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신 알아가기
6부 1900~1915 엘름스헤이븐 체류기
하나님의 메신저
황금기
엘렌 화잇의 생애와 유산에 대한 전망
팀 포이리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9년간 봉사한 후 미국으로 돌아온 엘렌 화잇은 비로소 평화스런 은퇴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1900년 9월이었다. 몇 주 뒤면 73번째 생일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의 첫 십 년간 그녀는 교회 구조, 교회의 주요 기관들 그리고 신학적 기둥들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맞이했다.
조직 개혁
귀국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새로 구입한 캘리포니아 주 엘름스헤이븐의 집에 아직 거주하는 동안, 엘렌 화잇은 1901년 대총회 회기에 맞춰 미시간 주 배틀크릭으로 향했다. 회기는 공식적으로 1901년 4월 2일에 시작되었지만, 사전 모임에서 주요 조직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이 이미 분명했다. 엘렌 화잇은 그 도전이 거셀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대표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캘리포니아를 떠나기 전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배틀크릭에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고 갈 짐 때문에 죽어버릴 것처럼 두려웠습니다.”1
오늘날 돌이켜 보면, 1911년 대총회 때 단행하여 1903년에 다듬어진 조직 개혁은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신 것이다. 구조 개편을 위한 엘렌 화잇의 적절한 호소에 교회 지도자들이 반응했다. “전환기에 이 모임에서 일어난 일보다 내 인생을 더 놀라게 한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2
기관들의 위기
1년 안에 교회는 두 핵심 기관, 즉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배틀크릭 병원(1902년 2월 18일)과 리뷰 앤드 헤럴드 건물(1902년 12월 30일)이 화재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엘렌 화잇은 이 재앙에서 배울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것들을 영적 사명의 상실과 연관지었다.3
엘렌 화잇의 가르침에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대총회 본부를 배틀크릭에서 먼 곳으로 다시 정했고 마침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 C.에 가까운 메릴랜드 주 타코마파크에 자리 잡았다. 엘렌 화잇은 오늘날 워싱턴 재림교회 대학교와 워싱턴 재림교회 병원으로 알려진, 새로운 대학과 병원을 그곳에 여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세계 모든 곳에”4 병원을 세우라는 그녀의 반복되는 호소에 더하여, 엘렌 화잇은 특히 배틀크릭 병원을 잃은 후에 교회의 신념에 바탕을 둔 의료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재정 부담이 해결되지 않아 교회 지도자들이 정말 주저했지만, 엘렌 화잇은 캘리포니아 로마린다에 있는 부지를 즉시 구입하라고 재촉했다. 1905년 6월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엘렌 화잇은 “이곳이 4년 전, 그녀가 이상 중에 본 바로 그 장소라고 되풀이해서 말하였다.”5 연속적이고 현저한 섭리를 통해 부지 구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명백하게 나타났다. 첫 헌금을 시작한 지 6개월도 못 되어서 전액을 지불할 수 있었다.6 수많은 교회 기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로마린다 대학교와 해당 의료 센터 역시 메신저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학적 위협
모아나호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오기 7개월 전, 아직 호주에 있는 동안 엘렌 화잇은 “수많은 이론과 방법이 우리 야영 집회에 들어올 것”7을 보았다. 동시에 그녀가 재조직을 호소했던 1901년 대총회에서 엘렌 화잇은 “거룩한 육체”8라고 알려진, 성화에 대한 광신적이고 완전주의적인 가르침에 맞서야 했다. 문제를 바로잡는 도중에 그녀는 이러한 주옥같은 말을 전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여기실까 염려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속물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실까 염려해야 한다.”9
그러나 훨씬 큰 위협이 뒤따랐다. 교회 의료 사업 분야를 대표하는 존 하비 켈로그 박사의 견해와 교회 목회자 전반의 견해 사이에 분열이 더욱 심해졌다. 논쟁의 양상이 커진 것은 켈로그 저서
하나님에 대한 범신론적 견해에 반대하는 엘렌 화잇의 명쾌한 증언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성경적 토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7년간 두 번 이상, 새 빛의 힘은 교회의 연합을 위협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에 대한 A. F. 밸린저의 교리였고 두 번째는 다니엘서 8, 11, 12장에서 “매일”로 번역된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두고 일어난 교회 지도자 사이의 열띤 논쟁이었다.11
엘렌 화잇은 켈로그와 밸린저의 교리에는 명백하고 공개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매일”에 대한 토론에서는 한 견해를 다른 쪽보다 선호하는 일을 삼갔다. 초기 이단들을 대한 것과는 다르게, 엘렌 화잇은 “논란 중인 그 관점에 대해서는 어떤 가르침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면서 “이 질의에 대해 동요를 증가시킬 어떤 일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라고만 말했다.12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연합하라고 엘렌 화잇이 호소하고 그에 따라 교회가 에너지의 방향을 선교에 집중한 결과 에베소서 4장 11~16절에 개괄된 성령의 선물의 목적 중 하나가 실현되었다.
엘렌 화잇은 사역 말년에, 교인들이 가정에서부터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 예절로 서로를 대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장벽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를 더욱 빈번이 강조했다.13
1900년과 1915년 7월 16일의 임종 사이에, 엘렌 화잇은 <교육>(1903), <치료봉사>(1905)와 같은 고전을 출판하였고 대쟁투 총서를 완성하였다. <교회증언> 시리즈 6~9권과 다른 여러 책을 출간하고 교회 신문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올렸다.
개회 중인 대총회에 보내는 자신의 마지막 메시지에서(연로하여 참석할 수 없었다.) 엘렌 화잇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했던 지난 70년을 회고했다.
“어려운 일이 계속 증가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자로서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되며 계속 표준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아직도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저들과 계속 같이하실 것을 느끼면서 저는 용기를 얻고 은혜를 받습니다.”14
팀 포이리어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위원회 부소장
1Ellen G. White, in
2Ibid., Apr. 25, 1901, p. 464
3<교회증언> 8권, 97~103
4<교회증언> 7권, 51
5D. E. Robinson,
6Richard A. Schaefer,
7Ellen G. White letter 132, 1900 (in
8 이 가르침과 그에 대한 엘렌 화잇의 평가를 보려면 다음을 참조할 것. <가려 뽑은 기별> 2권, 31~39; Arthur L. White,
9 Ellen G. White, in
10A. L. White,
11밸린저에 대해서는 상게서 405~413, 425~428쪽 참조. “매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A. L White,
12 Ellen G. White manuscript 11, 1910, and letter 62, 1910 (<가려 뽑은 기별> 1권, 164~168)
13 예를 들면 <교회증언> 9권, 179~226
14Ellen G. White, in
발문
엘렌 화잇은 사역 말년에, 교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더욱 빈번이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