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의
결혼 예식 때 무엇을 입을 것인가?
테드 N. C. 윌슨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구원의 근본적인 측면인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고찰할 최상의 시간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흥미진진한 비유를 기록했는데 거기에는 결혼과 합당한 결혼 예복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마태복음 22장에서는 임금이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한다. 아들을 위해 임금이 준비하는 예식은 흥분으로 가득하다. 임금은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했더니”(3절).
유감스럽게도, 초대받은 사람들은 오기를 꺼렸다. 임금이 초대한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비유가 오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에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우리는 혼인 잔치에 가고 있는가?
혼인 잔치
혼인 잔치는 보통 일이 아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 두 번, 교회에서 한 번 결혼 피로연을 치렀다. 하객들이 딸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찾아왔을 때 나는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하객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왕의 관대한 초청을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갔다(마 22:5).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의 삶에 정말 바쁘지 않은가? 우리는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가장 중요한 식사 자리에 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왕을 거절하다
비유에서 결혼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왕의 종들을 붙잡아 잔혹하게 대하고 죽였다. 여러분이 왕의 동역자로 나갈 때는, 거절당하고 고초를 겪고 기피당하고 어쩌면 살해당할 것도 각오해야 한다. 기독교 전체, 특별히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감당해야 할 순교가 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는 말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성취될 예언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마지막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실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믿는다(마 28:20). 그리고 현재 사건들을 주목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것이다. 우리는 정상적인 상황에 살고 있지 않다.
종들이 당한 일을 듣고 임금은 분노했다. 그는 자기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멸했고 도시를 불태웠다(마 22:7).
다시 시작하다
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는 종들에게 말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이 합당치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8~9절). 많은 사람이 왔다. 악한 자와 선한 자가 왔다. 결혼식장이 손님으로 가득했다(10절).
오늘날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도 많이 찾아올 것이다. 마지막 때까지 의인과 악인, 알곡과 가라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들림이 발생할 것이다. 사실 나는 흔들림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이 교회에 잠입하고 있다.
잘못된 사상에, 문화의 영향에, 하나님 말씀에 반대하도록 몰아가는 왜곡에 우리 자신이 휩쓸리지 않게 방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 흔들림에서 벗어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온전히 의존하게 하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롭게 하는 능력, 거룩하게 하는 능력, 부흥하고 개혁하게 하는 능력을 받아야만 한다.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라
우리가 그분의 의의 옷을 받아들 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고 또 하실 것인지에 대해 성경은 아름다운 약속을 가득 담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빌립보서 2장 5절에서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장 18~19절은 정확하게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끔찍한 저주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합당한 의복
비유에서 그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사역을 흥미롭게 설명해 준다. 11절에서 임금은 손님들을 보기 위해 안에 들어왔고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주시했다. 그는 묻는다.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12절). 그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완벽한 옷이 주어졌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그것을 받지도 입지도 않았다.
왕은 아들의 혼인식에 나그네(여러분과 나)를 초청했을 뿐 아니라 합당한 옷을 선물로 제공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의의 예복을 제공하실 때, 그것은 완벽하고 모든 사람에게 잘 맞는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받아 입기만 하면 된다.
심화 탐구
감명 깊은 책 <실물교훈>은 그리스도의 비유에 나타난 주옥같은 많은 교훈들을 심도 깊게 설명해 준다. 혼인 예복이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310쪽).
그 품성은 우리의 품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품성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 곧 믿음으로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홈이 없는 품성”(310쪽)이다. 이것을 진정으로 믿는가?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경이로운 약속이 주어진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준비하신 옷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옷 곧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입혀 주실 것이다. …하늘 베틀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 인성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품성을 나타내셨고 이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311쪽).
“계명들을 지키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완전한 생애를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자기 힘으로 완전한 생애를 살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이다. 그것이 가능한 길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사람은 하늘 아버지 앞에 완전한 자로 나타난다.
안에서 일어나는 성화
그리고 그때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난다. 거룩함이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의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행위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우리의 행위로 나타난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 믿음의 진실성 여부를 보여 준다”(312쪽).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복음의 축복과 특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품성의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그분에 대한 믿음도 나타내지 않았다. 저희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성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꽤 선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대신에 저희 자신의 공로를 의뢰한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들로서 잔치에는 왔으나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는 입지 않았다”(315쪽).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결코 자기 자신의 공로를 신뢰하는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신뢰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어야 할 때는 오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 집에 들어가기 위하여 품성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이다. …임금의 잔치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315쪽).
앞으로 나아가다
여러분은 하늘의 동역자가 되게 해 주는 그리스도의 덮어 주시는 옷을 기꺼이 받고자 하는가? 우리를 덮어 주시고 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옷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기본이다.
우리 각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사람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 그들은 예수를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 그분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선포하는 위대한 사람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발문
예복이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