하류층을 환영하신 그분을 위해 마태는 잔치를 열었다. 12명의 시답잖은 인적 자원이 그분의 선택이다. 그분의 부하이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일꾼들이다. 아버지의 시간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3년 반 뒤에는 아버지가 그를 하늘의 오염되지 않은 거리로 다시 데려가시고 12명이 남아서 이 땅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는 예산도 없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열두 제자와 다수의 여성과 걸어 다니기 시작한다. 그 여성들은 그를 위해 자신들의 돈을 사용한다. 그는 식량, 거처, 기타 비용에 대해 어떠한 계획도 없다.
열두 제자에게 미션을 맡기면서 그는 지침을 제시한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마 10:5~14; 막 6:7~11; 눅 9:1~5). 케냐에서라면 나이로비의 직원이 만데라, 니에리, 마차코스 등지의 지점을 점검하기 위해 한 달간 파견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나이로비나 지점에 있는 인적자원부 회계부에서는 이들의 교통, 숙식 등에 대해 계획을 짜 주지 않는다. 해당 직원이 알아봐야 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은 적절한 예산 없이 시작되었다. 가난한 미션 수행자는 자신을 따르려는 자에게 말했다. 자신은 잘 곳도 머리를 둘 곳도 없다고. 꽤 짧은 인터뷰였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 이런 ‘패자’의 사업 계획을 받아들이고 따를 사람이 있을까?
사명의 정점
다가올 지옥으로부터 온 세상을 구하려는 사명을 지닌 집단이라면 뚜렷한 훈련 전략과 적절한 명령 체계가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할 것이다. 성공을 위해 직급과 구조가 정비될 것이다. 하지만 이 주인의 계획은 단순히 “나를 따르라.”였다. 보고, 모방하고, 영적 능력과 전적인 회심을 위해 기도하면서 계획을 성취하라는 것이다. 직급 체계에 관해서 주인은 이 땅에서 가장 작은 자가 그의 왕국에서는 가장 위대한 자로, 가장 마지막인 자가 가장 처음인 자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말은 취업, 결혼, 자동차와 집 장만, 승진, 심지어 식사 줄에서도 맨 앞이고 싶은 우리에게는 심히 절망적인 말이다.
계획이 정점에 이르자 주인은 대담하게 자신의 무릎을 꿇고 종들의 발을 씻긴다. 세상에서는 윗사람의 발에 입을 맞추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겸손한 주인은 그의 종들을 하인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한다(요 15:15). 자신이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탄생을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던 아버지처럼 그 역시 자신의 사명이 편치는 않았다. 적어도 여기에는 일관성이 있다. 출생은 소 먹이 그릇에서 이루어졌고 친구와 세상을 구하기 위한 희생은 수치스러운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겨짐으로 이루어졌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난 후 그는 자신이 멀리 갔다가 그들을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죽기 전에 말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다시 돌아올 시각이었다. 그것은 아버지만 알고 계셨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으며 직접 돌아오기 전까지 그의 성령을 통해 그들과 함께한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그의 부재 속에 홀로 그 계획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죽었다가 부활했을 때 그들은 어떤 것도 그의 귀환을 방해할 수 없음을 알았다. 죽음 가운데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어디에서라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조이 마강가 케냐 나이로비에 살고 있다.
발문
그분은 어부, 세리 마태 등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신다. 사회 하류층을 환영하신 그분을 위해 마태는 잔치를 열었다. 12명의 시답잖은 인적 자원이 그분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