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질문
여호와의 영광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분의 등만 볼 수 있었다(출 33:18~23). 이것은 무슨 뜻인가? 모세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 이야기가 분명하지는 않을지라도 반드시 이해하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보고 듣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 주고 듣게 해 주려는 하나님의 기꺼운 마음과 연관시킨다. 그것은 모세와 함께하시는, 더 나아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확실한 임재를 말한다. 문맥을 먼저 살펴본 다음 듣고 본 것을 주석할 것이다.
1. 문맥 : 이야기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를 경배한 사건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심각하게 범한다. 이 죄의 결과로 여호와께서는 광야에서 그분의 백성을 포기하려고 하신다. 모세의 중재 끝에 하나님께서는 천사의 임재와 인도를 통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께서 직접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호와께서는 결국 요청을 받아들인다. 이어진 내용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반드시 동행하시길 바라는 모세의 열망에 대한 것이다.
2. 보여 달라는 간청 : 모세는 보여 달라고 간청한다. 성경에서 실재와 창조는 봄으로 파악된다. 인간은 보아야 구체적인 실체를 자각할 수 있고 다가가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거대한 창조는 그 신비를 즐거워하고 가늠하기 위해 인간 시야에 열려 있다. 성경의 지혜 문학은 어느 정도 관찰과 분석 그리고 관측된 것에서 이끌어 낸 결론을 포함한다. 그러나 창조에 속하지 않은 분, 다시 말해 창조주를 볼 때는 어떨까? 창조의 일부가 아니기에 그분은 본래 육안으로 파악될 수 없다.
모세는 하나님의 타자성을 자각하고 자신의 요청을 주의 깊게 언급한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하레니, ‘내가 보게 하소서’, ‘내게 보여 주게 하소서’)(출 33:18).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셔야만 인간의 눈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모세가 특별히 보기 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카보드, ‘무게,’ ‘영광’)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요청을 거부하신다. 왜냐하면 “나를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20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앞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것으로 보아 모세는 임재의 구름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이상의 경험을 원하고 있다. 그는 막힌 것이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 한다. 존재의 위엄과 능력과 광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 모세는 여호와께 본래의 모습 그대로 세상에 들어오시라고 요청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행에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 백성과 동행하겠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한한 피조물은 무한하신 분의 충만을 볼 수 없으며 그 경험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3. 들음으로 보다 : 모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가 아니라 귀로 볼 것이다. 그렇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장엄한 영광 가운데 강림하셔서 그가 필요로 하는 것 즉 여호와라는 그분의 이름과 품성을 선포하실 것이다. 백성의 죄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의 압도적인 현현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분의 품성이 계시됨으로 해결될 것이다. 그분은 “악과 과실과 죄”(출 34:87)를 언제나 용서하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시다(출 33:19). 이것이 그분의 모습이다. 이것이 모세가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 위에, 아마도 시내 산의 바위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실 때 그 이야기는 개인적인 체험이 된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석 틈”에 숨기시고, 그분의 손으로 덮으시므로, 그분의 영광의 위엄에서 그를 보호하실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등”(12, 23절)만 볼 것이다. 모세는 그분의 볼 수 없는 영광이 지나간 후에 하나님의 눈부신 임재의 잔광만을 보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그분의 구원하시는 행동 후에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잘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그분의 등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목사, 교수, 신학자로 봉사한 뒤 텍사스에서 은퇴했다.