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
믿음에서 확신에 이르는 여정
샤이엔 프랜시스
세찬 바람이 창문 밖 나뭇가지 끝을 마구 흔들고 빗줄기가 양철 지붕을 세차게 때렸다. 번쩍이는 번개는 침실 벽에 무서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쾅 하는 천둥소리에 나는 벌벌 떨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나님께서 화가 나신 거야.’ 그분은 분명 나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요나처럼 저를 데려가시고 저의 가족은 살려 주세요.” 나는 훌쩍이며 말했다.
여름의 폭풍이 잦아든 지 한참 후에도 나의 연약한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만약 토네이도가 우리 집을 박살 냈다면, 내가 번개에 맞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악인과 함께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소멸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나는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서
잠잘 때 엄마가 읽어 준 성경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설명했지만 그분은 벌주시는 하나님으로도 보였다. 요나, 노아 홍수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경험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안식일학교 선생님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배우고 ‘예수 사랑하심은’을 부르며 자랐지만 고민은 풀리지 않았다. 그분이 아무리 사랑을 표현해도, 하나님께는 확실히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 순종해야 했지만 형제간의 사소한 말다툼조차 피하지 못할 만큼 나는 사랑이 부족했다.
재림교회 울타리에서 안식일학교와 어린이 책을 빼놓으면 사랑은 무시되기 일쑤인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존경했던 분들은 사랑 타령만 하는 사람을 순종에 무관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대신 시대의 징조를 가리키고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적절한 ‘현대 진리’를 강조했다. 그들은 사랑과 같은 초보적 지식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다
그러던 중 엘렌 화잇이 책 <오늘 나의 생애(My Life Today)>를 읽었고
하나님은 조금씩 자기를 알려 주셨고 나는 서서히 나 자신을 그분께 드리게 되었다. 사랑과 순종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내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적은 없었다!
곧 하나님의 사랑이 매일의 삶에 나타났다. 자연에서, 응답받은 기도에서, 일상의 작은 행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요청은 불가능한 게 아님을, 그분이 나를 위해 승리하셨으므로 나 역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분의 사랑을 더 현실적으로, 솔직하게, 진짜처럼 실감하였다.
근본적인 사랑
그렇다손 쳐도 사랑은 초보적인 무엇이 아닐까?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향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배워 왔다. 그러나 ‘초보적인’ 것이 ‘근본적인’ 것임을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은 단순히 초보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안정, 의미 그리고 목적을 주는 토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처럼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엘렌 화잇은 “구원의 첫 계단은 우리를 이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분은 사랑을 나타내시고 성령으로 탄원하셔서 그들이 회개하게 설득하신다. 왜냐하면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께서 용서하신 자들을 참회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이끄심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은혜 앞에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그분은 한걸음씩 그들을 인도하여 그분을 완전히 알게 해 주실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다.”1
또 엘렌 화잇은 말했다. “이러한 사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것을 깊이 명상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사로잡힌다.2
하지만 내 영혼 둘레를 가로막은 장벽이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인정받고 어울리고 행복하기 위해 다른 길을 찾아 헤맨 일은 그렇게 많았으면서도 말이다. 그 무엇보다도 튼튼한 기초 위에서 가치와 평안을 경험할 수 있었음에도 자기를 비하하고 망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기다리라는 도전
내면의 기반이 흔들리던 1년간의 경험 끝에 나는 내 마음 존재하는 커다란 균열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건(정신적 외상이 생길 정도였지만)을 사용하셔서 내가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의지해 왔음을 보여 주셨다. 그해에 진지한 관계 하나가 깨어졌고 나는 집과 8년 동안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그리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어린 시절 가족의 경험을 살펴보게 되었다. 든든한 친구와 교우들이 수백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고 집안은 난리인 데다가 마음까지 무너져 혼란에 빠졌을 때 내 영혼은 황량하게 너덜거렸다.
그리스도께 도움을 간구하며 평화와 내적 안정을 찾아 허우적거릴 때, 한 가지 사실이 성경을 통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지만, 성경에 소개된 믿을 수 없는 최고의 소식에 그제야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 재능,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변함없이 헌신적인 사랑 때문에 내가 헤아릴 수 없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사 62:4).
이것을 알았으니 더 이상 중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놀라움과 감사에 넘쳐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 말해 주는 모든 성경절에 마치 연애 노트처럼 분홍색 줄을 긋기 시작했다. 오래되고 익숙하던 성경절이 신선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그것을 깨닫는 데 10년이 더 걸렸다. 그분께서 보시는 나의 가치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이제 나는 그것을 믿고 그 위에 나의 삶을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엘렌 화잇은 말한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생활하라. 그러면 그분께서 그대를 굳게 붙들어 주시고 그 손을 결코 놓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이해하고 믿으라. 그러면 안전하다. 그 사랑은 사탄의 모든 속임수와 공격을 막아 주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다.”3
낙심될 때, 유혹받을 때, 외로울 때, 나는 이제 성경을 펴서 분홍색 밑줄이 그어진 성경절을 찾아보거나, 밑줄 그을 새로운 성경절을 찾아본다. 나는 이제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더욱, 나의 상황보다도 더욱, 나의 감정보다도 더욱 그 약속들을 신뢰한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틀림없이 확신한다.
우리는 이 메시지처럼 살도록 부름 받았다. 그분의 사랑을 설명할 수 없고 그 방대함과 부드러움을 묘사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상점과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도 그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흘러나와 무관심을 녹이고 모두를 하나 되게 한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 우리가 나누어야 할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1<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99
2<정로의 계단>, 15
3<산상보훈>, 119
샤이엔 프랜시스
십 대와 젊은 성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좋아하는 프리랜서 작가이다.
발문
사랑은 단순히 초보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안정, 의미 그리고 목적을 주는 토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